제작비 지출이 가장 큰 걸림돌...법적 의무화 필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아역 관련 규정 실효성 떨어져
"샤프롱 제도, 한번 이용하면 지속 예산편성에 노력할 분야"
“현장의 아이들은 배고프고 힘들고 몸이 아파도, 심지어는 폭언과 모욕적인 대우를 당하고서도 아무 말을 못합니다. 티를 냈다간 다음 기회가 없다는 것을 어른들로부터 철저히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말 잘 듣고 힘든 티 안 내는 아이들 있습니다’하며 무슨 물건 팔 듯 광고를 하던 한 에이전시 업자의 홍보문구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허정도 ‘더 이상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中
ⓒ영화 '클로젯' 스틸
방송가의 아역 인권 문제는 늘 논쟁거리다. 미국·영국 등의 공연계에는 아역 배우의 관리를 전담하는 스태프 ‘샤프롱’(Chaperon) 배치가 의무화 돼있다. 국내 공연계에서도 아역 배우가 출연하는 일부 작품에 한해 이 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그런데 방송가에서 아역 배우는 여전히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연대모임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팝업’(Pop-Up)이 실시한 실태조사(6~19세 배우, 응답자 103명)를 보면, ‘1일 최장 촬영시간’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6.89%가 “12시간 이상~18시간 미만”이라고 답했다. “18시간 이상~24시간 미만”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21.36%나 됐다.
이밖에도 “야간 촬영에 참여해봤다”는 응답자는 67.96%였고, 야간 촬영 당시 “특별한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54.29%로 과반을 넘었다. “무더위, 강추위, 미세먼지 등 악천후에도 촬영했다”는 답변은 67.96%, 당시 “아무런 준비 없이 촬영이 강행됐다”는 응답은 55.71%로 조사됐다. 응답자 중 69.90%는 “촬영기간 동안 수면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했지만, 이들 중 55.55%는 “(수면이 부족해도) 그냥 참는다”고 답했다.
관련법이 없는 건 아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아동·청소년의 기본권 보장과 노동시간 제한을 규정하고는 있다. 하지만 ‘합의에 따라’ 등의 조항이 첨가되어 있고 처벌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학습권·건강권 등에 관한 세부 규정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매니지먼트가 있는 아역 배우는 해당 기획사에서 매니저가 배치돼 관리를 받지만, 매니지먼트가 없는 아역이 대부분이고 이들의 관리는 철저히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때 부모가 제작진에 과한 요구를 하면서 여러 차례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 역시 아역 배우에 대한 관리자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
한 엔터테인먼트 배우 담당 매니저는 “아역 배우의 노동 환경을 체크하고 관리, 보호할 수 있는 감시 담당자가 현장에 꼭 필요하다”면서 “물론 과거보다 현장이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해외 사례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여전히 아무런 조치가 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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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롱의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면서 이 제도를 쉽게 도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 지출이다. 굳이 필요 없을 수도 있는 만약을 대비하는 것, 그리고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조금 불편할 뿐인 역할에 서슴없이 제작비를 편성하는 제작사가 얼마나 있을까.
때문에 아역 배우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법적인 강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연계에서 샤프롱 제도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제작사 신시컴퍼니 역시 레플리카 공연을 하면서 해외 프로덕션이 샤프롱을 의무 사항으로 둬 이 제도를 지난 2015년 처음 도입했다. 해외 프로덕션도 어린이를 고용했을 때 나라에서 강제하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샤프롱이 활성화 됐다고 볼 수 있다.
신시컴퍼니 정소애 기획본부장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체계를 아직 갖추지 못한 한국의 아동 노동에 대한 법률과 그 세부 조항들에 의해 근거를 마련하고 그것을 민간에 따르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서 “(샤프롱은)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럭저럭 지금까지 프로덕션이 운영되는 것에 별 무리가 없던 역할이다. 대신 부모의 절대적인 희생과 아역 인권 등이 무시되는 시간이 좀 더 길어질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에서 아동 예술 노동과 안전에 대한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의무사항으로 지정하고, 또 한편으로 이에 대해 각종 비용 지원을 해준다면 빠른 안착이 더 가능할 것은 자명하다”면서 “샤프롱 제도는 한번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 장점들로 인해 지속적인 예산편성을 위해 노력할 분야다. 공연계에서는 특히 그 장점을 이미 인식하여 대형 기획사들을 통해 안착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의 이 같은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개선의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미스틱스토리 소속 아역 배우 김시아의 매니저인 김병열 실장은 “방송이나 영화 현장에서도 대중문화예술법에 저촉되지 않는 조건으로 사전에 계약을 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뿐만 아니라 영화 ‘클로젯’(2020) 출연 당시 감독님이 김시아 양에게 티칭 선생님을 전담으로 배치한 적이 있다. 소통라인을 하나로 두면서 아역 배우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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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5월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중문화예술 현장에 청소년인권보호관을 배치하도록 하는 ‘대중문화산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12세 미만의 경우 일주일에 25시간, 하루 6시간을 초과해 촬영할 수 없으며, 12세 이상 15세 미만은 일주일에 30시간, 하루에 7시간으로 세부적으로 나눴다. 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청소년 예술인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감독하기 위해 현장에 보호관을 배치할 수 있고, 현장 조사를 지시할 수 있다. 이는 뮤지컬계의 '샤프롱 제도'와 유사한 시스템이다. 법안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샤프롱 제도의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정소애 본부장은 “정부가 다양한 예술정책이나 홍보를 통해 이 역할의 필요성을 더 민간에게 주지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 샤프롱 제도는 한번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 장점들로 인해 지속적인 예산편성을 위해 노력할 분야”라면서 “그만큼 수요가 있느냐가 이 직종에 종사할 많은 사람에게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예술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아역배우 기용 실태를 파악하고 인권, 노동법, 필수 육성 인력이 될 수 있을지, 또 재정적인 소요 부분까지 다각도로 살펴보고 이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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