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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 물어보니 ⑱] 조카 변호에 이재명 주장한 '심신미약', 요즘도 통할까?


입력 2021.12.03 05:34 수정 2021.12.03 05:52        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이재명 조카, 흉기로 수십차례 찔러 모녀 살해…이재명 "성격장애에 만취해 심신미약" 변론

1심·2심·대법원 "범행 경위나 수단과 방법, 범행 후 정황 등이 심신미약 아니다" 무기징역 선고

법조계 "이재명 과거 변론처럼 요즘은 단순 충동조절 능력 부족해 심신미약 주장 힘들어"

"정신과 진료기록도 사회적 비난가능성까지 살피고 판단…술먹었다고 통하지 않아, 범죄 억지효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과거 모녀 살인사건을 저지른 조카를 변호한 이력에 대해 논란이 일자 거듭 사과했다. 특히 조카가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이 후보가 변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심신미약으로 인한 실제 감형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요새는 단순히 충동조절장애가 있다고 해서 심신미약을 주장하긴 어렵고, 재판부 역시 심신미약 판단을 엄격하게 내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 후보의 조카 A씨는 지난 2006년 5월 7일 헤어진 여자친구 가족이 사는 집을 찾아가 여자친구와 그의 어머니를 각각 흉기로 19회, 18회 찔러 살해했다. 당시 아버지는 A씨를 피하려 도망가다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전치 12주 부상을 입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 A씨는 전 여자친구가 낮은 학력과, 경제적 무능력 등을 이유로 헤어지자고 말하자, 6개월 간 피해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협박 메일을 보내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A씨의 1심과 2심 변호를 맡은 이 후보는 'A씨가 범행 당시 충동조절장애 및 성격장애를 가진 상태에서 술까지 마셔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취지로 변론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A씨가 사건 범행 당시 충동조절능력이 저하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충동조절장애가 매우 심각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충동조절능력이 다소 저하돼있으나 범행 경위, 수단과 방법, 결과, 범행 후 정황에 비춰보면 심신이 미약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해 양측의 항소를 기각했고, 대법원도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이 후보가 변론 때 말한 '심신미약'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를 뜻하는 법률 용어로, 대개 피고 측 변호인들이 형을 감경받기 위해 쓰는 변론 전략이었다. 형법 10조는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자(심신상실)나 미약한 자(심신미약)는 벌하지 않거나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신장애가 형의 면제, 감경으로 이어지는 건 잘못한 만큼만 책임지는 형법의 기본원칙, '책임주의' 때문이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형법상 기본적으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적법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전제돼야 한다"며 "심신이 미약한 상태의 사람은 사리분별과 판단력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상인과 똑같이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책임주의는 해외 어디서도 적용하고 있는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심신장애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무조건 감경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8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고인 김성수가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주면서 심신미약 감형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고, 그해 12월 법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심신장애로 인해 판단능력이 미약한 자는 '형을 감경한다'는 형법 10조 2항의 내용은 '형을 감경할 수 있다'로 고쳐졌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심신미약으로 인정하더라도, 사회적 비난 가능성 등을 고려해 실제 감경 여부를 다시 판단하게 됐다.


법조계는 이 법 규정의 변화로 실제 실무상에서도 변호인들이 '심신미약'을 무조건 앞세우는 전략보다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추세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곽준호 형사전문변호사는 "요새는 이 후보의 과거 변론처럼 단순히 충동조절 능력이 부족하다고 피고의 심신미약을 주장하긴 어려운 분위기"라며 "오래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는 기록을 제출해도 재판부가 심신미약의 정도, 사회적 비난 가능성을 엄격하게 살펴보고 감경 판단을 내린다"고 말했다. 아울러 "조두순 사건, 김성수 사건 등으로 심신미약에 대한 엄중한 여론을 재판부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곽 변호사는 이어, 이 후보의 사과 이후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심신미약 적용 강화 법안 제정 움직임에 대해 "법 개정이 필요하기 보다는 어차피 현실 재판에서 심신미약으로 감경되는 사례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처럼 재판부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천주현 형사전문변호사도 "예전 형법은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무조건 감경됐기 때문에 변호인들이 안될 것 같아도 '심신미약'을 우선 주장하고 봤다. 그래서 이 후보도 비슷한 전략을 쓴 것 같다"며 "법이 바뀌고 나서는 심신미약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제출하는 등 변호인들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잠재적 범죄자들도 단순히 술먹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다는 걸 알테니 범죄 억지력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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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숙 기자 (ssoo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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