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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과세 유예, 포퓰리즘 아닌 기재부 준비 부족 탓 [장정욱의 바로보기]


입력 2021.12.03 07:00 수정 2021.12.03 05:49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시행 한 달 앞둔 가상화폐 과세

국회 설득 못 해 1년 ‘유예’

정부, 과세 원하면 다시 준비해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다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다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부가 가상(암호)화폐 과세 문제를 놓고 정치권과 힘겨루기에서 밀렸다. 법률 심사·의결 권한은 국회가 가진 만큼 처음부터 정부에 유리한 싸움은 아니었다 해도 명백한 패배다. 힘의 논리에서도 밀렸지만 ‘명분’에서도 정치권을 압도하지 못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전체 회의에서 소득세법 일부개정안을 의결했다. 애초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려던 과세를 2023년 1월 1일로 1년 유예하는 내용이다.


국회의 과세 유예 결정에 한 달 뒤부터 세금을 부과하려던 정부는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행 한 달을 남겨놓은 제도가 정책당국 동의 없이 뒤집혔고,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체면을 구겼다.


기재부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거래소득이 연간 250만원 이상인 경우 소득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소득이 있은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원칙을 근거로 내세웠다. 반면 국회는 제도 준비가 덜 됐다며 유예를 주장해 왔다.


국회의 이번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가상화폐 투자에 적극적인 2030세대 눈치를 본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정치란 게 본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해 못 할 수준의 포퓰리즘도 아니다.


이 때문에 이번 과세 유예 결정에서 기재부가 살펴봐야 할 대목은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아니라 자신들의 준비 부족이다.


가상화폐 과세 논란은 정부가 처음 제도를 추진할 때부터 반복된 내용이다. 정치권은 그동안 가상화폐 과세의 준비 부족을 꾸준히 지적했다. 제도적 한계도 꼬집었다.


기재부는 가상화폐 양도차익이 250만원을 넘는 경우 차익금의 20%를 소득세로 부과할 계획이다. 투자 금액에서 250만원 이상 수익이 발생했을 때 세금을 부과하게 되는 데 현재로서는 수익 발생의 기준이 되는 암호화폐 가격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거래소별로 시세가 다르고 환율에 따라 가상화폐 취득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외거래소부터 개인 간 거래까지 가상화폐 취득 경로가 워낙 다양해 취득가를 제대로 입증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수익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데 정확한 수익 기준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반면 기재부는 내년에 과세를 바로 시행해도 전혀 문제없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이런 기재부 주장은 믿음을 주지 못했다. 정작 가상화폐 거래소는 관련 인프라를 아직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투자자 보호책 마련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이번 싸움의 패배 원인 가운데 하나다. 세금을 부과하려면 그에 앞서 합법적인 투자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있어야 한다. 돈(세금)만 받고 위험을 모르는 척하는 건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기재부와 금융당국이 내놓은 일부 보호책은 전문가는 물론 투자자들로부터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가상화폐 관련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상화폐 정의와 범위, 진입 규제, 투자자 보호책, 불공정 거래행위 규제, 금융당국의 감독·검사·조사 권한 등 많은 부문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어쩌면 1년 유예 기간에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론 내년에 다시 과세 유예 연장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때는 기재부가 완벽한 준비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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