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홍종선의 결정적 장면⑬] 지옥, 고지, 시연, 두 가지 해석(ft.윤여정)


입력 2021.12.01 08:00 수정 2021.11.30 20:32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지옥의 사자는 셋이 함께 나타다 '시연'을 실행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이하 넷플릭스 제공 지옥의 사자는 셋이 함께 나타다 '시연'을 실행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이하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보다 낫다.”


영국 신문 가디언(The Guardian)의 칼럼니스트 스튜어트 헤리티지의 말이다. 그는 최신 리뷰에서 “‘지옥’은 말도 못 하게 좋다. ‘오징어 게임’보다 낫고, 대부분 작품보다 낫다. 폭력적 결말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수십 년 동안 회자할 드문 드라마”라고 호평했다. 의상, 마스크, 구호 등 인터넷 쇼로 기획된 ‘오징어 게임’을 당장은 이기지 못하겠지만 10년 뒤엔 ‘지옥’이 더 평가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둡고 난해하지만 그래서 더 가치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가디언은 지난 11월 초 배우 윤여정과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왜 이렇게 갑자기 한국의 콘텐츠가 각광을 받는 것 같은가”라는 우문에 윤여정은 “우리에게는 늘 좋은 영화, 드라마가 있었다. 단지 세계가 지금 갑자기 우리에게 주목할 뿐이다”라는 현답을 내놓았다.


배우 윤여정의 말이 앞으로도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할 책임은 한국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있는 상황에서, 한국 콘텐츠를 세계 중심부에 부상시킨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다시금 세계의 주목을 받고 가디언 지가 호평을 내놓음으로써 일단 체면이 섰다.


※ 이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박정자 역의 배우 김신록. 뒤로 '오징어게임'의 VIP들처럼 '새 진리회'를 재정적으로 받치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 박정자 역의 배우 김신록. 뒤로 '오징어게임'의 VIP들처럼 '새 진리회'를 재정적으로 받치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

가디언이 말한 어둡고 난해한 측면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까.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연출 연상호, 각본 연상호·최규석, 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은 너는 얼마의 시간 뒤에 지옥에 갈 것이라는 ‘고지’, 이것이 실행되는 ‘시연’이라는 개념을 바탕에 두고 있다.


고지를 당한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통보’이고, 뼈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는 잔인한 방식의 ‘살해’이다. 그 고지가 죄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라 해도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함이고, 죄와 관련 없이 임의로 던져지는 고지라면 말로 할 수 없는 최악의 폭력이다.


이 고지를 두고 극 중에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인간의 죄와 그에 따른 징벌 격의 지옥행을 주장하는 ‘새 진리회’가 있고, 산불이나 홍수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결과는 잔인하나 그 의도에는 악의가 없다고 말하는 ‘소도’ 조직이 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천사의 일방적 '고지' ⓒ 인간의 형상을 한 천사의 일방적 '고지' ⓒ

이제 막 태어난 아기에게 고지가 내려지는 걸 보면 소도 측의 말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어디 홍수가 착한 사람, 나쁜 사람 가려 닥치는가. 홍수는 인간 문명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고 인간을 향한 자연의 악의를 섣불리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개발로 그 피해 규모가 더 커진 것이니 인간의 잘못 또한 관여돼 있다. 하지만 인간의 잘못을 벌하기 위한 자연의 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옥’이 설정한, 고지를 전하는 천사의 모습이 우리의 스테레오타입에 들어맞는 천사의 모습이 아니어선지, 인간의 죄와 하늘의 벌을 말하는 새 진리회 의장 정진수(유아인 분)의 주장이 원인과 결과로 보기에는 단순하게 명백해선지, 우리는 고지와 시연이 이뤄질 때마다 당한 자의 ‘죄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한다. 새 진리회 측에 경도된다.


그러다가 또 우리는 새 진리회의 주장에 의구심이 생긴다. 새 진리회의 행동과 정진수 의장의 행적 때문이다. 새 진리회가 박정자에게 행해진 시연을 실시간 생중계할 때만 해도 고지와 시연이 실존하고, 박정자(김신록 분)는 죄인이고, 그러하므로 우리는 고지받지 않도록 “더 정의로워야 한다”는 정진수 의장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튼튼이를 '고지'의 운명으로부터 지키려는 엄마 송소현 역의 배우 원진아 ⓒ 튼튼이를 '고지'의 운명으로부터 지키려는 엄마 송소현 역의 배우 원진아 ⓒ

하지만 그 반대 증거인 신생아 튼튼이에게 고지가 내려진 것을 감추려는 모습에서 죄와 벌의 ‘연관성’에 대해 물음표를 느낀다. 이제 태어난 아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정말 죄인에게만 고지가 내려지는 게 맞나 생각하기도 하고 장차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를 아이면 미리 단죄되는 걸까, 역시 죄인에게 고지가 내려지는 게 맞다고 추론하기도 한다.


더욱 큰 물음표는 한국에서 누구보다 일찍 고지와 시연을 알고 이를 널리 알리며 살아온, 고지와 시연은 “더 정의로워야 한다”는 신의 직설화법이라는 해석을 전해온 교주조차 그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는 것에서 온다. 그러면서도 사적 복수를 부추기고 도운 행적의 결과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새 진리회가 주장하는 죄와 벌, 고지와 시연 메커니즘은 유효해 보인다.


드라마 내의 설정을 두고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죄와 벌’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제목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 그것도 고지와 시연이라는 끔찍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가디언의 말대로 드라마 ‘지옥’은 묵직하고 쉽지 않은 ‘생의 철학’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다.


지옥의 사자, 글로벌 저승사자의 모습일까 ⓒ 지옥의 사자, 글로벌 저승사자의 모습일까 ⓒ

이와 별도로 필자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천사의 모습이 천사처럼 보이지 않고 그 존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천사의 말 같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시연을 진행하는 자들의 모습이 저승사자보다는 전설 속 몬스터 바야바나 설인처럼 보여서만도 아니다. 이러한 설정이 죄를 지으면 벌 받는다는 ‘공포’를 극대화하고 새 진리회에 힘을 불어넣기 위한 극적 도구로만 다가오지 않고, 어쩌면 연상호 감독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힌트’가 아닐까 하는 데서 엉뚱한 상상이 출발한다.


만일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로 고지와 시연, 천사와 실행자의 모습을 고안했다면 낯선 ‘고지와 시연’이라는 판타지 요소의 실감도가 한층 높아졌을 텐데 지금과 같은 외형으로 보여준 이유가 단지 ‘공포 극대화’ ‘비주얼 요소 강화’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다. 이 모든 것이 새 진리회의 주장을 대중이 믿게 하고 세를 확장하려는 정진수 의장의 ‘기획’ 아닐까. 홀로그램 등 고도의 기술을 동원해 시연을 연출한 것일 뿐 실제로는 누구도 죽지 않은 건 아닐까. 그래서 정진수를 비롯해 시즌2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 아닐까.


유아인은 '지옥'에 있다, 시즌2에서도 꼭… ⓒ 유아인은 '지옥'에 있다, 시즌2에서도 꼭… ⓒ

그러다 헛짚었다는 깨달음이 왔다. 튼튼이와 엄마(원진아 분) 그리고 아빠(박정민 분)가 한데 엉킨 장면, 그리고 박정자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지옥’ 내에서 고시와 시연의 실존을 수용했다. 그러고 나니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시즌2에서는 인간계 외에서 일어나는 고시와 시연의 원초적 발생부터 결과까지를 모두 보여줄까, 고지받아 시연 당한 자들의 그 후를 보여줄까, 박정자의 엔딩이 가능한 메커니즘을 알려줄까, 고지와 시연의 누차 반복만으로도 시즌1이 끝났는데 지옥은 도대체 몇 시즌으로 제작될 것인가, 그렇다면 배우 유아인은 다시 볼 수 없는 것인가 등등.


이런 모두를 한마디로 한다면 “시즌2가 기대된다”가 될 것이다. 사실 시즌1의 강력한 엔딩, 마치 똬리 푸는 한 마리 뱀처럼 표현한 김신록 배우의 활약이 시즌2에서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예상만으로도 기대감은 솟구친다. 모든 것을 빈틈없이 보여주는 작품도 좋지만, 미완의 느낌으로 우리에게 많은 얘깃거리를 남기는 작품도 너무 좋다. ‘지옥’의 빠른 복귀를 기다린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