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기본소득④] 찬반논란 넘어 이제 다음 그림 그릴 때


입력 2021.08.13 07:03 수정 2021.08.12 15:30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30년 이어온 기본소득 담론

공론화 바탕 정책 실험 필요

“어떤 결과 나와도 사회에 이익”

지난 4월 2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월 2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성공하건 실패하건 실제 현장에서 실험하고 결과를 도출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스페인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2016년 6월 기본소득을 국민투표에 부쳤던 스위스에서는 재원 조달이나 이민자 폭증 우려 같은 이슈가 부각됐다. 핀란드는 2017년 1월부터 2년 동안 실업자 2000명에게 매달 560유로(약 76만원)를 조건 없이 지급하는 실험을 했다. 여기서 수급자의 고용 촉진 효과와 행복감에 관련된 자료가 도출됐다.” - 김진경 자유기고가


기본소득 개념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전문가들은 당시 대량해고와 실업 등을 겪으며 기존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지고 고용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 기본소득 관련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외환위기 전후로 출발한 기본소득 논쟁은 찬반 모두 정답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30년 가까이 각자 주장만 내세웠다. 생산적 대안 제시를 목표로 하지 않다 보니 논의 수준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다.


최근 들어 기본소득 논쟁에 변화의 기류가 보이기 시작한다. 핀란드와 독일, 스페인 등 세계 여러 나라가 실험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국내에서도 기본소득 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온다. 국민에게 기본소득 개념을 이해시키고 장단점을 안내해 찬반 논의가 생산적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다.


우물 속 토론 벗어나 광장에서 여론 마주해야

기본소득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의견도 마찬가지다. 기존 복지제도를 보완·강화하면 기본소득을 대신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전문가 생각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광장으로 꺼내 국민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여론이 늘고 있다.


기본소득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온 민간독립연구소 LAB2050은 “기본소득제는 국민 전체에게 해당하는 제도인 만큼 국민 숙의 과정이 필수”라며 “이 공론화는 정부가 실행하되 민간이 상당한 주도성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진경 자유기고가 또한 “한국에서도 재난지원금이 기본소득 논의를 끌어내는 계기가 됐지만 실험이라 부르긴 민망한 단계”라며 “국민적 합의가 가능할지, 얼마가 적정할지, 현행 복지제도는 어떻게 유지할지, (기본소득의 주요 근거인) 데이터 소유권을 어떻게 개인에게 귀속시킬지 등에 대해 논쟁의 장이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본소득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도 사회적 논의 확장에 대해 공감한다.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국가미래연구원장)는 “양극화 완화나 복지 강화 등을 통해 자본주의를 더욱 좋은 시스템으로 개선해나가는 건 절실하다”면서 “개인의 근로나 성취동기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건 사회 발전의 활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복지제도는 그런 동기를 유지하는 범위에서 지원을 강구하는 방식이었다면 극단적 기본소득론은 자칫 성취동기를 무력화함으로써 번영의 활력을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도 “우리 사회가 열린 시야를 갖고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본소득 논란이 한쪽 주장의 일방적 관철이 아닌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해 더욱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기본소득 공론화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이경 대표)는 “기존 복지 제도를 없애고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여전히 사회보장시스템이 취약한 한국 실정에서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 필요성이 커지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만큼 대선을 앞두고 여야는 재원과 증세, 취업, 기존 복지와의 관계 등 기본소득 추진과 직결되는 문제에 치열하게 해법을 내놔야 한다. 열띤 토론 과정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교성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본소득 논의가 이제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청년층,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고령층 등 기존 선별적 복지제도의 사각지대가 넓은 것으로 평가받는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의미는 크다”며 “기본소득 논의가 아이디어 단계에서 대안의 자리로 위치를 옮길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개념을 교육하고 있는 서울 판동초등학교 모습.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개념을 교육하고 있는 서울 판동초등학교 모습.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모범 답안 찾기 위한 다양한 실험 필수

전문가들은 사회적 공론화와 함께 정책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실험이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기본소득 이슈는 기본소득 자체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있고, 찬성하더라도 이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며 “포스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대전환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국민의 행복한 삶을 제대로 보장하는 복지정책의 새로운 방안이 될 수 있는지 실험해 보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책 실험 필요성은 앞서 국민소득 실험을 진행 중인 독일의 경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위르겐 슙 베를린 독일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본소득 지급에 대해 찬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예측일 뿐”이라며 “우리는 과학적 기준에 근거해 그런 주장 가운데 어떤 것이 사실인지 명확하게 밝히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수년 동안 지속한 기본소득에 대한 이론적 논쟁을 사회적 현실로 옮겨 갈 중요한 기회”라며 “우리는 장기간에 걸쳐 기본소득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행동과 인식의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알아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LAB2050은 기본소득 공론화와 정책실험을 위해 중앙정부 주도 국가기본소득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LAB2050은 “기본소득제는 국가가 잔여 자원을 복지로 지급하는 식의 사후 분배가 아니라 국민이 마땅한 권리로서 지급받는 사전 분배”라며 “따라서 국가기본소득위원회는 거시경제와 노동과 복지와 시민사회 등의 정책 영역을 총괄할 수 있는 구조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이 위원회에서 정책실험을 주도하고 공론화를 지원하며 재정 모델을 연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본소득이 아닌 현재 복지제도를 수정한 것으로도 실험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본소득은 아직 정답에 도달하지 못한 ‘진행형’이기 때문에 연구자 책상이 아닌 다양한 실험 과정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의 기본소득 실험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 ‘나의 기본 소득 연합’ 연구원은 “실험이란 건 비용과 시간이 드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런 위험을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며 “우리가 시민 기부로 이런 실험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본소득이 아니더라도 인류의 삶을 발전적으로 이끌기 위한 제도라면 가능한 많이 시도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 시도들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그 결과를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성을 가진 사회가 된다면 그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