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최근에 국민배우 최불암이 별세했다. 지난해 11월엔 이순재가, 올해 1월엔 안성기가 세상을 떠났는데 국민배우라 불린 세 사람이 1년 사이에 모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세 사람은 연기자로서 당연히 높은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적인 면에서도 물의를 빚지 않고 큰 존경을 받았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이 세 사람에게 모두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이들이 글자 그대로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국민적 스타였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세대 간 거리가 멀어지는 상황에선 국민적 스타가 나오기 어렵다. 요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핫스타인데 기성세대는 아예 모를 때도 많다.
과거엔 세대 간 문화 격차가 크지 않았고 모든 세대가 거실에 있는 대중미디어 플랫폼 TV를 공유했기 때문에 국민적 동질성이 유지됐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기성세대가 좋아하는 조용필에 10대들도 열광했다. 90년대 이후부터 젊은이들의 스타와 기성세대가 분리되기 시작해서 2000년대 인터넷 시대 이후엔 아예 세대 간 문화적 단절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 결과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대폭락했다. 중년 이상 시청자들이 안 보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반응으로만 보면 분명히 핫트렌드인데 TV 시청률로는 한 자릿수에 불과하고, 시장에 가도 그런 이슈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이렇게 문화적으로 세대간 간격이 벌어지는 사이에 사회적으로도 우리 공동체는 해체되어 갔다. 이젠 개인이 고립되고 파편화 되어가며 사회적 대립도 격심해졌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 취약성이 커지고 이상 범죄가 많아지며 정치적으로 거칠어지는 것도 어느 정도는 공동체 해체와 연관이 있다.
이렇게 공동체가 무너져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국민 통합을 상징하는 국민배우의 의미가 더 각별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최불암 별세에 우리 사회에서 신드롬적 반응이 나타난 것에도 공동체가 살아있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영향을 미쳤다. 특히 최불암의 ‘따뜻한 국민 아버지’ 캐릭터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많이 조명됐는데 그것은 그만큼 요즘 젊은 세대가 자애로운 어른을 희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순재, 안성기, 최불암은 모두 사적인 면에서도 존경 받았다. 그래서 더욱 애도의 물결이 크게 나타났다. 최불암은 생전에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며 약자를 돕는 어른의 역할을 강조했었다. 그런 사실들이 이번에 보도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알려지자 뜨거운 반향이 나타난 것이다.
최불암은 자신이 원래부터 그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수사반장’ 때부터 극 중 캐릭터에 몰입하다보니 점점 캐릭터의 성격이 실제 자신의 모습이 되어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사랑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젊은 시절엔 알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구도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깨달으면서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을 할 정도로 국민의 사랑에 대한 책임의식을 크게 가졌다.
그런 책임의식으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40년 이상 봉사활동을 해왔다. 보통 유명 연예인이 사망하면 방송인장이나 영화인장 같은 형식으로 장례가 치러지고 당사자는 그것을 아주 큰 영예로 여긴다. 하지만 이번에 최불암의 장례는 특이하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이 생전에, 자신의 사후 운구행렬이 방송국이 아닌 어린이재단을 들러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정도로 어린이재단 활동에 진정성이 컸기 때문에 장례도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지게 된 것이다.
이런 사회적 책임의식이 알려지면서 더 최불암 신드롬이 커졌다. 그런 책임의식을 가진 자애로운 어른, 아버지를 많은 이들이 원했다. 최불암이 맡았던 ‘수사반장’ 속 박 반장, ‘전원일기’ 속 김 회장이 모두 그런 캐릭터였기 때문에 과거에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는데, 이번에 그의 생전 실생활의 모습과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어록이 알려지면서 요즘 젊은이들도 크게 반응한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국민적 어른, 모두에게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는 국민배우가 앞으로 또 나오긴 쉽지 않은 환경인 것 맞다. 이순재·안성기·최불암 등이 별세하면서 그런 시대가 마감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후배들 속에서 선배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을 끈끈이 이어주는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진 국민스타가 계속 나와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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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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