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빅테크 투자비 눈덩이…韓 반도체에 ‘겨울’ 올까 [호황의 시계②]

정다운 기자 (sanae@dailian.co.kr)

입력 2026.11.04 06:01  수정 2026.11.0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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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2029년 완판’…LTA는 50% 이상

아마존 설비투자 2200억달러·메타 최대 1450억달러

빅테크 현금흐름 악화…‘가두리 양식’ 승부수

美 중간선거 변수…2028년 이후 업황 전망 엇갈려

인공지능(AI) 반도체와 웨이퍼, 반도체 생산시설, 데이터센터 등을 형상화한 그래픽 이미지. ⓒ데일리안 정다운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했으며, 수치와 내용은 기자가 검수함.)

미국 정보 기술 대기업(빅테크)이 인공지능(AI)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는 가운데 투자비 회수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미국 중간선거와 빅테크의 투자 속도 조정 가능성이 맞물리면서 2028년 이후 우리나라 반도체 호황이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표시된 SK하이닉스 주가. ⓒ뉴시스
‘2029년 완판’ 외친 SK하이닉스…확정계약 밖 물량은 변수


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8일 3분기 실적발표에서 2029년까지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물량이 사실상 모두 판매됐다고 밝혔다.


글로벌 대형 클라우드 기업을 포함한 주요 고객사 14곳과 장기공급계약(LTA)을 체결하면서 중장기 수요에 대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하지만 ‘2029년 완판’이 전량 계약 체결을 뜻하지는 않는다. 장기공급계약(LTA)으로 확보한 물량은 2027년과 2028년 전체 생산능력의 50% 이상으로, 완판 전망에는 고객사와 구매를 협의 중인 물량도 포함됐다.


SK하이닉스는 협의 중인 물량 역시 구체적인 구매 계획에 기반해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LTA에 포함되지 않은 생산능력은 시장 상황과 차세대 제품 수요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용할 방침이다.


장기 판매 물량이 모두 계약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반도체 호황은 실적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매출은 104조6155억원, 영업이익은 83조3338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도 매출 195조3000억원,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을 거두며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올렸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 공급 부족에 대응해 생산능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다만 늘어난 생산 물량이 안정적인 매출로 이어지려면 주요 수요처인 미국 빅테크의 인공지능(AI)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들 기업의 투자 지속 여부가 향후 반도체 호황을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9월 23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먼로파크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메타 커넥트 2026'에서 에이전트형 애플리케이션 '뮤즈'(Muse)를 소개하고 있다. ⓒAP·뉴시스
AI에 수백조 쏟는 美 빅테크…실적 좋아도 돈은 ‘줄줄’


미국 빅테크의 실적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했고 구글 클라우드는 103%, 마이크로소프트 애저도 48% 성장했다.


문제는 매출 증가 못지않게 불어나는 설비투자다. 아마존은 올해 자본적지출(CAPEX)에 약 2200억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며, 메타도 연간 투자액을 최대 1450억달러로 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금융리스를 포함해 452억달러를 사용했고, 알파벳의 유형자산 취득액도 513억5500만달러에 달했다.


매출은 늘었지만 막대한 설비투자로 기업에 남는 현금은 오히려 줄었다. 아마존의 지난 9월 말 기준 최근 12개월 잉여현금흐름(FCF)은 423억5700만달러 적자로, 1년 전 147억8800만달러 흑자에서 돌아섰다.


메타와 알파벳도 3분기에 각각 21억2000만달러, 90억65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잉여현금흐름은 영업활동으로 확보한 현금에서 설비투자 등에 사용한 금액을 제외한 지표다.


알파벳은 설비투자 확대 외에도 유럽연합(EU) 과징금 납부와 인공지능 반도체 관련 재고 확충이 현금흐름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투자 쏠림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S&P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아마존·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메타·오라클 등 5개 기업의 설비투자는 2028년 S&P500 전체 설비투자의 52%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됐다.


결국 막대한 투자비를 얼마나 빨리 회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클라우드 매출이 늘더라도 설비투자 지출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을 웃도는 상황이 이어지면 재무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빅테크가 당장의 투자비 회수보다 인공지능(AI) 시장 선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금 회수가 목적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주도권 싸움인 것 같다”며 “AI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손해 보는 투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일종의 ‘가두리 양식’ 전략과도 닮았다. 이용자를 자사 AI 서비스에 익숙하게 만들어 다른 서비스로 옮기기 어렵게 하고, 지속적인 이용을 통해 장기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장 수익을 내는 것보다 이용자들이 자사 서비스를 계속 사용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한번 익숙해지면 다른 서비스로 옮기기 어려워진다는 점을 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현지시각)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의 피트그린빌 공항에서 중간 선거 유세 연설을 하는 동안 한 여성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뉴시스
민주당 하원 장악해도 AI 투자 지속…2028년 이후는 ‘물음표’


미국 현지시간 3일 치러지는 중간선거도 인공지능(AI) 투자 환경에 영향을 줄 변수다. 의회 권력 구도에 따라 산업 지원과 데이터센터 관련 규제 논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확보하더라도 미국의 AI 산업 육성 기조 자체가 크게 바뀌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하원만 장악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상원 결과까지 봐야 한다”며 “민주당이 트럼프 정책에 잠깐 제동을 거는 정도에 머물지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AI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하더라도 반도체 수요 자체는 유지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기업 중심이었던 AI 활용이 개인 소비자까지 확대되면 새로운 수요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문 연구위원은 “AI 시장이 경쟁력 있는 일부 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 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은 있다”며 “다만 기업 수요에 개인들의 AI 이용 수요까지 더해진다면 상승세가 약해지더라도 하향세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수요 확대 기대에도 2028년 이후에는 수급 불균형 가능성이 남아 있다. 메모리 기업들이 생산능력을 늘리는 시기에 미국 빅테크의 투자 증가세가 둔화하면 공급과잉으로 호황이 꺾일 수 있어서다.


강 교수는 “AI 투자 과열과 메모리 산업 특유의 경기 순환이 맞물릴 경우 향후 2년에서 3년 사이 업황이 하강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반도체 경기는 사이클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영원히 올라갈 수는 없다”며 “과거 닷컴버블과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이번에는 하드웨어 중심이어서 당시보다 충격이 덜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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