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다뤄서 논란?… 반복되는 대중문화 ‘사상 검증’ [이슈]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6.10.29 14:00  수정 2026.10.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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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닥터X’, 5·18 에피소드 방영 직후 ‘방영 중단 청원’

육영수 피격 소재 영화 ‘암살자(들)’, 역사 왜곡 의혹에 곤욕

최근 안방극장과 극장가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중문화 콘텐츠가 현대사의 비극을 재현하는 방식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완성도나 서사적 맥락에 대한 비평은 사라지고, ‘어느 편이냐’를 묻는 사상 검증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나온다.


가장 뜨거운 감자는 현재 방영 중인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다. 오직 천재적인 수술 실력으로 부조리를 ‘깨부수는 수술방의 미친 계‘ 닥터X 계수정(김지원 분)의 활약을 담는 이 드라마에서는 최근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총상을 입고 평생 후유증을 앓아온 인물의 사연이 담겼다. 이때 계수정은 위험을 감수하고 그의 수술을 맡는 모습이 담겼으며, 이 가운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전직 대통령 지두석이 같은 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도 이어졌다.


이후 일부 시청자들은 “의학 드라마에 정치·역사적 소재를 부적절하게 끼워 넣었다”며 반발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닥터X’의 방영을 중단해야 한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청원인은 “‘닥터X’ 6회에 극 중 내용과 전혀 관계없는 5·18 관련 내용이 나와 많은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방영 중단 요청 이유를 설명했다.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SBS

스크린에서도 유사한 풍경이 연출됐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 이후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영화 속에 박정희 전 대통령 또는 중앙정보부의 개입을 암시하는 듯한 장면이 담겼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제작진은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의 사실을 부정·왜곡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가 아니”라며 “작품을 창작의 산물로만 바라봐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으나, 일부 보수단체는 주연 배우인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 집회까지 열며 작품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암살자(들)’ 측은 당초 참석할 예정이었던 부산국제영화제 무대인사를 비롯해 일부 공식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배후에 대한 음모론적 시각을 열어둔 것이라고 반박하는가 하면,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고 작품을 옹호하는 등 영화 한 편이 정치적 논쟁의 최전선이 된 모양새다.


물론 현대사의 비극 또는 실존 인물을 작품으로 호출할 때 창작자의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닥터X’의 경우 계수정의 활약을 통해 병원 내 부조리를 다루는 의학 드라마에 5·18이라는 무거운 비극을 포함한 것이 적절했는지, ‘암살자(들)’은 역사적 기록과 영화적 상상력의 경계선을 제대로 지켰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기기도 했다.


전보다 콘텐츠를 향한 잣대가 엄격해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의 영화, 드라마가 국내를 넘어 해외 시청자들도 즐겨 보는 작품이 되면서 책임감이 더 커지기도 했다. 앞서 MBC ‘21세기 대군부인’의 경우 가상의 입헌군주국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드라마임에도 불구, 주인공이이 왕으로 즉위하는 과정에서 신하들이 “천세”를 외치고, 왕이 황제의 상징인 십이류면관이 아닌 구류면관을 착용한 점 등을 이유로 역사 왜곡 의혹을 제기해 제작진 및 주연 배우들이 사과했다.


다만 이 같은 논란이 반복되면 K-콘텐츠 생태계에도 ‘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이어진다. 특히 창작자들은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암살자(들)’의 논란 이후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장이머우 감독은 “역사적 진실과 창작의 관계는 한마디로 표현하거나 짧은 시간 안에 해답을 찾기 어렵다. 창작은 창작이다. 창작이 꼭 진실이나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정주리 감독은 “저 역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영화를 만들고 관객을 만났다. 영화를 만들 때 ‘영화는 영화’라는 생각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며 “그런데 요즘 제가 느끼는 것은 제 영화도 아닌데 너무 위축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물론 제작진이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논란의 크기보다 그 성격과 비난의 방향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며 “비평의 자유는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논리에 이용하거나 무분별한 혐오로 발전돼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면 창작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작품 `안에 여러 요소와 표현의 장식, 제작진의 SNS까지도 조심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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