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도권은 누구에게…미국·일본·프랑스의 제작 시스템[영화는 정말 감독의 예술인가②]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10.29 08:00  수정 2026.10.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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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베이 ‘패스트 앤 루스’ 하차…윌 스미스와 작품 방향 이견

감독 두 차례 교체된 ‘블레이드’…마블 스튜디오가 프로젝트 관리

원작 IP·제작위원회 중심의 일본 실사영화…애니메이션은 감독 브랜드도 강세

마이클 베이 감독과 배우 윌 스미스가 다시 만날 예정이었던 영화는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에 감독을 잃었다. 넷플릭스 액션영화 '패스트 앤 루스'(Fast and Loose)다. 두 사람은 '나쁜 녀석들'(1995)과 '나쁜 녀석들 2'(2003)로 흥행을 함께 이끈 사이지만, 이번에는 작품의 방향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2025년 8월 미국 매체 데드라인 등에 따르면 베이 감독은 액션에 무게를 둔 영화를 원했고, 스미스는 코미디적 요소를 더 강조하는 방향을 선호했다. 결국 베이 감독이 프로젝트를 떠났다. 스미스는 주연 배우이자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었다. 넷플릭스는 새 감독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윌 스미스·마이클 베이 감독ⓒ뉴시스/AP

흥행작을 함께 만든 감독과 배우가 갈라섰고, 프로젝트에는 배우가 남았다. 감독의 이름만으로 작품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영화의 중심을 정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어떻게 다를까.


할리우드에서는 스튜디오와 배우, 제작자가 작품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대규모 프랜차이즈에서는 개별 감독의 연출 방향뿐 아니라 여러 작품에 걸쳐 유지해야 할 세계관과 캐릭터, 장기적인 사업 계획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마블 스튜디오의 '블레이드' 리부트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마허샬라 알리 주연으로 추진된 이 영화는 감독이 두 차례 교체됐다. 2022년 바삼 타리크 감독이 하차한 뒤 얀 드망주 감독이 합류했지만, 그 역시 2024년 6월 프로젝트를 떠났다. 각본 수정과 일정 변경도 반복됐다. 디즈니는 같은 해 10월 당초 2025년 11월로 잡혀 있던 이 영화를 개봉 일정에서 제외했다. 감독이 두 번 바뀌는 동안에도 프로젝트의 진행 여부와 개봉 일정은 스튜디오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 이미 확보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바탕으로 개발하는 프랜차이즈에서는 감독이 교체되더라도 기획 자체는 유지될 수 있다.


케빈 파이기 ⓒ뉴시스/AP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역시 이러한 제작 방식이 두드러진 사례다. 서로 다른 감독이 개별 영화를 연출하지만 등장인물과 사건은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케빈 파이기 마블 스튜디오 사장은 여러 작품의 제작자로 참여하며 시리즈 전체의 방향을 관리해왔다. 감독의 개성을 활용하면서도 작품 간 연결성과 프랜차이즈의 지속성을 함께 고려하는 구조다.


할리우드의 모든 영화가 스튜디오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런처럼 감독의 이름과 작품 세계가 프로젝트의 핵심 경쟁력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감독은 직접 기획을 주도하고 제작사와 배급사를 선택하거나, 계약을 통해 편집에 관한 권한을 확보하기도 한다.


미국 영화산업은 이러한 관계를 계약과 직능단체의 협약으로 구체화해왔다. 미국감독조합(DGA)은 감독이 촬영을 마친 뒤 자신의 연출 의도를 반영한 편집본인 '디렉터스 컷'을 만들 권리를 보장한다. 일반적인 극장용 장편영화는 최소 10주, 또는 예정된 촬영일 이틀당 편집일 하루 가운데 더 긴 기간을 확보하도록 규정한다. 저예산 영화 등에는 별도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감독은 이 기간 편집 작업을 주도하며 자신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디렉터스 컷을 만들 권리와 최종 개봉본을 결정하는 권한은 다르다. 최종 편집권은 별도의 계약과 제작 조건에 따라 정해진다.


한국 감독이 이 같은 관행과 마주한 사례도 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북미 배급을 맡은 와인스타인 컴퍼니와 상영 버전을 두고 협상을 벌였다.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에서 20여 분을 잘라낼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팬들의 온라인 청원이 이어지는 등 논란이 일었다. 결국 와인스타인 컴퍼니는 감독의 편집본으로 소규모 개봉한 뒤 반응에 따라 상영관을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감독판은 지켜졌지만 개봉 규모는 배급사가 정했다. 작품의 내용과 시장에 내놓는 방식이 서로 다른 사람의 판단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배우가 제작의 중심에 서는 경우도 있다. '패스트 앤 루스'에서 스미스는 출연자이면서 제작에 참여하는 주체였다. 스타의 참여가 투자와 제작을 성사시키는 중요한 조건이 되는 할리우드에서 배우의 역할은 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본 상업영화에서는 제작위원회와 원작 지식재산권(IP)이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영화사와 방송사, 출판사, 광고대행사 등 여러 기업이 공동 투자하는 제작위원회 방식이 널리 활용된다. 참여 기업들은 제작비 부담과 위험을 나누고 배급·방송·출판·상품화 등 각자의 사업 영역에서 수익을 확보한다.


특히 만화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실사 상업영화에서는 원작 IP가 기획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 형성된 팬층과 캐릭터 인지도, 드라마·게임·상품 등으로 이어지는 사업 가능성이 제작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감독을 섭외하기 전에 원작의 영상화와 투자 구조가 먼저 결정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원작의 성격과 제작위원회 참여사들의 이해관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원작자와 출판사 등 권리 관계자의 판단도 중요하다. 감독이 어느 단계부터 참여했는지, 원작을 어떻게 각색하기로 협의했는지에 따라 역할과 재량이 달라진다.


2023년 개봉한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기존 IP와 감독의 작가성이 결합한 사례다.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은 연출과 각본을 맡고 시각효과(VFX) 작업도 총괄했다. 1954년 처음 등장한 고질라를 전쟁과 핵의 공포라는 주제와 연결해 재해석했고, 이 작품은 2024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고질라'라는 오랜 프랜차이즈의 인지도 위에서 감독의 연출과 기술적 역량이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 신카이 마코토, 호소다 마모루처럼 감독의 이름이 작품에 대한 기대를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에는 감독과 창작자들이 직접 제작 조직을 꾸리고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 등이 참여한 바벨 레이블은 여러 창작자가 협업하는 제작 체계를 바탕으로 영화와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감독이 외부에서 주어진 기획을 연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다른 창작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프랑스는 감독을 작품의 저자로 법에 명시한 나라다. 1950년대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를 중심으로 발전한 작가주의는 감독의 개성과 세계관을 영화 해석의 중심에 놓았고, 이후 세계 영화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지식재산권법 제113-7조는 감독을 시나리오 작가, 각색 작가, 대사 작가, 영화 음악 작곡가 등과 함께 시청각 작품의 공동 저자로 추정한다. 감독을 유일한 저자로 규정한 것은 아니지만, 창작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같은 법 제121-5조는 작품의 최종판이 감독 또는 공동 저자와 제작자 사이의 합의로 확정된다고 정하고 있다. 완성된 작품을 수정할 때도 관련 당사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감독이 일방적으로 최종 편집권을 행사한다는 뜻이 아니라, 제작자와 함께 최종판 확정에 참여할 법적 지위를 갖는다는 의미다.


ⓒ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CNC)

이러한 법적 기반과 함께 공적 지원 제도도 프랑스 영화 제작의 중요한 축이다. 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CNC)의 '흥행수입 선지급 지원'(avance sur recettes)은 시장에서 제작비를 확보하기 어려운 독립영화와 신인 감독의 작품 등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1960년 도입된 이 제도는 작품의 성격과 창작적 가치를 고려해 지원 대상을 선정하며, 지급된 금액은 정해진 조건에 따라 수익에서 상환하는 방식이다. 시장에서 당장 흥행 가능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작품에도 제작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창작의 다양성을 떠받치는 장치다.


한국 역시 영화진흥위원회 등을 통한 공적 지원과 창작 자율성을 뒷받침하는 정책적 기반을 갖춰왔다. 김대중 정부 이후 강조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이러한 맥락에 놓여 있다. 그러나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영화에서는 감독의 흥행 이력과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제작 기회와 협상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 프랑스가 감독의 공동 저작자 지위와 제작자와의 관계를 법에 명시하고 있다면, 한국에서는 작품별 계약과 제작 관행에 따라 창작 과정의 권한이 달라지는 측면이 크다.


어느 방식도 비용과 제약에서 자유롭지 않다. 스튜디오 중심의 제작은 감독 교체 이후에도 프로젝트를 유지할 수 있지만 개발 지연과 반복적인 수정이 뒤따르기도 한다. 원작과 여러 투자 주체를 중심에 둔 제작에서는 감독의 해석과 사업적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한다. 창작자의 자율성을 공적으로 지원하는 제도 역시 재원과 지원 대상을 둘러싼 판단을 필요로 한다.


각 나라의 사례는 감독의 권한이 크고 작다는 비교만으로 각국의 제작 방식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할리우드는 프로젝트의 지속성을, 일본은 원작과 투자 주체의 협업을, 프랑스는 창작자의 법적 지위와 제작 기반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뤄왔다.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확보할 수 있는 것과 감수해야 할 것도 달라진다. 영화의 주인을 정하는 방식에 하나의 정답이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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