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금융시장 여건 고려해 프리IPO·IPO 검토 중단
AI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 필요성 유지…투자 규모·재원조달 미정
SK하이닉스 CI. ⓒ데일리안DB
SK하이닉스가 미국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상장 전 지분투자 유치(프리IPO)와 기업공개(IPO) 검토를 중단하기로 했다. 인공지능(AI) 메모리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신규 생산시설 투자 재원을 확보하려던 구상이지만,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과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흐름을 고려해 현시점의 상장이 최선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신규 공장 건설 필요성에는 변화가 없는 만큼 다른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23일 공시를 통해 "솔리다임은 생산능력 확대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해 왔으나, 자본시장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프리IPO 및 기업공개(IPO)에 대한 검토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5일 솔리다임의 5조원 규모 프리IPO 추진 보도에 대해 첫 해명공시를 낸 지 79일 만이다. 당시 SK하이닉스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고, 9월 4일에도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는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와 반도체 기업 주가 조정이 제시됐다. SK하이닉스는 이날 뉴스룸을 통해 "최근 자본시장 여건과 주가 흐름 등을 고려할 때 현재 IPO가 SK하이닉스와 기존 주주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다만 이번 결정이 솔리다임의 성장 가능성이나 투자 필요성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기 때문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를 나스닥에 상장한 지난 7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나스닥 타워 전광판에 SK하이닉스 상장 광고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美 공장 투자 위해 상장 검토…주주환원 여력도 고려
당초 솔리다임의 IPO는 미국 신규 반도체 생산시설 확보를 위한 자금조달 방안 중 하나로 검토됐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1년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인수하면서 출범한 미국 기업이다. AI 데이터센터용 대용량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시대 메모리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솔리다임의 생산능력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기존 생산시설만으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어 미국 내 신규 공장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자체 재원을 활용한 직접투자와 IPO를 통한 외부 자본조달 등 여러 방안을 비교해 왔다. 상장을 검토한 배경에는 대규모 시설투자에 따른 자금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주주환원 여력을 확보하려는 판단도 있었다.
SK하이닉스는 IPO를 통해 외부 자본을 유치할 경우 연결 현금흐름이 늘어나 시설투자뿐 아니라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을 위한 재원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솔리다임이 적정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상장한다면 SK하이닉스의 현재 기업가치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솔리다임의 성장 잠재력을 시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조정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회사는 현재 시점에서 IPO를 진행할 경우 솔리다임의 기업가치를 적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을지, 기존 주주들에게 충분한 이익을 제공할 수 있을지 다시 판단한 끝에 검토 중단을 결정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 등에 대한 2026년도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DB
소액주주 반발에 중복상장 논란…금융당국도 주주보호 강조
솔리다임 상장 가능성이 알려진 이후에는 국내에서 중복상장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논란도 이어졌다.
지난 8월 프리IPO 추진설에 이어 9월 말 미국 증시 상장 검토 보도가 나오면서 논의가 본격화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달 7일(현지시간) 솔리다임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미국 IPO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 소액주주들은 솔리다임이 별도로 상장할 경우 모회사에 귀속되는 경제적 이익이 줄어들거나 기업가치 평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는 지난달 말 SK하이닉스에 주주서한을 전달한 데 이어 이달 초 상장 재검토를 요구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상장 검토 중단을 촉구하는 등 주주보호 문제를 제기했다.
금융당국에서 중복상장 관련 주주보호 의무를 강조하고 나선 것도 SK하이닉스가 상장을 중단한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솔리다임의 상장이 중복상장 규정에 저촉된다는 판단을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모두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이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이라는 입장을 확인했다. 해외 증시 상장에도 관련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며 지배구조상 모회사인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가 주주보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취지다.
현행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은 주주 영향평가와 주주보호 방안 마련, 주주와의 소통, 이사회 결의 및 공시 등 모회사의 주주보호 절차를 요구한다.
다만 이번 결정이 주주 반발이나 금융당국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SK하이닉스가 공식적으로 밝힌 검토 중단 사유는 금융시장 여건과 주가 흐름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이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8회 반도체대전(SEDEX 2026)에서 관람객들이 SK하이닉스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뉴시스
IPO 검토는 멈췄지만…AI 메모리 투자 과제는 그대로
상장 검토 중단 이후에도 솔리다임의 생산능력 확충은 SK하이닉스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라 대용량 eSSD 수요가 증가하면서 솔리다임의 사업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회사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미국 신규 생산시설 확보를 위한 투자 시기와 규모, 재원 조달 방식을 다시 검토할 계획이다.
IPO를 통해 외부 자본을 조달하는 방안을 중단한 만큼 자체 재원을 활용한 직접투자를 비롯한 대안이 검토 대상이 될 전망이다. 다만 구체적인 투자 방식과 규모,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의 생산능력 확대와 경쟁력 강화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며 "투자 시기와 규모, 재원 조달 방식 등을 검토하면서 솔리다임의 성장과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함께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솔리다임의 미국 신규 공장 투자 필요성은 유지하면서 자금조달 전략을 다시 수립하게 된 셈이다. SK하이닉스는 향후 시설투자 부담과 주주환원 여력, 시장 상황을 함께 고려해 대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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