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리티 480억 달러 펀드 운용한 벤저민, 계약 하루 전 DFO 합류
5년 연평균 수익률 37.4%…반도체 분석·기술기업 투자 전문가
기술기업 투자 관리·신규 투자처 발굴…SK㈜ 거래 관여는 미확인
마이클 델 델테크놀로지스 회장 일가의 투자조직 DFO매니지먼트가 사무실을 둔 미국 뉴욕 550 매디슨애비뉴 빌딩. ⓒJim.henderson·Wikimedia Commons
마이클 델 델테크놀로지스 회장 일가의 투자조직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5440억원 규모의 SK㈜ 지분 매매계약을 체결하기 하루 전, 대형 반도체 펀드를 운용해 온 투자 전문가를 영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류한 인물은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에서 반도체 전문 펀드를 운용한 애덤 벤저민이다.
22일 금융감독원 공시와 미국 현지 소송 관련 보도를 종합하면 벤저민은 지난 1일 델 일가의 패밀리오피스인 DFO매니지먼트에 합류했다. 최 회장이 DFO 계열 투자기구인 DFO퍼블릭인베스트먼츠에 SK㈜ 보통주 97만2493주를 매각하기로 계약한 것은 이튿날인 2일이다. 거래 규모는 약 5440억원이다.
DFO퍼블릭인베스트먼츠는 2022년 12월 미국 델라웨어주에 설립된 투자기구다. 이번 계약의 주당 매매가격은 55만9387원으로, 거래는 다음 달 2일 시간외대량매매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계약 조건에 따라 완료 시점이 12월 1일까지 연장될 수 있으며 계열회사에 매수인 지위를 이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 매수인 변경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벤저민은 2020년 3월부터 피델리티의 '셀렉트 반도체 포트폴리오'를 운용한 인물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 펀드의 운용자산은 약 480억 달러 규모로,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37.4%에 달했다. 동종 펀드 가운데 최상위권 성과를 기록했으며 글로벌 펀드평가사 모닝스타로부터 별 5개와 골드 등급을 받았다.
그는 반도체 산업 분석과 기술기업 인수합병(M&A)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피델리티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SG코웬에서 기술기업 M&A와 주식 리서치를 담당했고,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제프리스에서 반도체 주식 리서치 책임자를 지냈다. 이후 피델리티에서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장비, 태양광 산업을 분석하고 관련 펀드를 운용했다.
벤저민은 올해 2월 피델리티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면서도 데이터센터 건설과 전력 인프라 확충 과정의 병목을 주요 변수로 지목했다. 반도체 제조공정 변화와 장비업체의 수혜 가능성도 투자 판단의 핵심 요소로 꼽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자료에서는 벤저민이 운용한 펀드의 구체적인 투자 내역도 확인된다. 올해 5월 31일 기준 셀렉트 반도체 포트폴리오 보유종목 자료에 따르면 일본 키옥시아의 보유 평가액은 약 6억5200만 달러였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과 차량용·산업용 반도체 업체 NXP의 보유 평가액도 각각 수십억 달러에 달했다.
반면 같은 시점 해당 펀드의 공시 보유종목에서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SK㈜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자료는 특정 펀드의 투자 내역에 한정돼 벤저민이 다른 계정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을 분석하거나 투자했는지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마이클 델 델테크놀로지스 회장. ⓒ델테크놀로지스 제공
벤저민이 델 일가의 투자조직으로 옮기게 된 경위는 피델리티와의 법적 분쟁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로이터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지난 9일 매사추세츠주 서퍽카운티 상급법원에 피델리티 모회사 FMR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월 1일 DFO로 이직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같은 달 10일 해고됐으며 경업금지 조항을 이유로 최소 1000만 달러의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피델리티는 벤저민이 서명한 계약상 제한 조건을 적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소송 관련 보도에서는 벤저민이 DFO에서 맡기로 한 업무도 확인됐다. 미국 보스턴글로브에 따르면 그는 기존 상장·비상장 기술기업 투자를 관리하고 신규 투자 기회를 발굴하는 역할을 맡는다. 반도체 펀드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기업 전반의 투자 기회를 검토하는 자리다.
벤저민은 지난 7월부터 DFO 이직을 추진해 왔다. DFO와 최 회장 측이 언제부터 SK㈜ 지분 매각을 협의했는지, 벤저민이 공식 합류 전후 투자 검토에 참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거래는 최 회장이 추진하는 약 9440억원 규모의 SK㈜ 지분 매각 가운데 일부다. 최 회장은 DFO 측에 5440억원어치를 매각하는 한편, 한국투자증권과 약 4000억원 규모의 주가수익스왑(PRS) 연계 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SK㈜는 AI 반도체용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하는 SK하이닉스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델테크놀로지스 역시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인프라 사업을 확대하고 있어 양측은 반도체 산업에서 사업적 접점을 갖고 있다.
SK㈜ 지분 인수 주체는 델테크놀로지스가 아닌 델 일가의 별도 투자기구다. DFO의 구체적인 투자 목적과 향후 의결권 행사 방침은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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