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이후 2년 만의 복귀작 '닥터X'
최고 시청률 18.5%...넷플릭스 비영어 부문 1위
“나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툭 던지는 한마디에 수술실의 공기가 바뀐다. 퇴근 시간이면 칼같이 병원을 나서고 컵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이 외과의는, 수술대 앞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지독하다. 배우 김지원이 빚어낸 계수정이다.
지난 9일 첫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는 방영 초반부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닐슨코리아 기준 1회 전국 시청률 11.4%로 올해 미니시리즈 첫 회 최고 기록을 세운 데 이어 2회 14.9%, 4회 18.5%로 매회 자체 최고치를 경신했고, 넷플릭스 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며 해외 화제성까지 손에 넣었다. 그 중심에 ‘수술방의 미친 계(개)’로 불리는 천재 외과의 계수정, 그리고 김지원이 있다.
배우 김지원 ⓒ하이지음스튜디오
2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점에서 ‘닥터X’를 향한 관심은 방영 전부터 남달랐다. 2024년 tvN ‘눈물의 여왕’이 최고 시청률 24.9%로 tvN 드라마 역대 1위에 오르면서, 김지원에게는 ‘흥행 보증 수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이만한 성공을 거둔 배우라면 다음 행보는 대개 안전한 쪽으로 기운다. 대중이 열광했던 결을 이어가거나 흥행 타율이 높은 로맨틱 코미디를 고르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지만, 김지원은 멜로를 철저히 걷어낸 메디컬 누아르로 과감하게 방향을 틀었다.
결코 녹록지 않은 도전이었다. 일본 TV아사히에서 시즌 7까지 방영되며 큰 사랑을 받은 동명 시리즈의 리메이크인 만큼, 원작 주인공과의 비교는 처음부터 예정된 숙명이었다. 여기에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대신 ‘당신이 죽였다’로 여성 투톱의 연대를 그려낸 이정림 감독과 손잡고, 배우 이정은과 호흡을 맞추는 길을 택했다. 로맨스의 후광 없이 서사와 연기력만으로 정면 돌파에 나선 셈이다.
그렇게 탄생한 계수정은 ‘천재’라는 수식어 안에 머물지 않는다. 김지원은 이 인물을 타고난 천재라기보다 간절함 하나로 최선을 다해온 사람으로 읽어냈다. 술기(수술 기술)를 연마하는 데 모든 것을 쏟느라 사회성과 유연성이 결여된, 어딘가 한 조각이 비어 있는 인간의 모습이 그의 해석을 거쳐 입체적으로 살아났다.
'닥터X' 계수정 역 배우 김지원 ⓒ하이지음스튜디오
감정 표현을 한계치까지 억누르는 연기 톤 역시 이 해석에서 출발한다. 장르 특성상 과장되기 쉬운 설정 속에서도 그는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생사가 오가는 수술실의 냉정함도, 컵라면을 앞에 둔 일상의 건조함도 모두 같은 무표정 위에서 펼쳐진다.
필모그래피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덜어내는 연기’는 김지원이 처음부터 품고 있던 결이었다. 2013년 '상속자들'의 유라헬은 자칫 표독스러운 악역으로 소비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그는 과장된 독기 대신 도도한 자존심으로 인물을 붙잡았다. 2016년 ‘태양의 후예’의 윤명주는 사랑 앞에서도 군인의 절도를 놓지 않았고, 2017년 ‘쌈, 마이웨이’의 최애라는 꿈이 좌절된 현실의 쓸쓸함을 신파 없이 웃음 뒤에 감췄다. 감정을 발산하는 당찬 인물들 속에서도 김지원은 늘 한 뼘쯤 덜어낸 자리에 진심을 놓아두었다.
그 결이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 2022년 ‘나의 해방일지’다. 말수 적고 무기력한 염미정을 맡은 그는 표정과 대사를 비워낸 자리를 건조한 눈빛과 침묵으로 채우며 인물의 묵직한 내면을 전했다.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극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낸 순간이었다. 그 뒤로 이어진 행보는 ‘비워냄의 미학’을 한층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이었다. 꾸밈과 수사를 덜어내고 단단한 실력과 뼈대만 남긴 계수정은, 지금 김지원이 도달한 연기적 성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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