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보다 ‘사이다’…의료 파업이 바꾼 메디컬 드라마 흥행 공식 [방송 뷰]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6.10.23 14:01  수정 2026.10.2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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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히어로 활약하는 ‘닥터X’·‘중증외상센터’ 인기

휴머니즘 강조한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향한 반감과 비교

뛰어난 실력과 남다른 사명감을 바탕으로, 의료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히어로’가 의학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따뜻한 감동 대신 기득권을 부수는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의학 드라마에서도 흥행 공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방송 중인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가 대표적인 예다. ‘메디컬 누아르’를 표방하는 이 작품은 오직 천재적인 수술 실력으로 부조리를 깨부수는 수술방의 미친 계, ‘닥터X’ 계수정(김지원 분)의 활약으로 쾌감을 선사한다.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18.5%를 돌파하며 신드롬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드라마를 향한 시청자와 의료계의 온도차는 크다. 일부 의사들은 “의료 현실을 왜곡하고 의료인을 악의적으로 묘사했다”며 ‘닥터X’에 반발 중이다. 자신을 정형외과 의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15일 SNS를 통해 ‘의료 현실 왜곡 및 의료인 묘사’를 이유로 ‘닥터X’에 대한 방송심의를 요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닥터X’ 포스터ⓒSBS

그러나 시청자들은 폐쇄적인 의사 특유의 조직 문화와 부조리에 맞서는 계수정의 거침없는 행보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는 모양새다. 높은 시청률은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한다”는 옹호와 “공감가는 부분이 있다”는 호평이 이어진다. 한 예로 최근 회차에서는 계수정이 뇌출혈로 쓰러진 병원 청소 용역 직원을 개두술로 살리는 에피소드가 등장, 시청자의 분노를 끌어냈다. 당시 “의사도 사람”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신경외과 교수들을 향해 계수정은 “그쪽만 사람이야? 환자도 사람이야, 의사이려고 노력은 안 하십니까? 그냥 사람이기만 하십니까? 그럼 언제 의사하십니까?”라고 일침을 가해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에서도 마냥 선하지만은 않은 천재 의사 백강혁(주지훈 분)의 활약이 시원함을 선사했다. 답답한 병원 시스템에 맞서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백강혁의 활약이 통쾌함을 안기며 글로벌 흥행에도 성공했다. 백강혁 역시 계수정과 마찬가지로 이익을 중시해 중증외상팀을 없애려는 병원 측에 일침을 날리는 속 시원한 활약으로 시리즈의 인기를 견인했다. 국내를 넘어 해외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은 이 드라마는 이례적으로 시즌2와 3 동시 제작에 돌입했다.



‘중증외상센터’ 스틸ⓒ넷플릭스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 의대 증원 반대 파업 등 최근 수년간 이어져 온 국내 의료계 이슈와도 무관하지 않은 모양새다. 의대 증원 반대 파업 등으로 장기화된 의료 공백 사태를 겪으며, 시청자들은 더 이상 미화된 의료진의 모습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병원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의사들을 조명하는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방영 전부터 “지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지나친 판타지”라는 대중의 싸늘한 반감에 부딪혀야 했다. 당시 의사들의 의대 증원 반대 파업과 맞물려 해당 드라마는 ‘판타지’라는 차가운 반응을 얻었다.


20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가 ‘휴머니즘’ 가득한 이야기로 감동을 선사했다면, 이제는 기득권을 타파하는 히어로들이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는 셈이다. 꽉 막힌 현실을 시원하게 뚫어주며 쾌감을 선사하는 장르물이 흥행하는 것도 물론 사실이다. 다만 의료계 및 의료인의 현실을 왜곡한다는 일부 의사의 지적에 싸늘한 시선이 이어지는 것엔, 드라마의 통쾌한 흥행과는 별개로 씁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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