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세계야구선수권서 시작된 44년 대서사시
올 시즌 후 12월 철거 작업…2031년 말 돔구장 완성
한국 야구의 뜨거운 숨결이 숨 쉬던 ‘성지’ 잠실야구장이 44년간 이어진 역사의 막을 내렸다.
KIA 타이거즈는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LG 트윈스와의 준플레이오프(준PO·5전 3선승제) 3차전에서 13-1 대승을 거두며 시리즈 전적 3승 무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 지었다.
정규시즌을 3위로 마친 KIA가 단 3경기 만에 준PO를 끝내면서, 정규시즌 4위 LG의 가을야구 여정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이 경기는 올 시즌 종료 후 예정된 철거 및 재건축 공사를 앞두고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진 ‘마지막 프로야구 공식 경기’로 기록됐다.
준PO 3차전은 잠실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됐다. ⓒ 연합뉴스
1982년 태동부터 ‘거포들의 무덤’까지…한국 야구의 중심
잠실야구장은 1980년 4월 첫 삽을 뜬 뒤 1982년 7월 마침내 위용을 드러냈다. 당초 그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제30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치르기 위해 건립된 대형 전용 구장으로, 때마침 1982년 뼛속까지 출범한 KBO 프로야구와 궤를 같이하며 성장해 온 한국 야구의 산실이다.
잠실의 규격은 미국 메이저리그와 비교해도 매우 큰 편이다. 홈부터 좌우 펜스까지 100m, 중앙 펜스 125m, 좌우중간 120m로 형성된 광활한 그라운드는 개장 당시 기준 국내 최대 규모였다. 펜스 높이 역시 2.6m에 달해 웬만한 큼직한 타구도 담장을 넘어가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잠실은 ‘거포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홈런에 의존하는 거포형 타자들에게는 통곡의 벽이었으나, 반대로 정교한 컨트롤을 지닌 투수들과 신속한 수비 범위, 치밀한 벤치 싸움이 강조되는 ‘전략 야구’의 정수를 보여주는 무대로 자리를 잡았다.
동시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홈런왕들이 잠실의 광활한 담장을 넘어뜨릴 때마다 팬들이 느꼈던 쾌감은 배가됐다. 1995년 OB 베어스의 김상호가 잠실을 홈으로 쓰며 사상 첫 25홈런-100타점을 기록했던 순간이나, 1998년 두산 타이론 우즈가 42홈런을 터뜨리며 리그를 지배했던 역사도 모두 이 그라운드 위에서 써 내려간 전설이다.
잠실구장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LG 트윈스. ⓒ 연합뉴스
‘한 지붕 두 가족’ KBO리그 흥행을 이끈 잠실 라이벌전
잠실구장을 상징하는 이야기는 단연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전 OB 베어스)가 구축한 ‘한 지붕 두 가족’의 역사다.
1985년까지 충청도를 연고지로 삼던 OB 베어스가 1986년 서울로 이전하며 잠실에 둥지를 틀었고,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한 LG 트윈스가 가세하면서 한 구장을 공유하는 독특하고 치열한 동거가 시작됐다.
동일한 연고지와 홈구장을 공유하며 펼쳐진 두 팀의 ‘잠실 라이벌전’은 매년 KBO리그 전체 흥행을 견인하는 볼거리였다. 시즌 중 주말 라이벌전이나 어린이날 시리즈, 그리고 가을야구에서 맞붙는 등 치열하게 맞붙었다.
1루와 3루 응원석이 극명하게 갈라진 채 펼쳐지는 육성 응원과 화려한 깃발 물결, 각 팀의 대표 응원가 대결은 잠실야구장만이 가진 고유하고 압도적인 응원 문화를 창조해 냈다.
잠실구장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LG 트윈스. ⓒ 연합뉴스
12월 철거, 2032년 ‘최첨단 돔구장’ 시대로
많은 팬들의 추억이 서린 잠실야구장이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른 노후화와 관람객 편의성 개선,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은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서울시의 ‘잠실 스포츠·MICE 복합공간 조성 민간투자 사업’ 구상에 따라 현 잠실야구장은 오는 12월부터 본격적인 철거 작업에 돌입한다.
기존 야구장 부지에는 3만 석 이상 규모를 갖춘 최첨단 복합 돔구장이 들어선다. 기후 요인에 좌우되지 않는 쾌적한 관람 환경과 첨단 IT 기술이 접목된 신축 돔구장은 오는 2031년 말 완공을 목표로 건립된다.
이 기간 ‘한 지붕 두 가족’ LG와 두산은 잠시 정든 보금자리를 비운다.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개 시즌 동안 인근에 위치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을 야구장으로 개조한 임시 홈구장에서 경기를 치른 뒤, 2032년부터 꿈의 돔구장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예정이다.
44년간 한국 야구의 흥망성쇠를 함께하며 팬들의 울고 웃는 함성을 품었던 잠실야구장의 조명탑 불빛은 꺼지지만, 그 터 위에서 피어난 숱한 명승부와 유산은 2032년 새로이 우뚝 설 돔구장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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