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형진의 ‘친분’, 심수봉의 ‘연륜’…무대 위로 번진 선후배 권위주의 [초점]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10.20 13:52  수정 2026.10.2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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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방송 행사·트로트 축제서 잇단 공개 하대 논란

"의도 없었다" 해명에도 대중 반응은 싸늘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90도로 허리를 숙인 후배에게 돌아온 말은 “(내가) 선배니까 다시 한 번 인사해”라는 핀잔이었다. 지난 17일 서울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창사 70주년 극동방송 홈커밍데이’ 특별공연에서 배우 공형진이 공동 진행자인 뮤지컬 배우 차지연에게 건넨 말이다. 차지연은 별다른 말 없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이 장면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졌다. 불과 한 달 전, 가수 심수봉이 트로트 축제 무대에서 10대 후배 김다현을 공개적으로 깎아내렸다가 사과한 일이 채 잊히기도 전이다. 한쪽은 ‘친분’을, 다른 한쪽은 ‘연륜’을 앞세웠지만 두 장면이 드러낸 것은 선후배간 서열 문화가 관객이 지켜보는 무대 위로 여과 없이 올라왔다는 점이다.


'창사 70주년 극동방송 홈커밍데이' 무대에 선 공형진(왼쪽)과 차지연 ⓒ극동방송 유튜브

이날 공형진과 차지연은 공연 중간 진행을 함께 맡았다. 차지연이 주먹을 쥐고 “아멘”을 외치자 공형진은 “조금 있으면 치겠다?”라고 받았다. 무대 뒤 LED 화면에 차지연의 사진이 뜨자 “내 사진은 왜 없냐. 내가 얘보다 훨씬 선배인데”라고 했고, 차지연이 곡을 소개하자 “너 왜 연기해? 그냥 평소처럼 해”라고 말을 끊었다. 그때마다 차지연은 “죄송하다” “아닙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공식 석상에서 공동 진행자를 ‘얘’ ‘너’ ‘지가’로 부른 것도 도마에 올랐다.


논란이 커지자 공형진 측은 19일 소속사를 통해 사과했다. 평소 친분이 있는 후배에게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자는 취지였을 뿐, 무안을 주거나 불쾌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차지연 측에도 이미 사과했으며, 공적인 행사에서는 친근한 말이라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라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러나 비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문제는 의도가 아니라 무대 위의 구도였기 때문이다. 관객과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후배가 할 수 있는 일은 웃으며 넘기는 것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불쾌함을 드러냈다가는 행사 분위기를 깬 쪽이 되기 쉽다. 차지연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상황을 수습한 모습이 오히려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 이유다.


비슷한 장면은 한 달 전에도 있었다. 지난달 20일 2026 진안고원 트로트 페스티벌에서 가수 심수봉은 김다현에 이어 무대에 오른 뒤, 앞 순서 가수를 두고 노래가 뭔지도 삶이 뭔지도 모르는 아가씨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 54살 어린 미성년 후배를 공개 석상에서 깎아내린 것이다. 김다현은 자신의 무대를 모니터링하다 이 발언을 듣고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심수봉은 다음 날 사과문을 내고 실언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앞 순서 가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몰랐고 특정인을 망신 주려던 말은 아니었다면서도, 어른으로서 후배에게 상처를 준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했다.


트로트 가수 심수봉(왼쪽)과 김다현 ⓒ데일리안DB, 현컴퍼니

공형진은 ‘농담’의 형식을, 심수봉은 ‘쓴소리’의 형식을 빌렸을 뿐이다. 마이크를 쥔 선배는 거리낌 없이 말하고, 후배는 공개된 장소라는 이유로 속수무책 당해야만 했다. “의도는 없었다”는 두 사람의 해명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최근엔 연예계 안팎에서 선후배 군기 문화에 대한 증언도 잇따랐다. 9월에는 개그맨 김인석이 신인 시절 나이 많은 후배의 90도 인사가 불편해 못 본 척했다가, 이를 무시로 오해한 후배에게 맞을 뻔했다고 고백했다. 앞서 2024년 방탄소년단 슈가는 방송국에 가면 “인사 안 하냐”고 다그치는 선배들이 많았고 그 고압적인 분위기가 싫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대기실이나 학교 등 음지에서 이뤄지던 ‘인사 강요’와 ‘서열 다지기’가 이제는 관객 앞 무대 위에서까지 버젓이 재현되고 있다. 공형진의 “선배니까 다시 인사”라는 발언은 이러한 폐습이 아직도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원로 배우 이순재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제 선후배는 종속이 아닌 대등한 관계라며, “(후배들은) 배우 하러 온 거지, 시중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오랜 군림이 관행이 되고 습관이 됐다는 진단도 덧붙였다.


한때 방송가와 공연계에서 선배의 독설이나 서열을 이용한 놀림은 하나의 유머 코드로 통했다. 하지만 친분도 연륜도 무대 위에서 후배를 낮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한쪽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억지 농담이나 조언을 가장한 망신주기에 대중은 더 이상 환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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