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칼리드 국제공항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는 모습. 이날 킹칼리드 공항에서는 사우디 국적 민간항공사 기장 1명을 포함해 3명이 사망했다. ⓒ AP=연합뉴스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글로벌 스포츠계의 중심으로 도약하려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야심이 뜻밖의 악재를 만났다. 중동 지역의 안보 불안이 고조되면서 국제 스포츠 이벤트의 연기와 취소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대회를 유치해 국가 위상을 높이고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려던 사우디의 핵심 전략에도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 스포츠 단체와 참가국들의 움직임도 달라지고 있다.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들이 출전하는 이벤트 대회 ‘식스 킹스 슬램’의 일정이 변경됐고, 아시아투어의 주요 대회인 사우디 인터내셔널 골프 대회도 연기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비디오 축구 게임 대회까지 일정이 미뤄지는 등 사우디에서 열릴 예정이던 국제 행사들이 잇따라 차질을 빚고 있다.
파장은 선수단 철수로도 이어졌다. 도시 사이클 세계선수권대회 참가를 앞둔 호주 대표팀은 선수단 안전과 안보 위협을 이유로 출전을 철회했다. 국제 대회 참가국이 안전 문제를 들어 대표팀을 철수시켰다는 점에서 사우디의 개최 여건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단순한 일정 변경을 넘어 국제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고 운영하는 국가의 신뢰도까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당장 앞둔 메가톤급 이벤트는 2027년 1월 사우디에서 개최될 예정인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축구 국가대항전인 만큼 개최 여부와 안전 문제가 국제 축구계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AFC와 대회 조직위원회는 일단 정상 개최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대회 관계자들은 2027년 아시안컵 준비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정상 개최 의지가 곧 안보 우려의 해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향후 정세 변화와 참가국들의 판단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19일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킹칼리드 국제공항의 연료 저장고 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사태가 주목받는 이유는 사우디의 스포츠 전략이 단순한 흥행 사업을 넘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정책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국부펀드(PIF)를 중심으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하고 국제대회를 유치해 왔다. 스포츠를 통해 기존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 관광 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는 ‘비전 2030’의 핵심 전략이기도 하다.
실제 사우디는 LIV 골프를 출범시켜 세계 골프계의 판도를 흔들었고,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을 자국 리그로 끌어들였다. 포뮬러원(F1)과 대형 복싱 이벤트를 유치한 데 이어 2034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권까지 확보하며 글로벌 스포츠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자본만으로 스포츠 산업의 성공을 완성할 수 없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세계적인 선수와 대회를 끌어오는 데는 막대한 투자금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선수단과 관중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제 대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아무리 화려한 경기장과 천문학적인 상금을 내걸더라도 선수와 관중, 취재진이 안심하고 이동할 수 없다면 대회 개최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호주 사이클 대표팀의 철수와 각종 대회의 일정 변경은 국제 스포츠 행사가 개최국의 안보 환경과 운영 역량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경제·외교적 파장도 무시하기 어렵다.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관광객 유치와 국제회의 개최, 해외 투자 유치에도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일머니만으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스포츠의 필수 조건, 즉 ‘안전과 평화’라는 기본 명제를 사우디가 어떻게 증명해 낼 수 있을지, 전 세계 스포츠계 및 미디어의 눈과 귀가 사우디의 위기 극복 능력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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