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부터 엔시티127까지 남자 아이돌에게 군대는 더 이상 팀 활동의 마침표가 아니라 그룹의 2막을 여는 장치가 됐다. 전역해도 그룹 이름으로 앨범·투어를 이어가는 고연차 보이그룹이 늘어나면서 한편으론 신인 남돌이 치고 올라올 수 있는 타이밍과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19일 S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엔시티 127은 지난 8일 도영·정우가 나란히 현역 입대해 지난해 11월 육군 군악대로 입대한 재현까지 8명의 멤버 중 총 세 명이 군 복무 중이다. 이들은 '도재정'이라 불리는 그룹의 인기를 담당하는 멤버들이지만 팬들은 군백기(군 복무로 인한 공백기)를 체감하기 어렵다. 입대 전부터 자체 예능, 다큐, 음악 콘텐츠 등을 촘촘히 찍어 두고 순차 공개하며 그룹의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14일에는 리더 태용이 해군 군악대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으며 미국, 캐나다, 일본 국적인 멤버들과 아직 군 입대와는 거리가 먼 막내 해찬까지 남아 있어 군 복무가 그룹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습이다.
이 같은 ‘군백기 관리’는 이제 보이그룹 업계의 기본 전략이 됐다. BTS는 2022년 군 입대 선언 당시부터 '완전체 2막'을 전제로 각 멤버의 입대 시점과 솔로 활동 로드맵을 함께 발표했다. 진·제이홉에 이어 RM·뷔, 지민·정국, 슈가까지 7명이 모두 2025년 6월 전후로 병역 의무를 마치면서 군 공백을 끝냈고 이달 라이브 방송에서 2026년 새 앨범과 월드 투어 계획을 공식화했다. 군 복무 기간 동안은 멤버별 솔로 앨범, 다큐멘터리, 여행 예능 등을 미리 촬영해 순차 공개하며 자체 콘텐츠로 인기를 얻었던 기존의 흐름을 끊지 않는 방식으로 군백기를 버텼다.
세븐틴도 비슷한 전략을 택했다. 지난해 정한이 첫 주자로 입대하고 2025년 3월 원우, 9월 우지·호시가 차례로 현역 입대하면서 현재는 9인 체제로 월드 투어 '뉴 월드'(NEW _ WORLD)를 소화하는 중이다. 세븐틴 측은 입대한 멤버들의 예능·콘서트 영상, 다큐멘터리를 사전 녹화해 팬 커뮤니티 플랫폼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4명이 군 복무 중임에도 해외 투어와 유닛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데, 에스쿱스와 민규가 유닛으로 미니 1집 '하입 바이브'(HYPE VIBES)로 약 88만장의 초동 판매고를 올렸고 도겸·승관도 유닛을 결성해 내년 1월 미니 1집 '소야곡' 발매를 앞두고 있는 등 세븐틴 이름을 건 유닛 앨범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가며 팀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어라운드어스
군대를 ‘팀의 2막’으로 활용하는 흐름은 2세대 그룹에서 먼저 시작됐다. 하이라이트(구 비스트)는 2018년 윤두준을 시작으로 멤버 전원이 차례로 입대한 뒤 막내 손동운이 2020년 12월 전역하면서 ‘군필 4인조’ 체제를 완성했고, 이듬해 5월 완전체 컴백 앨범을 냈다. 이후에도 매년 그룹 앨범을 발매했고 올해 5월 나온 미니 6집 타이틀 '체인스'(Chains)로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샤이니 역시 2023년 4월 막내 태민이 마지막으로 전역한 뒤 약 2년 만에 군 공백을 끝내고 정규 8집 활동을 재개했다. 현재 태민과 온유는 SM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이 끝나 현재는 서로 다른 소속사에서 솔로 앨범·예능 등 개인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지만 올해 5월에는 그룹으로 싱글 '포에트 | 아티스트'(Poet | Artist)을 냈으며 여전히 샤이니라는 팀 정체성을 유지하고 멤버 간 언급도 자유롭다. 인피니트·비투비 등도 전원 군 복무를 마친 뒤 그룹 단위 앨범과 콘서트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엑소가 모든 멤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연말 한국 팬미팅과 내년 발매할 정규 8집 프로모 활동을 진행하는 등 군필 컴백 그룹 대열에 합류했다.
과거엔 군 입대를 그룹 활동의 마침표로 여겼다. 멤버가 차례로 입대하면서 공백이 길어지고 그 사이 일부는 솔로·연기 활동으로 진로를 바꿔 팀이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양상이 다르다. 군 복무 기간을 그룹 장기 플랜에 포함시키고, 멤버 별 입대·전역 시기를 조율해 한두 명씩 순차적으로 보내는 대신 팀 활동은 끊기지 않도록 유닛·솔로·사전 촬영 콘텐츠를 섞어 운영하는 방식이 보편화했다.
이 과정에서 군대는 더 이상 아이돌 서사를 끊어먹는 변수가 아니라, 오히려 고연차 그룹들의 그룹 수명을 늘리는 안전 장치가 됐다. 전원 군필이 된 2세대 그룹들은 데뷔 10년, 15년이 지나서도 재결합 콘서트와 앨범으로 '장수 아이돌' 모델을 만들어가고, BTS·세븐틴·엔시티 127 같은 3세대 그룹들은 처음부터 군 공백 이후의 2막을 염두에 둔 기획으로 팬덤을 붙잡아두고 있다. 문제는 그 여파가 신인 보이그룹에게도 고스란히 미친다는 점이다. 군 복무를 마친 선배 그룹들이 '군대까지 다녀온 믿고 보는 팀'이라는 새로운 셀링 포인트로 10·20대 팬층을 다시 끌어모으면서 아이돌 시장 파이가 크게 늘지 않은 상황에서 신인 남돌이 치고 올라올 수 있는 타이밍과 지면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군대가 보이그룹 해체를 막아주는 방패가 된 만큼, 한편으로는 보이그룹 세대교체를 더디게 만드는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남자 아이돌에게 군 복무 이후가 끝이 아닌 '시즌2'가 된 지금, 보이그룹 시장의 무게추는 오래 버티는 팀들에게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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