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교차한 유니섹스→개성 중시한 젠더리스로
남성용·여성용 구별된 제품 아닌 젠더리스 제품 출시 이어져
MZ 세대 중심으로 점차 강화
ⓒ
패션계를 중심으로 불었던 성벽의 경계를 허무는 젠더리스(genderless) 현상은 10년 이상 진행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리스가 보여주는 ‘낯설음’ 역시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은 ‘익숙함’으로 변해갔고, 성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개인의 개성을 우선시 하는 젠더리스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라이프 스타일의 트렌드가 됐다. 더 이상 성별을 따지는 일은 무의미해진 것이다.
ⓒ
2002년 안정환과 김재원이 동반 출연했던 '꽃을 든 남자' 화장품 컬러로션 CF는 당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스킨케어가 아닌 얼굴색을 환하게 바꿔주는 컬러로션을 남자 연예인이 광고 한다는 것 자체가 새롭게 다가왔다. 이후 현빈, 윤상현, 정일우가 계보를 이어왔다. 또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가 네이처 리퍼블릭 화장품 모델이 되고 샤이니가 에뛰드 하우스 모델이 되며 더 이상 화장은 여성들만의 행위가 아니란 것을 꾸준히 표현했다. 지금은 강다니엘이 지방시 립스틱을 발라도, 몬스타엑스가 어반디케이 아이쉐도우를 눈에 얹어도, 하성운이 베니피트 아이브로우로 눈썹을 그려도 신기한 일이 아니다.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젠더리스 바람이 화장품 모델이 여자였던 기준에도 영향을 줬다.
ⓒ
변화하는 젠더 의식에 따라 생긴 화장품 브랜드도 있다. 라카는 젠더리스 뉴트럴 섹조 화장품이란 콘셉트로 런칭됐다. 이후 바이레도 지난해 말 젠더리스를 내세운 메이크업 라인을 선보였다.
여성들의 것으로 여겨졌던 소품을 적극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패션아이콘으로 불렸던 지드래곤이 샤넬 백을 들고 공항에 나타나는가 하면 방탄소년단의 제이홉은 현재 20대부터 30대 여성들에게 '핫'한 보테게 베네타 카세트백을 걸쳤다. 엑소 카이도 구찌의 작은 미니백을 들고 공식행사에서 포즈를 취했다.
가방 뿐 아니라 액세서리도 남, 녀를 가리지 않고 활용되고 있다. 방탄소년단 정국과 뷔는 진주 목걸이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 화제가 됐다. 연예인 뿐 아니다 일상에서도 남성들은 성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한 패션 브랜드 대표는 “예전에도 액세서리를 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튀지 않거나 작은 액세서리를 주로 했다. 현재는 자신의 마음만 든다면 크기나 디자인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아이덴티티 상징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젠더리스 바람은 남성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영화 '미나리'에서 손자 이삭이 할머니 순자에게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다. 쿠키도 만들고, 나쁜 말도 안하고, 남자 팬티도 안 입고"라는 대사가 있다. 영화 속 배경은 1980년대으로 당시에는 여성이 남성용 트렁크 팬티를 입는게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지금은 사각팬티를 찾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지난해 말 브랜드 자주는 여성이 입을 수 있는 드로즈와 트렁크를 런칭했고, 2개월 만에 여성용 팬티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여성용 드로즈, 트렁크는 포털사이트 쇼핑 카테고리에서 '네모팬티', '찰떡팬티', '여트렁크 하트', '사각 보이숏 팬티' 등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들이 배치돼 있다.
남성용 스킨 케어에서 맡을 수 있는 향을 찾거나 묵직하고 우디(woody)한 향을 찾는 여성들도 늘어났다. 배우 문가영은 보그 코리아 유튜브 채널에서 소품을 소개하는 ‘왓츠 인 마이 백’ 영상에서 디올 옴므 향수를 즐겨 쓴다며 “중성적인 향을 좋아해서 남자들이 쓰는 향수를 많이 산다. 직원들이 선물용이라고 생각하는데 다 제가 쓴다. 이거 뿌리면 여자 친구들이 되개 좋다고 많이 물어본다”고 말했다 .
ⓒ
향수 매장에서 일을 하는 한 직원은 “여성용, 남성용으로 향수를 선택하는 고객들은 많지 않다. 남성 고객이 화장품 냄새가 풍기는 향이나 상큼한 시트러스 계열을 좋아하기도 하고 여성 고객이 우디한 향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차라리 성별보다는 계절에 따라 향수를 선택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유니섹스라는 개념으로 남, 성의 이분법을 허문 현상이 있었다. 1990년대 유니섹스 시대가 남성이 여성용을, 여성이 남성용을 사용하는 교차 방식을 이뤘다면 젠더리스는 하나의 제품을 경계 없이 어떤 성이든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는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이며 남자든, 여자든 본래의 모습에서 한층 편하고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솔직한 욕구다.
뷰티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뷰티시장이 MZ세대를 중심으로 성별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제품에 있어서도 더이상 남성용, 여성용 구별된 제품이 아닌 LAKA와 같은 젠더리스 브랜드 제품들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으며, 남성소비자 역시 여성제품이라는 선입견 없이 본인의 피부타입에 맞춘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특히 기초 제품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남성 연예인들은 물론 남성 뷰티크리에이터들의 피부 관리 노하우와 메이크업 콘텐츠 노출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과거 그루밍족만이 즐기던 니치시장(Niche Market)이 일반인들로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 일상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점차 강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라 젠더리스라는 개념 역시 머지않아 구시대적 키워드로 여겨질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