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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초점] “첫 방송 전에 드라마 폐지 요구를”…정당한 비판 vs 과열 반응


입력 2021.04.01 08:45 수정 2021.04.01 08:47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조선구마사' 역사왜곡‧동북공정 논란, 다른 드라마 불똥

중국 콘텐츠 원작으로 한 드라마 잠정 중단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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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조선구마사'가 역사왜곡과 동북공정에 빌미를 줬다는 이유로 한국 드라마 사상 최초로 2회 만에 폐지됐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행동은 과거와 달랐다. 제작진을 향해 항의 글만 올리지 않았다. 제작 지원을 약속한 기업들, 장소를 협찬한 지자체에게 압박을 기하며 이들로부터 '조선구마사'에 대한 지원 취소까지 얻어냈다. 결국 시청자들은 80% 촬영을 마친 '조선구마사'의 방송을 중단시키는 결과물을 냈다.


시청자는 다음 화살을 JTBC '설강화'에게 겨눴다.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여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수호(정해인 분)와 서슬 퍼런 감시와 위기 속에서도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대학생 영초(지수 분)의 시대를 거스른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인 수호가 위장한 남파 간첩으로, 간첩이 운동권을 주도하는 설정,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팀장(장승조 분)을 '원칙적이고 열정적이며 대쪽같은 인물'이라고 소개한 것,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실존 인물 천영초의 이름과 유사한 여자 주인공(지수 분)이름이 문제가 됐다.


JTBC는 논란을 진압하기 위해 지난 26일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결코 아니다. 이와 같은 비판은 제작 의도와 전혀 다른 것이고 무관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힌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비난 여론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가구를 협찬하기로 했던 흥일가구는 지원 계약을 취소했고 디시인사이드 '설강화' 갤러리는 지난 30일 서울 상암동 JTBC 사옥 앞에서 입장표명 및 드라마 폐지를 요구하는 트럭 시위를 벌였다. 폐지를 요청하는 국민청원도 불이 붙었다. 15만명 이상(3월 31일 기준)이 '설강화' 폐지 요구에 동참했다.


JTBC는 "'설강화'에 대한 입장 발표 이후 여전히 이어지는 억측과 비난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한다"며 2차 공식입장을 밝혔다. JTBC는 "현재의 논란은 유출된 미완성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 일부의 조합으로 구성된 단편적인 정보에서 비롯됐다며 파편화된 정보에 의혹이 더해져 사실이 아닌 내용이 사실로 포장되고 있다. 물론, 이는 정제되지 않은 자료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제작진의 책임"이라면서 '설강화' 내용 일부를 공개하고 여자 주인공 이름인 영초를 변경하겠다고 약속했다.


JTBC는 '설강화'가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것이 아닌, 80년대 군부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부당하게 탄압 받았던 캐릭터가 등장하는 점, 정권 재창출으르 위한 부정한 권력욕, 이에 호응하는 안기부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캐릭터들이 배치됐다는 점을 근거로 간첩활동이나 안기부를 미화한다는 논란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역사 소재 드라마는 상상력이 가미되더라도 주요 내용들은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그래서 ‘고증’이라는 것을 거친다. 그 틀을 유지한 상황에서 다양한 내용들을 엮어야 한다. 물론 애초 가상의 국가를 만들거나, 가상의 인물을 내세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드라마 방영 전에 ‘방영 중단’으로 몰고 가는 것에 대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조선구마사' 사태는 제작자들이 경각심을 갖고 콘텐츠 제작에 접근하도록 순기능을 만든 것은 분명하다. 이를 거스를 시 철퇴를 맞아야 함은 분명하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드라마를 향해 단편적인 정보로 재단해 비난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는 다시 한 번 고민 해볼 지점이다. 비난을 위한 비난, 과도한 몰아가기는 창작자들과 제작 환경을 위축시키고 심각한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설강화' 뿐만 아니라 '간 떨어지는 동거'는 중국 OTT 기업 아이치이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시청자들의 다음 타깃에 올랐으며 중국 소설 '장야난명'(동트기 힘든 긴 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도 검열 대상이 됐다. 현재 중국이 김치, 한복 등 우리나라 문화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으로 반중정서가 전반적으로 심화돼 해당 드라마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한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최근 배우들에게까지 책임을 요구하는데 과한 처사인 것 같다. 지금 중국의 웹툰, 소설을 원작으로 둔 드라마들이 잠정 스톱된 상태다. 중국의 원작 소설을 드라마화 하려는 한 드라마는 지난 주 배우들과의 주, 조연 미팅을 중단했다. 배우들 사이에서 '사극이나 시대극을 하면 안되겠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탄했다.


배우 소속사 관계자 역시 "역사왜곡이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적해 피드백을 끌어내는 것은 우리 콘텐츠를 위해서도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실체 없는 콘텐츠에 대해서 폐지 요구까지 오가는 것은 아직 이르다. 현재 제작사가 네티즌들의 지적에 대한 피드백을 했고, 이 피드백 내용이 어쨌든 추후 방송 후 왜곡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더 큰 손실을 입을 걸 아는 상황에서 감안하여 결정한 피드백일테므로 일단 방송을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는 것 같다"고 염려했다.


이어 "역사왜곡과는 다른 측면에서 중국이라는 글자가 적혀있기만 하면 타깃으로 몰리는 지금의 분위기 또한 보다 세밀한 판별이 요구된다고 생각하는데, 중국을 비롯한 해외 자본의 투자가 현실적으로 우리 콘텐츠 산업의 성장에 플러스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글자가 있다고 모든 K콘텐츠를 묻어버리는 것 보다는 콘텐츠의 질을 꼼꼼히 따져보고, 투자자 관계를 면밀히 파악해보는 자세가 우리 콘텐츠에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최근에 역사 문제에 대해서 민감해진 상황이고, 중국에 문화적인 경계심이 심해진 상황이라 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작품 내용을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모두 매도해 문제 삼는 건 지나친 측면이다. '조선구마사' 폐지 사태를 이끌어낸 것에 고무돼 다른 작품에도 영향을 미치려는 움직임은 드라마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 과열된 정서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보인다"고 진단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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