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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혼돈의 사회를 조명하는 영화 ‘소리도 없이’


입력 2020.10.23 08:59 수정 2020.10.23 09:00        데스크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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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善)하게 태어났을까, 아니면 악(惡)하게 태어났을까. 나치 정부에서 일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준법정신이 탁월했으며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내는 근면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공무원으로 가스실이 설치된 기차도를 설계해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해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의 분별없던 행동에 ‘사고(思考)의 무지’를 역설하며 유죄를 주장했다. 성악설과 성선설 같은 인간의 본성의 대한 관점보다는 상황에 맞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소리도 없이’에서 태인(유아인 분)과 창복(유재명 분)은 낮에는 달걀장사를 하고 일과가 마무리되는 오후에는 범죄조직에서 발생한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담당한다. 어느 날 단골 조직의 실장으로부터 유괴된 11살 초희(문승아 분)를 떠맡게 된다. 영화는 의도치 않게 유괴된 아이를 맡게 된 두 남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소리도 없이’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악의 평범성을 드러낸다. 영화 속 범죄조직들은 살해, 유괴 등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 창복이 그들에게 일을 하청 받아오면 태인은 시신을 깔끔하게 처리한다. 태인과 창복은 자신들이 행하는 범죄는 그저 묵묵히 수행해야 하는 주어진 일이자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여기며 조직화된 구조 속에 어떠한 판단과 생각 없이 일을 수행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맡은바 성실히 책임을 다한다. 앞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으며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 무능함이 범죄를 낳는다.’ 말을 상기시키는 영화는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일하는 소시민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란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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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에 대한 모호함도 꼬집는다.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현재는 선이지만 과거에는 악이었거나, 우리나라에선 선이지만 외국에서는 악인 것도 있다. 선과 악은 절대적이지 않아서 그가 속해 있는 사회적 통념과 그 시대적 흐름에 많이 좌우된다. 영화는 그 모호함과 기존의 관념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범죄자라면 응당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이겠지만 창복과 태인은 신앙심도 깊고 성실하며 정도 많다. 순수할 것만 같았던 초희는 태인을 잘 따르면서도 자신을 도와준 그를 유괴범이라고 신고하는 영리하고 영악함을 발휘한다. 초희가 도움을 청했던 노인은 첫인상만으로는 전혀 경찰답지 못한 행동을 보인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캐릭터의 전형과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맞고 틀린 것과 옳고 른 것에 대한 도덕적 가치, 판단의 기준이 모호해지면서 기존의 선과 악에 대한 가치에 대해 비틀고 꼬집는다.


부조화를 통해 신선함을 선사한다. 영화는 살인, 시체유기, 아동 유괴 등 어두운 소재를 다루고 있는 범죄영화이면서 동시에 블랙코미디 장르이지만 결핍을 지닌 두 인물(말을 못하는 태인과 다리를 저는 창복)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을 단순하게 악랄한 범죄자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다. 선악의 판단이 유보된 영화이기에 더욱 그렇다. 여기에 기존의 범죄영화와는 맞지 않게 사용된 파스텔톤 색감과 아름다운 미장센은 영화의 아이러니는 더욱 극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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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색깔의 블랙코미디 영화 ‘소리도 없이’는 범죄를 정면으로 응시하기 보다는 범죄 행각의 뒤처리를 맡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사회의 일상을 풍자하고 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그리고 속한 조직의 권위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악의 근원이 되는 모습을 자주 접한다. 또한 우리 사회는 판단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정의의 기준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영화 ‘소리도 없이’는 혼돈의 사회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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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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