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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계약 유지율에도 웃지 못하는 생보사 왜


입력 2020.10.22 06:00 수정 2020.10.21 10:25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가입 후 1년 이상 지속 비율 81.8%…3년여 만에 80% 돌파

만기 시 돈 더 주는 저·무해지 상품 인기…보험사 역풍 우려

국내 생명보험사 13회차 계약 유지율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생명보험사 13회차 계약 유지율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생명보험 상품에 가입한 고객들 가운데 1년 넘게 계약을 깨지 않고 유지한 비율이 올해 들어 역대 최고 수준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고객들의 이탈이 줄어드는 현상은 보험사들에게 보통 반가운 소식이겠지만, 계약을 만기까지 유지한 가입자에게 더 많은 돈을 돌려줘야 하는 저해지·무해지 환급형 상품이 최근 몇 년 간 불티나게 팔려나간 현실을 감안하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종신보험 영업에 어려움을 겪던 생보사의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저·무해지 보험이 자칫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24개 생보사들의 13회차 계약 유지율은 평균 81.8%로 집계됐다. 13회차 계약 유지율은 계약이 체결된 후 매달 보험료 납부가 13회 이상 이뤄진 계약의 비율을 말한다. 즉, 최근 생보 상품에 가입한 고객 5명 중 4명 이상은 1년 이상 계약을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생보업계의 계약 유지율은 금감원이 관련 통계를 제공하기 시작한 지난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8년과 지난해 생보사들의 평균 13회차 계약 유지율은 각각 79.8%과 79.0%로 줄곧 80%를 밑돌아 왔다.


다만 생보사별로 보면 격차는 상당했다.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가 15%포인트 이상 벌어질 정도였다. 우선 푸르덴셜생명(87,9%)과 IBK연금보험(87.8%), 하나생명(87.1%) 등의 13회차 계약 유지율이 80%대 후반으로 높은 편이었다. 이어 삼성생명(84.9%)·라이나생명(84.7%)·한화생명(84.0%)·ABL생명(83.8%)·흥국생명(83.7%)·DB생명(83.6%)·NH농협생명(83.2%) 등이 13회차 계약 유지율 상위 10개 생보사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처브라이프생명의 13회차 계약 유지율은 72.0%에 그치며 조사 대상 생보사들 중 꼴찌를 기록했다. 이밖에 AIA생명(75.9%)·DGB생명(78.0%)·메트라이프생명(78.2%)·푸본현대생명(79.3%)·신한생명(79.6%)·미래에셋생명(79.8%) 등의 해당 비율이 70%대에 머물고 있었다.


최근 생보사들의 계약 유지율이 개선되고 있는 배경에는 무·저해지 환급형 보험이 자리하고 있다. 만기까지 버틴 가입자는 이득을 보고 중도에 이탈하면 손해를 보는 상품의 판매가 늘어나다 보니, 계약을 깨지 않고 지키려는 고객들의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저해지 보험은 가입 기간 중간에 계약을 해지하는 보장성 보험 고객에게 해약환급금을 적게 지급하거나 아예 주지 않는 상품이다. 그 대신 중도 해약 시 환급금을 주는 다른 상품에 비해 보험료가 저렴하고, 계약을 만기까지 유지하면 일반 상품에 비해 더 많은 환급금을 기대할 수 있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어 왔다.


문제는 이런 구조를 갖고 있는 무·저해지 보험의 특성 상 유지율이 생각보다 높아지면 보험사가 큰 손해를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계약 유지율이 예상보다 떨어지면 지급되지 않는 해약환급금이 많아지면서 보험사에게 이익이 발생하지만, 반대로 유지율이 높아지면 보험금 지급을 위한 재원이 부족하게 돼 손실이 날 수 있다.


더욱이 아직 이에 대한 예측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저해지 보험이 계속 팔려 왔다는 측면은 불안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실제로 과거 해외 시장에선 무·저해지 환급형 상품이 보험사들에게 곤혹스런 기억을 안긴 바 있다. 캐나다에서 판매되던 정기보험과 유니버셜 보험에 무해지 환급 상품이 존재했는데, 4%까지는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계약 해지율이 실제로는 1~2%에 그치면서 보험사가 손실을 떠안은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저·무해지 보험은 80여종에 이른다. 전체 일반 종합 보험사 40개사 중 82.5%인 33개사가 관련 상품을 취급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저·무해지 보험은 종신보험 판매에 애를 먹던 생보사들에게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여겨져 왔다. 종신보험의 비싼 보험료를 낮추기 위한 방안을 찾던 중 때마침 저·무해지 상품이 등장한 까닭이었다.


이에 보험업계에서는 저·무해지 상품 영업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당장은 이익을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불확실성이 너무 큰 상품이란 평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 가입자의 계약 유지 여부는 경제와 사회의 환경적 변화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금리나 사망, 장수, 질병 등의 변수보다 위험 관리가 어렵다"며 "더군다나 국내 보험사들은 무·저해지 상품과 관련한 경험이 없는 만큼, 해지 위험 등 계약자 행동에서 초래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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