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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올드무비⑪] 찌뿌둥한 마음이 맑게 개는 영화, ‘콩나물’

  • [데일리안] 입력 2020.09.20 14:00
  • 수정 2020.09.20 10:32
  •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보리 역의 배우 김수안 ⓒ출처=네이버 영화 보리 역의 배우 김수안 ⓒ출처=네이버 영화 '콩나물'

근심이 있다가도 자는 아이 얼굴만 내려다보면 마음이 갠다. 어린이 배우의 때 묻지 않은 연기를 볼 때 비슷한 느낌이다.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꺼내보듯 종종 다시 보는 영화가 있다. 길이도 20분이어서 언제든 만나기 좋다. 어느덧 중학생이 된 김수안의 어린 시절 연기를 볼 수 있는 ‘콩나물’(2013)이다.


이보다 2년 전의 데뷔작 ‘미안해, 고마워’부터 연기를 잘했고 더 앙증맞은 모습을 볼 수도 있지만, 배우 김서형과 이유영의 먹을 갈아 쓴 붓글씨 같은 연기가 돋보이는 ‘봄’에서도 묻히지 않고 보이지만, 공유와 좋은 호흡을 보여 준 ‘부산행’에서의 활약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감쪽같은 그녀’에서는 대배우 나문희와 앙상블이 너무 좋지만, 장편이다. 한바탕 즐거운 소동을 만끽할 수 있는 ‘운동회’도 김수안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장편이라 바쁜 일상에 자꾸 보기는 어렵다.


'우리집'의 배우 김나연,주예림, 김시아(왼쪽부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콩나물’이 단편이라 만만하게 꺼내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짧지만 완벽한 영화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윤가은 감독의 영화는 믿고 볼 만하다. 데뷔작 ‘사루비아의 맛’(2009)이나 ‘손님’(2011)부터 근래의 장편 ‘우리집’(2015) ‘우리들’(2019)까지 늘 어린이나 청소년이 주인공인 영화를 내놓고 있는데. 성인인 우리의 성격과 인성의 바탕이 된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인간에 관한 탐구로 이어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풋풋한 기억, 마치 내 얘기 같은 여린 감성과 그 나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친구들 사이의 관계를 더듬는 윤 감독의 더듬이는 소란스럽지 않게 어른과 가족, 우리 사회의 문제에 가닿는다.


앗, 이 길로 가야하는데, 어쩌지? ⓒ출처=네이버 영화 앗, 이 길로 가야하는데, 어쩌지? ⓒ출처=네이버 영화 '콩나물'

‘콩나물’만 해도 그렇다. 김수안의 발길을 따라, 압바스 카이로스타미 감독의 이란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에서의 숙제 공책 배달 미션처럼 달동네에서 출발해 다리 건너 시장까지 이어지는 ‘콩나물 파는 시장은 어디인가’가 펼쳐지는데 모든 게 들어 있다.


어느 스릴러가 이 정도일까, 이토록 조마조마할 수가 없다. 오토바이도 피해야 하고, 공사로 길이 막혀 다른 길로 돌아가는데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골목을 지켜선 커다란 개가 무섭다. 순간, 일곱 살 인생 최대 난관을 헤쳐나가는 보리(김수안 분)의 재치가 번뜩인다. 개를 피하려 아줌마 뒤를 쫓아갔는데 금세 대문으로 쏙 들어가 버린 상황, 보리는 집을 나서자마자 만났던 만삭의 이웃에게서 받은 빵을 꺼내 자신이 선 곳과 반대쪽으로 던지고 던지며 주의를 돌려 길가는 데 성공한다.


"엄마~"를 부르며 달리는 보리의 재치 ⓒ영화 예고편 캡처"엄마~"를 부르며 달리는 보리의 재치 ⓒ영화 예고편 캡처

동네 슈퍼에 오면 살 줄 알았는데, 그래서 할아버지 제사상에 올릴 콩나물 심부름을 보리에게 시키자는 작은 엄마에 맞서 길 몰라 안 된다는 엄마의 걱정을 뒤로하고 동네 놀러 나가는 척 나온 거였는데, 나도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낭패다. 작전 변경, 야채 트럭에서 장바구니를 채워 오는 동네 아줌마와 슈퍼 아줌마의 대화를 듣고 트럭 찾으러 달린다. 하지만 이미 트럭은 떠난 뒤, 시장에 가야 콩나물을 살 수 있다는 아저씨의 말에 보리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진다. 앗, 시장 가는 길은 모르는데.


트럭의 행방을 묻지만, 시장에 데려다주겠다는 아저씨의 친절은 경계하며 마치 요 앞에 보호자가 있다는 듯 “엄마”를 부르며 달리는 보리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단면이 보인다. 불안했던 건, 경계했던 건 보리만이 아닐 것이다. 엄마 마음으로 보리를 지켜보는 관객도 무의식적으로 “안돼”를 외쳤을 수 있다. 일곱 살 꼬마가 안심하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녹록지 않다.


터져버린 긴장, 참을 수 없는 으앙~ ⓒ영화 예고편 캡처터져버린 긴장, 참을 수 없는 으앙~ ⓒ영화 예고편 캡처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5)를 보면, 마치 엄마처럼 세 명의 동생을 돌보는 의젓한 아키라 역시 아이인지라 잠시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장면이 있다. 유치원생 보리는 오죽할까. 콩나물을 사야 한다는 일념을 잠시 잊고 다른 동네 아이들 틈에 끼어 놀이터에서 또 문방구 오락기 앞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아이들끼리 돈을 걷어 산 쭈쭈바인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다가 원주인인 언니가 나타나 승강이가 벌어진다. 콩나물 살 돈이 든 동전 지갑을 맞잡고 일대 접전을 벌이는데, 그래도 언니라고 물러서지만 이미 보리는 울음이 터진 뒤다.


목이 탄 보리는 평상에 모여앉아 막걸리를 나누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물을 얻어 마신다. 한 잔 더 마시는데, 어르신들이 그건 술이라며 만류하지만 “요구르트 맛인데”, 길 찾으랴 지갑 지키느라 애가 탔던 보리에겐 꿀맛이다. 긴장 풀린 보리는 평상 위에서 ‘물레방아 도는 인생’ 특별공연을 펼친다. 즐거워하는 어르신들, 공연료는 진짜 요구르트. 앞서 보리의 무릎에 빨간약을 발라 주고 상처 연고를 챙겨 주신 말 못 하는 할머니도 그렇고, ‘콩나물’에선 우리 사회에 노인이 계셔야 하는 이유가 조용히 들린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으로 번지는 무개념 노인에 대한 혐오, ‘노인 포비아’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달려라 보리♪ ⓒ영화 예고편 캡처달려라 보리♪ ⓒ영화 예고편 캡처

영화에는 뭉클한 반전을 위한 판타지도 있다. 정말 없는 게 없다. 반전이 무엇인지, 과연 할아버지 제사상에 콩나물이 올라갔는지 영화를 통해 확인하면 꿀맛이다. 작은 엄마의 ‘보리에게 심부름’ 소리에 환해지던 보리 김수안의 표정만큼이나 엄마와 함께 왔던 아이임을 알아본 시장 야채상 아주머니의 질문 앞에 지어지는 김수안의 표정은 꼭 봐야 한다. 고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조마조마 스릴 만점의 ‘콩나물’이지만 우리 사회나 세상 사람에 대한 불신의 시선을 키우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 살아갈 세상의 ‘안전망’은 결국 우리 사람임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사람과 사람,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 그 인간미가 따뜻하고 감칠맛 나는 콩나물밥처럼 잘 지어진 영화 ‘콩나물’. 흔히 음표를 콩나물에 비유해선지 투명 오선지 위에 음표가 그려지듯 통, 통, 통 떠오르는 영화 타이틀로 시작하는 영화처럼,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며 발랄하고 개운한 기분을 얻고 싶다면 만나보자, ‘콩 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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