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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소소한 영화관] 쓴맛 가득한 청춘들의 흑백드라마 '루비'


입력 2020.07.24 13:05 수정 2020.07.24 13:06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박한진 감독 연출

독특한 구성…박지연 손은지 김동석 주연

<수백억대 투자금이 투입된 영화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선한 스토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작지만 알찬 영화들이 있습니다. 많은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만나지는 못하지만, 꼭 챙겨봐야 할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루비'ⓒ(주)더쿱 '루비'ⓒ(주)더쿱

불안하고 외롭다는 기분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평생 직장의 개념도 사라진 요즘 안정적인 일자리는 물론이고, 나를 위한 일자리조차 없는 상황에서 불안한 감정은 더 깊어져만 간다.


특히 청춘들에겐 더 그렇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연애, 결혼은 포기한 지 오래다. 하고 싶은 것은 무궁무진하지만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하고, 가고 싶었던 직장에 간다 쳐도 현실은 생각만큼 분홍빛은 아니다. 성과를 내라고 닦달하는 상사에 소모품 취급하는 회사, 오늘도 청춘은 쓰라린 하루를 사고 있다.


영화 '루비'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암담한 현실을 흑백으로 담아낸다. 유익한 과학 프로그램의 메인 PD를 꿈꿨던 서연(박지연 분). 현실은 낮은 시청률로 프로그램 폐지 압박을 받는다. 대차게 들이받고 깔끔하게 사라지는 꿈을 매번 꾼다. 조연출 은지(손은지 분)와 작가 수오(김동석 분)의 상황도 비슷하다. 은지는 미래의 스타 PD를 꿈꾸지만 현실은 메인 PD의 꼭두각시고, 수오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계약직 작가 신세다.


'루비'ⓒ(주)더쿱 '루비'ⓒ(주)더쿱

영화는 이 세 주인공을 통해 불안한 청춘을 조명한다.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 했다. 원작은 이상을 품고 사회에 나왔다가 냉정한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생존'해야만 하는 사회구조 속에서도 자기만의 의미부여를 통해 매일 악착같이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폐지 직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조연출, 서브 작가 등 비정규직 스태프들과 소품 동물인 비둘기 '루비'의 서사를 통해 우화적으로 들려준다. 만성적인 존재 불안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공감을 자아냈다.


영화로 옮겨진 '루비'는 원작 속에 그려진 세계관을 흑백 비주얼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를 촘촘하게 담아낸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인생을 꿈꿨지만, 현실의 벽과 마주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뇌를 되풀이하는 청춘들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자꾸만 사라질 것만 같은 존재 불안을 느끼는 주인공 서연의 심리를 꿈속의 상황으로 표현하고, 비정규직이 느끼는 설움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담긴 수오와 은지의 대화를 판타지적으로 발칙하게 그려내는 등 블랙코미디를 녹여낸 영화적 상상력은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흔들리는 세 주인공의 상황도 공감 요소다. "미래? 그 말 왜 이렇게 낯서냐"는 대사는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 휴일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계약직 삶에서도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부당한 노동 환경,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굴레 등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세 배우가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낸다.


여러 바이럴 영상, 광고, 다큐멘터리 등을 만든 박한진 감독이 연출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부문 초청작이다. 정한석 프로그래머는 "'루비'는 다차원의 영화"라며 "창의력과 상상력이 '주제와 중심'이라는 일반적인 창작의 중력에서 벗어나 있어 매력적이다"라는 평가를 얻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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