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바람의 아들로 기억되고 싶은 야구천재´
KIA의 이종범은 내년이면 한국나이로 39살이 된다.
1993년 건국대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문했으니 어느새 프로생활만 16년째에 접어든 노장중에 노장이지만,근래에 들어 급격한 타격부침를 겪고 있으니 이젠 베테랑선수라는 말도 과거일이 되고 있다.
흐르는 세월은 막지 못하는 것일까? 언제나 팀의 리더로서 질풍노도와 같은 바람을 일으키며 그라운드를 지배했던 이종범은 2006년 2할4푼2리 1홈런 10도루에 그치며 하락세의 기미를 보이더니 올시즌에는 1할7푼4리 1홈런 3도루의 부끄러운 성적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올시즌 극심한 타격부진으로 2군으로 내려가야 했으며 한번 잊어버린 타격리듬을 찾지 못한 그를 두고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은퇴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돌았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구단의 플레잉 코치 제안을 거절한 이종범은 내년시즌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지금까지 단한번도 참가하지 않았던 팀마무리 훈련을 자처,현재 미야자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대로 끝날수 없다´ 라는 절박함 그리고 지금까지 엘리트 길만 걸어왔던 자신의 자존심 회복을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
같은 동네에 살던 기태(김기태 전 SK)형의 유니폼이 너무 멋져 야구를 시작했다는 이종범은 `광주 임동 꼬마´에서 `야구천재´로 불리우기까지 지금동안 한국프로야구사에 남긴 족적은 대단했었다.어릴때 축구에도 남다른 소질을 가졌었다는 그는 야구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장기인 빠른 발을 살리고자 유격수를 고집했으며 유격수란 포지션에 남다른 집착을 보인다.
원래 이종범은 왼손잡이다.야구를 빼놓고 일상생활을 할때는 모두 왼손을 사용한다. 그가 얼마나 유격수란 포지션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는지를 알수 있는 대목이다.
1993년 해태에 입단한 이종범은 그해 2할8푼 73도루를 기록해 신인왕이 유력했지만 같은 해에 입단한 삼성의 `괴물 타자´ 양준혁(3할4푼1리로 데뷔 첫해 타격왕)의 활약에 신인왕 타이틀을 양보해야 했다. 하지만 그해 삼성과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발로도 우승할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삼성 내야진을 초토화 시키며 팀 우승과 더불어 한국시리즈 MVP까지 수상,신인왕 타이틀 실패에 대한 보상을 대신한다.
1994년 이종범은 1번타자도 리그를 지배할수 있다 라는걸 보여준다.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기량을 선보이게 되는데, 124경기에 출전, 499타수 196안타 타율 3할9푼3리 84도루 19홈런을 기록 `이종범의 단타는 2루타´ 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며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게 된다.
고의4구로 거르자니 내야를 휘젓고 다닐 것이고,장타력까지 갖춘 그와 상대하자니 1회부터 실점의 빌미를 제공할것 같았던, 당시 이종범과 상대했던 투수들의 고민은 형언할수 없는 고통이였던 것.
후속 타자의 평범한 내야땅볼때 1루에서 3루까지 가기,얕은 외야 플라이에도 한베이스를 더 가는 신기의 주루센스,평범한 안타를 치고도 틈을 노려 2루까지 질주하던 그의 플레이는 그 시대 그의 활약을 보지 못한 요즘 어린 야구팬들에게는 영화속에서나 나올법한 일이었다.
1995년은 군복무(방위)로 인해 홈경기에만 출전할수 있었는데,당시 해태 선발투수들은 서로 이종범이 나오는 홈경기에 등판하려고 스케줄까지 조절해가며 다투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겨우 63경기만 출전했던 그해 이종범은 들쑥날쑥한 경기일정에도 불구하고 3할2푼6리 16홈런 32도루 51득점을 기록해 한시즌을 모두 뛰었다면 대체 어느정도의 활약을 보였을지가 궁금해지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1996년 초반 군복무로 인한 공백기를 거치며 113경기에만 출전,타율 3할3푼2리 25홈런 57도루를 기록해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그는 이듬해에도 3할2푼4리 30홈런 64도루를 기록,처음 30-30 클럽 을 개설함과 동시에 역시 팀을 우승시킨다.
더군다나 이당시 해태는 선동열의 일본 진출과 김성한의 은퇴로 과거보다 팀전력이 약하다던 시즌전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집는 결과로,이종범이란 단 한명의 선수로 인해 팀을 바꿔 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였던 시절이었다.
국내에서 짧은 기간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모두 발휘한 이종범은 과거 해태신화를 이끌었던 팀선배 선동열이 활약하던 일본 주니치 드래곤스로 이적을 하게 된다.
1998년 이적 첫해 이종범은 야구는 이런것이다 라고 보여주기라도 하듯 내야를 휘젓으며 과거에 이러한 플레이를 보지 못했던 일본팬들에게 신선함을 제공하는 선수로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천재는 하늘이 시기하는 것일까? 6월 23일 대 한신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상대투수 가와지리의 투구에 사구를 맞아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당하는 시련을 맞게된 것이다.
부상으로 시즌을 접어야 했던 이종범은 결국 67경기 2할8푼3리 10홈런 18도루의 평범한 성적을 기록하며 실의에 빠진다.
당시 이부상은 향후 이종범의 타격자세와 타격동작에 굉장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하는데,둥그런 원형처럼 상체를 웅크리면서 타격을 하던 그가 몸쪽공에 대한 공포심으로 업라이트(상체를 세우는) 타격준비동작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후 이종범의 일본에서의 활약은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닌것은 분명했다.몸쪽공에 대한 두려움으로 타격부진,그리고 당시 일본 최고의 유망주라 평가받던 후쿠도메 코스케(주니치 드레곤스)에게 유격수 자리를 물려주고(후쿠도메 선수는 공교롭게도 지금은 외야수임) 외야수로 전향 해야 했으며,부상으로 인한 그의 약점을 간파한 상대투수들의 끈질긴 견제를 이기지 못한 끝에 일본생활 총 3년반동안 2할6푼1리 27홈런 99타점 53도루의 평범한 성적만 남긴채 한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법이지만 이종범의 일본시절은 결코 실패라고 단정짓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분명 있다.
사격선수가 시력이 나빠지면 선수생활이 끝인 것처럼,타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위중 하나인 오른쪽 팔꿈치 부상은 치료후 재활도 힘들지만(실제 이종범은 아직도 오른쪽 팔꿈치가 잘펴지지 않는다) `고도의 과학적 예술´이라 불리우는 타격동작에서의 부자연스러움과 어쩔수 없는 타격폼 변화는 더욱더 극복하기가 힘든 것이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이종범은 이후 KIA 타이거즈에서 (2001-3할4푼,2002-2할9푼3리,2003년-3할1푼5리 20-20 기록달성,2004년-2할6푼 2005-3할1푼2리) 다시 한번 팀 우승과 자신의 부활을 노리지만,화려했던 시절에 비해 2% 부족한 성적과 2006년 그리고 올시즌 극심한 타격부진을 보이며 은퇴의 기로에 몰리게 되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하지만 아직 그는 은퇴를 말하지 않는다. 선동열(현 삼성감독) 선수가 은퇴후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평생 야구만 해왔는데,갑자기 은퇴란 말을 할려고 보니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나와 상관없는 다른 선수들만 은퇴란 말을 하는줄 알고 선수생활을 했는데 이젠 내가 은퇴 라고 말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게 서글펐던 것이다´라고.
이종범 역시 은퇴선언 이란 말을 스스로 하게 되는날이 온다면 어쩌면 위의 선동열 선수처럼 눈물부터 나올지도 모른다.하지만 선동열은 마지막까지 선수생활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스스로 퇴단했지만,지금의 이종범은 경우가 다르다.
`야구천재´란 말을 들으며 온갖 찬사를 다받았던 자신은 끝이 좋지 않은 선수로 기억되기가 싫은 것이다.
영원한 `바람의 아들´로 기억되고 싶은 이종범. 지금 그는 미야자키에서 `명예회복´ 이란 단어를 가슴속에 숨겨놓고 훈련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2008년 다시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 말이다.
이종범 주요경력 사항
한국시리즈 MVP(1993, 1997)
골든글러브(1993, 1994, 1996, 1997·유격수부문/2002, 2003·외야수부문)
시즌 최다안타(196), 시즌 최다단타(145개), 시즌 최다득점(109점), 시즌 최다도루(84개·1994)
페넌트레이스 MVP, 타격 4관왕(타율, 도루, 안타, 출루율·1994)
연속 경기 최다 출루(58번·1996.7.28∼1997.4.26)
최다득점, 최다도루(1994, 1996, 1997)
한 시즌 최다 연속경기 출루(45번·1996.7.28∼9.23)
연속도루 성공(29개·1997)
2년연속 20(홈런)-20(도루) 달성(1996, 1997)
30(홈런)-60(도루) 달성(1997.9.20·광주 쌍방울전)
시즌 최다 고의4구(30개·1997)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금메달)
2002년 10월 13일, 개인통산 1500루타(32번째·광주 LG전)
2003년 4월 10일, 개인통산 600득점(16번째·잠실 두산전)
2003년 6월 21일, 역대 최소경기(779경기) 1000안타(32번째·잠실 두산전)
올스타전 MVP(2003)
2003년 8월 12일, 개인통산 150홈런(16번째·광주 롯데전)
2003년 9월 24일, 역대 최소경기(845경기) 400도루(2번째·광주 삼성전 DH1)
2003년, 아테네올림픽예선 겸 아시아선수권(일본)
2004년 4월 22일, 1,100안타(통산 28번째, 광주 롯데전)
2004년 5월 5일 200 2루타(통산 24번째, 광주 한화전)
2004년 6월 18일, 9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통산 9번째, 부산 롯데전)
2004년 6월 23일, 500타점(통산 38번째, 수원 현대전)
2004년 9월 9일 1,200안타 달성(18번째, 청주 한화전)
2004년 9월 22일, 800득점(통산 6번째, 대구 삼성전)
2006년 WBC 출전(4강)
2006년 5월 4일, 250. 2루타(통산 11번째, 잠실 두산전)
2006년 5월 17일, 2,200루타(통산 12번째, 광주 현대전)
2006년 6월 9일, 900득점(통산 4번째, 광주 한화전)
2006년 9월 3일 1,400안타(통산 10번째, 문학 SK전)
[KIA 타이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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