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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올드무비①] 스필버그도 탐낸 불운의 수작 ‘맨 프럼 어스’


입력 2020.06.28 07:11 수정 2020.08.09 19:23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1만년 넘게 살아온 ‘지구인’에 관한 흥미진진 스토리

ⓒ ㈜크래커픽쳐스 제공 ⓒ ㈜크래커픽쳐스 제공

점에는 좌표가 있다. 좌표는 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인간, 우리 개별 사람에게도 좌표가 있다. 시간의 관점에서 좌표는 가로 세로의 축이 만나는 곳에서 위치 지어진다. 가로, 횡의 축은 나의 개별 탄생에서 시작해 죽음에 이르는 날까지 지속한다. 세로, 종은 우리 인류는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인류 아니 우주의 탄생 시점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늘을 지나 미래에까지 이어지는 축이다.


미국 영화 ‘맨 프럼 어스’는 세로축에 관련한 하나의 가설이다. 그렇다고 우주 빅뱅부터 현재의 은하계, 태양계, 지구의 역사를 고찰하는 과학다큐멘터리는 아니다.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오늘, 대략 14,000년 인류 역사에 대한 상상이자 추론이다. 영화 장르가 드라마, SF라고 소개돼 있는데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지면서도 관객 마음을 어디 가지 못하게 꽉 붙잡을 줄 아는 흥미진진 드라마인 건 맞다. 다만 SF 장르에 대해선 보는 이에 따라, 특히 종교에 따라 용납할 수 없는 공상일 수도 있고 꽤 설득력 있는 인류학적 관점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엄청난 스포일러를 포함하기 때문에 명쾌히 설명할 수 없음을 밝힌다.


지역 도시에서 10년간 교수 생활을 해 온 존 올드맨(데이빗 리 스미스 분)은 학과장 자리가 눈앞임에도 연연하지 않는다는 듯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한다. 온화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끄는 존, 영화의 매무새와 닮은 인성의 그가 이사를 떠나는 날 고고학, 생물학, 인류학, 신학 교수와 존의 조교, 인류학 수강 제자가 배웅하러 온다. 갑작스러운 떠남에 대해 동료들이 추궁하고,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답변에 추궁의 공세는 거세진다. 존은 이런 적이 없다며 주저하면서도 자신이 10년마다 사는 지역 또는 국가를 옮기고 이름을 바꾸며 살아온 얘기를 꺼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자신은 만년을 넘게 이 지구에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35세를 전후해 자신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당시의 지구인들은 존이 타인의 생명력을 빼앗아 ‘불사’한다고 믿어 내쫓았다고 한다. 그는 때로 수렵채취를 하며 숨어지내고 때로 전공을 바꿔가며 교수를 하고 떼로 돼지목장을 하기도 하고 상인을 하기도 하며 ‘그저 오래 살아온 사람’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천재도 아니고 특별한 존재도 아닌, 그때그때 새로운 환경과 지식과 기술에 적응하려 애쓰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국가 구분 없는 유럽을 떠돌기도 하고 빙하기 말 추위를 피해 막연히 따뜻할 것으로 여겨진 해 뜨는 동으로, 동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인도까지 갔다가 부처의 가르침에 감화되기도 했고 로마제국이 지배하는 중동으로 돌아와 핍박받는 백성들에게 마음을 다스려 오늘을 잘사는 수행에 대해 전파하려 했지만 실패하기도 했고. 1800년대 벨기에에선 거짓 신분을 들켜 공문서 위조로 1년간 감옥살이를 했고, 돼지목장주일 때 친분을 나눈 화가 반 고흐에게 그림 한 점을 얻기도 했고, 고흐 사후 1890년쯤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비범한 부분도 있다. 상처가 나도 빨리 회복된다는 것. 이에 대해 생물학 교수는 세포가 완벽히 노폐물을 배출하고 재생하는 것인데, 그것을 지속할 수 있다면 영생, 나이 14,000세도 가능하다는 설명을 가한다.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존의 주장을 반박하려 하지만 쉽지 않고, 도리어 그들은 혼란을 느낀다. 특히 신학 교수의 흔들림이 심하다. 또 존이 정신적으로 질병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기도 하는데, 차라리 이 믿을 수 없는 주장을 믿을 수 없으니 존에게 ‘이상’이 있는 것으로 확인받고 싶었는지도. 이에 하버드대 출신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개원의를 합류시켜 존의 심리적 이상, 다른 사람은 다 죽는데 혼자 영원히 사는 윤리적 가책에 대해 추궁하기도 한다. 이후 이야기는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치닫고, 나중에 되짚어보니 이미 복선이 깔려 왔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반전도 일어난다.


영화는 작은 오두막처럼 생긴 집, 그것도 거실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카메라에 담는다. ‘구강액션’으로 불린 한국영화 ‘공작’이 몸 쓰는 액션 이상의 긴장감을 주었듯, 허무맹랑하다 할 만큼 파격적 고백을 하는 존의 이야기에 영화는 지루할 틈이 없다. 존의 이야기를 듣는 동시에 그동안 내가 지니고 있던 지식이나 신념에 투영해 보며 감탄했다 불쾌했다 설득당하는 나를 마주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맞닥뜨릴 것이다. 당신은 10년 동안 내가 믿어온 친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내가 사실이라고 믿어 온 정보와 옳다고 믿어온 신념에 부합되는 것만 믿을 것인가. 닥치지 않고선 답을 내기 쉽지 않은 문제다.


신선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관객을 화면 앞에 붙잡아 두는 이 영화는 불운의 수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 단계부터 탐을 냈다는데 한국은커녕 미국에서도 극장 개봉 없이 2007년 7월 DVD 출시로 직행했다. 하지만 일단 본 관객들은 호평한다. 자신의 ‘좌표’를 안다는 것은 내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혜안을 준다. 영화를 연출한 리처드 쉔크만 감독의 “불법다운로드 입소문으로 이 영화를 홍보해 준 관객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에서 자신감이 읽히는 당신이라면 왓챠플레이 또는 올레TV에서 선택해 봄 직하다. 추억의 ‘스타트랙’과 ‘환상특급’의 시나리오를 맡았던 제롬 빅스비 원작이라는 사실도 구미를 당긴다. 영화의 제목 ‘맨 프럼 어스’는 영화를 보고 나면 ‘지구에서 온 사나이’로만 읽히진 않을 것이다. 영화의 비밀과 반전이 궁금하다면 클릭!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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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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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위 2020.06.29  09:39
    인생영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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