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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기획┃서사 중심이 된 여성③] 어쩔 수 없는 한계, 그럼에도 ‘앞으로’


입력 2020.04.22 15:16 수정 2020.04.23 09:26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이전보다 다양한 서사, 긍정적

"서로 토론하고 고민하는 장 되길"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여배우들이 할 작품이 없어요.”


영화 인터뷰에 나선 배우들이 자주 하던 말이다. 거친 남성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들이 주류가 된 한국 영화판에서 여배우들의 설 자리는 좁아졌다. 이전보다 많은 여성 서사의 작품이 나오긴 하지만 비좁은 틈을 뚫어야만 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해 나온 순제작비 30억원 이상의 실사 한국영화 가운데 영화 속 성평등 측정 시험인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39편 중 10편 뿐이었다. 여성 배우가 첫 번째 크레딧에 나오는 영화는 5편, 여성 배우만 포스터에 나오는 영화는 단 2편에 불과했다.


영진위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가 전체의 50%를 넘는다고 하더라도 (영화 산업의) 성 불균형이 완벽히 해소된 상태라고 볼 수 없다"며 "많은 한국 영화가 이렇게 단순한 조건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죽이는 여자: 여성 캐릭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展'를 선보인 한국영상자료원은 "최근 10년간 극장 개봉작 중 여성 감독의 영화는 10%를 넘지 못하고, 여성이 주연인 영화는 20%대에 머무르고 있다"며 "여성 캐릭터에 대한 관심과 담론이 확장되고,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가 더 많이 출현하기를 염원한다"고 전했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여성 서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변화의 움직임을 막는 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82년생 김지영'과 '걸캅스'가 개봉할 당시 별점, 평점 테러, 악플이 이어지면서 '여성 혐오'에 가까운 온라인 테러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팀장은 "대중문화에서 여성 서사를 이전보다 다양하게 다룬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로 본다"면서도 "실제 여성들은 성격도, 생김새도 다 다른데 미디어 속 여성 캐릭터는 비슷하게 나오는 경향이 보여 아쉽다. 반면, 남성들은 같은 직업군을 가진 캐릭터라도 성격, 외형적인 모습에서 입체적으로 표현 된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이어 "남성 예능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성적이 좋지 않아서 폐지되더라도 비슷한 콘셉트의 프로그램이 다시 생긴다. 하

지만 여성 예능인 프로그램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고 꼬집었다.


이 팀장은 또 "PD나 작가 한 명이 변한다고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지 않는다. 여성 서사를 다루는 미디어의 전반적인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여성을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바라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뚫기 힘든 벽이 존재하더라도, 여성들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만든 김도영 감독은 "그간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외되고 남성의 부속물처럼 등장하던 여성 캐릭터를 당연하게 소비했고, 이런 부분에 대해 의문조차 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면서 "한국에서는 강남역 사건과 미투 운동 이후에 각성한 많은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많은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내용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여성 서사에 대한 창작물의 등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다. 지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 이야기에 이제 귀를 기울일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또 “여성 서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고, 이에 따른 반발도 있을 것"이라며 "이런 현상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고민하는 장이 마련된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창작자가 여성의 이야기를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서사가 가진 힘에 주목한 김 감독은 "실제 삶 속의 여성과 대중문화 속 여성 캐릭터와 서사가 서로 밀고 끌면서 나아갈 것"이라며 "여성은 삶에서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고, 이에 따라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와 서사가 등장하리라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여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같이 고민하는 남성 창작자들도 탄탄한 여성 서사를 써내려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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