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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경제다] 금융상품 판매 더 옥죈다…'저금리 대안' 신탁 시장 암운


입력 2020.04.17 05:00 수정 2020.04.16 21:34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지난해 말 5대 은행 잔액 8조 넘게 줄어…100조 붕괴

판매 제한 정책 '직격탄'…제로금리 속 줄어든 선택지

국내 5대 은행 특정금전신탁 잔액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5대 은행 특정금전신탁 잔액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5대 은행들이 확보한 특정금전신탁 규모가 지난해 말 8조원 넘게 쪼그라들면서 100조원 대가 붕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금신탁은 통상 요즘처럼 저금리가 심화할수록 매력이 부각되는 투자 상품이지만,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에서 불거진 대규모 원금 손실 쇼크를 계기로 정부가 규제에 나선 탓에 도리어 역성장으로 돌아선 모습이다.


이런 와중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여당이 금융상품 판매를 더 옥죄겠다는 정책 기조를 내세우면서 신탁 시장을 둘러싼 암운이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제로금리 시대 속 자산운용의 대안을 찾아야 하는 은행과 고객들에게 이런 현실은 아쉬움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들이 보유한 특금신탁 잔액은 총 92조5671억원으로 같은 해 3분기 말(100조5882억원) 대비 8.0%(8조211억원)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특금신탁은 고객이 직접 자산운용 대상을 선택하는 신탁 상품이다. 투자자가 자신의 자산을 맡기고 운용 방법을 지정하면 신탁사는 이를 그대로 따르게 된다. 이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투자 대상의 본질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은행별로 봐도 다소 온도 차는 있었지만 모든 곳들의 특금신탁이 일제히 감소 곡선을 그렸다. 우선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국민은행의 특금신탁이 같은 기간 25조4467억원에서 22조4733억원으로 11.7%(2조9734억원) 줄었다. 국민은행과 이 시장에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신한은행의 특금신탁 잔액은 21조5976억원에서 21조5516억원으로 0.2%(460억원) 줄었다.


이밖에 하나은행의 특금신탁 보유량 역시 19조3103억원에서 17조9331억원으로 7.1%(1조3772억원) 감소했다. 우리은행도 18조7992억원에서 16조7219억원으로, 농협은행은 15조4344억원에서 13조8870억원으로 각각 11.0%(2조773억원)와 10.0%(1조5474억원)씩 특금신탁 잔액이 줄었다.


특금신탁은 최근까지 은행 신탁을 이끌어 온 핵심 상품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성장세가 꺾인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규제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신탁 판매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그 영향이 시장에 곧바로 반영된 형국이다.


지난해 하반기 주요 선진국 채권 금리가 추락하면서 이와 연계된 DLF를 둘러싼 손실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이를 주로 판매했던 은행들의 투자 상품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그리고 특금신탁의 대표 상품인 파생결합증권신탁과 주가연계신탁 등을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하고 판매에 제한을 두기로 했다. 특히 위험이 높다고 본 주가연계신탁은 지난해 11월 말 시점 잔액을 기준으로 판매 한도를 제한하는 총량제까지 시행 중이다.


이 같은 금융당국의 규제가 아니었다면 특금신탁은 이전보다 더욱 판매가 늘었을 공산이 크다. 지난해 기준금리가 크게 떨어지면서 일반적인 예·적금으로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수익을 거두기 어렵게 되자, 투자 상품인 신탁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었다. 한은은 지난해 7월 1.75%에서 1.50%로, 같은 해 10월에는 1.50%에서 1.25%로 1년 새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내린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총선에서 승기를 잡은 여당의 정책은 향후 신탁 판매를 더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책 과제를 통해 금융사 내부통제기준을 법제화하겠다고 공언해 둔 상태다. 금융사 스스로 상품 판매 절차를 보다 까다롭게 관리하도록 유도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도입해 소비자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방안들이 현실화할 경우 은행의 신탁 영업에도 추가적인 제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시장에서 신탁 상품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갑작스레 기준금리가 0%대까지 추락하게 되면서다. 한은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과 금융권의 불안이 커지자 지난 달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더 내린 0.75%로 운용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1%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애가 타기는 은행 쪽도 마찬가지다. 은행들 역시 저금리로 인해 투자 여건이 나빠지면서, 신탁과 같은 금융 상품을 활용한 비이자이익 확대에 골몰해 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규제가 계속되는 한 신탁 시장의 성장을 기대하기엔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시장 금리 하락으로 전통적인 이자 마진을 통한 수익 개선에 한계를 느끼던 은행들에게 변수로 등장한 신탁 규제는 지속적인 고민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마 마진 이외의 이익 창출이 절실한 시점에서 신탁 시장이 제자리걸음에 머물게 된 상황은 은행들에게 큰 악재"라며 "고객들 입장에서도 저금리를 이겨낼 만한 투자 상품 선택권이 좁아진 모양새"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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