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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브리그는 왜 시청자를 사로잡았나

  • [데일리안] 입력 2020.02.14 08:20
  • 수정 2020.02.14 08:16
  • 하재근 문화평론가 ()

시청자, 문제 해결해가며 조직 변화 모습이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

조직운영 합리성과 강한 혁신 추구하지만,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애 보여

배우 오정세, 남궁민, 정동윤 PD, 배우 박은빈, 조병규가 2019년 12월 13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 목동사옥에서 열린 드라마 배우 오정세, 남궁민, 정동윤 PD, 배우 박은빈, 조병규가 2019년 12월 13일 오후 서울 양천구 SBS 목동사옥에서 열린 드라마 '스토브리그' 제작발표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SBS ‘스토브리그’가 시청률 16%를 돌파할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스토브리그는 야구 비시즌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즌이 끝난 겨울에 구단 관계자들이 난로 주위에 앉아 팀 재정비를 논의하거나 야구팬들이 난로 주위에 모여 토론을 나눈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어쨌든 야구용어다. 실제로 드라마는 야구 구단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선 스포츠 드라마의 성공 사례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스토브리그’는 왜 성공한 것일까?


야구단을 소재로 한 건 맞는데 야구경기를 조명하진 않았다. 경기장면은 극중에서 연습경기 때 딱 한번 나왔는데 그때 시청률이 하락했다. 그 외엔 비시즌 기간에 구단 사무실이 운영되는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직장인 드라마 같은 느낌이다.


주인공이 구단 살림을 지휘하는 백승수(남궁민) 단장이다. 두 번째로 비중이 큰 배역은 운영팀장이고, 그 외에 각 부서 직원들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그들이 사무실에서 겪는 일들을 그려, 일반적인 직장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됐다.


주인공이 무려 단장이긴 하지만 직원들 위에 군림하는 갑이 아니었다. 모기업이 야구단을 해체할 목적으로 야구 경험도 없는 외부인 백승수를 덜컥 하루살이 단장 자리에 앉혔다. 그래서 백승수는 단장이라도 마치 파리 목숨 비정규직 같은 느낌이다. 이러니 단장이라는 높은 직위에 있어도 평범한 시청자들이 백승수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 됐다.


백승수 위엔 노골적으로 갑질하는 모기업 상무가 있고, 그런 상무에게 충성하며 백승수에게 막말을 일삼는 사장이 있다. 단장 밑의 직원들은 야구 경험이 없는 낙하산 백승수를 무시한다. 코치들도 역시 백승수를 무시한다. 주인공은 위로부터 압박당하고 아래로부터 치인다. 딱 평범한 중간관리자 서민 직장인의 모습이다.


그런 백승수가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가며 조직을 바꿔놓을 때 사람들은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을 느낀다. 상부로부터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합리적 원칙을 지켜내는 모습이 특히 통쾌감을 준다.


정치적 답답함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 사회엔 복잡한 문제들이 있는데 시원시원하게 해결되는 느낌이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백승수가 부임한 꼴찌 구단 드림즈에도 복잡한 문제들이 있었다. 백승수는 그 문제들을 시원시원하게 해결해나갔다.


오랫동안 쌓인 적폐를 바꾸는 건 정말 어렵다. 현실에선 누군가가 그걸 바꾸려고 할 때, 처음엔 사람들이 응원했다가도 바꾸는 과정에서 저항이 격렬하고 그로 인해 사회가 시끄러워지면 피로감이 쌓인 나머지 바꾸려는 사람에 대해 짜증을 내게 된다. 적폐 쌓인 현실도 짜증나고, 바꾸자며 평지풍파 일으키는 사람도 짜증나고, 개혁에 저항하는 사람도 짜증나고, 바뀐다며 희망고문만 시키고 질질 끄는 상황도 짜증나고 모든 게 짜증을 유발한다.


반면에 ‘스토브리그’에서 백승수는 갖은 반발과 어려움에도 적폐들을 뚜벅뚜벅 1~2회 만에 하나씩 해결해갔다. 그 결과 희망 없이 무기력에 빠져있던 만년 꼴찌 구단 드림즈 구성원들이 희망을 갖게 되고, 하나로 뭉쳐 전진이라는 걸 하게 된다. 이 모습이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던 사람들 속을 뚫어준 것이다.


아저씨 ‘꼰대’에 대한 반감도 있다. 백승수의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저씨들이다. 그들이 지위, 경력, 재산 등을 믿고 고압적인 자세로 백승수를 압박해도 백승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쿨하고 간단하게 혁파해나간다. 백승수가 내세우는 건 통계수치와 같은 합리적 논리다. 이건 합리성을 중시하면서 불합리한 기성 조직문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공감할 설정이다.


거기에 더해 구단운영에 대한 치밀한 조사로, 그럴 법한 이야기를 그려 야구팬과 일반인 모두로부터 지지 받았다. 야구팬들은 허황되지 않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고, 일반인들은 치밀한 묘사 그 자체에서 미드 웰메이드 작품에서와 같은 쾌감을 느꼈다. 만약 구단 운영 이야기를 어설프게 피상적으로 그리면서 기존 관습대로 그저 젊은 단장과 여직원의 멜로로만 갔다면 야구팬과 일반 시청자 모두 놓쳤을 것이다.


이러한 장점들 바탕에 따뜻한 인간미가 있었다. 백승수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잘라내고 무시하지 않는다. 조직운영의 합리성과 강한 혁신을 추구하지만, 사람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애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한 기조가 드라마에 깔리면서 야구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간적 사연이 훈훈하게 조명됐다. 이러한 장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속도감 있는 전개가 나타나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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