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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통상임금 판결부터 꼬인 현대·기아차 노사관계


입력 2019.12.19 07:00 수정 2019.12.19 17:28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통상임금 합의 계기, 서로 상대 조건 지렛대 삼아 요구조건 높여

‘노조에 치우친 힘의 균형’이 車산업 위기 속 ‘임금인상 레이스’ 부추겨

통상임금 합의 계기, 서로 상대 조건 지렛대 삼아 요구조건 높여

‘노조에 치우친 힘의 균형’이 車산업 위기 속 ‘임금인상 레이스’ 부추겨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전경.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전경.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기본급 4만원 인상. 성과 및 격려금 150%+320만원 지급. 기아자동차 노사가 지난 10일 합의했다가 사흘 뒤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된 올해 임금·단체협약(임단협) 잠정합의안의 주요 내용이다.


다른 완성차업체들이 제시한 ‘임금 동결’이나 ‘소액의 격려금 지급’에 비하면 매우 ‘따뜻한’ 조건이다. 하지만 기아차 노조는 이를 거부하고 결국 파업에 들어갔다.


사실 기아차는 그동안 임단협이나 임협 관련 노사 분쟁 이슈에서 비교적 조용한 축에 속했다. 노조가 회사에 협조를 잘 해줘서가 아니라 형제 회사인 현대자동차의 교섭 결과를 동일하게 적용해온 관행 때문이었다.


현대자동차그룹 내에서 동일한 업종을 영위하는 현대차와 기아차 근로자들은 서로 “다른 쪽 보다 적게 받을 순 없다”는 인식이 강했고, 사측에서도 이를 맞춰주다 보니 매년 현대차 노사가 진통 끝에 교섭을 타결하면 기아차 노사는 동일한 조건으로 따르는 관행이 있어왔다.


스탭이 꼬인 것은 통상임금 판결에서 두 회사의 운명이 엇갈리면서부터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달라고 양사 근로자들이 법원에 제기한 동일한 내용의 소송에서 기아차는 근로자 측이 2심까지 승소했고, 현대차는 사측이 2심까지 승소한 것이다.


‘15일 미만 근무자에 대한 상여금 지급 제외’ 라는 단 한 줄짜리 상여금 세칙의 유무에 따라 두 회사에 대한 판결이 달라졌다.


통상임금 판결에서 패소한 기아차는 지난 3월 노조와 합의를 통해 근속연수별로 400만~800만원의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지급했다.


문제는 통상임금 판결에서 승소해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지급할 의무가 없는’ 현대차가 노조의 압박에 떠밀려 올해 교섭에서 비슷한 금액을 지급한 점이다.


지난 9월 타결된 현대차 합의안에는 200만~600만원의 일시금 및 우리사주 15주 지급 조건이 포함돼 있었다. ‘미래임금 경쟁력 및 법적안정성확보 격려금’이라는 명목을 내세우긴 했지만 ‘기아차 통상임금 합의내용과 동일한 조건’을 요구한 노조의 목소리를 일부 수용한 것이다.


이는 결국 기아차의 잠정합의안 부결로 이어졌다. ‘기본급 4만원 인상, 성과 및 격려금 150%+320만원 지급’까지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동일한 조건이지만, 현대차에 추가된 ‘200만~600만원+15주 지급’을 두고 기아차 조합원들이 반발하면서 노사 합의가 뒤집어졌다.


기아차가 파업을 견디다 못해 일시금이 추가된 제시안을 내놓을 경우 다음번에는 현대차가 내년 교섭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매번 노조는 상대측 결과물을 지렛대 삼아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고 사측은 파업에 시달리다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단 한 줄짜리 규정을 근거로 확연히 갈린 법원의 통상임금 판결과, 그 판결마저도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노조의 절대권력, 노조가 파업으로 공장을 멈추면 회사가 고스란히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이 자동차산업 위기 속에서 국내 1, 2위 자동차 업체를 임금인상 레이스로 떠미는 촌극을 연출하고 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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