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기자의 눈] 나랏돈으로 살려주겠지? 꿈도 꾸지 말라


입력 2019.12.16 07:00 수정 2019.12.15 19:06        박영국 기자

회사 위기 상황서 '더 받고 덜 일하겠다' 파업

파산 막으려 혈세지원 '부정적 학습효과' 더 이상 기대 말아야

회사 위기 상황서 '더 받고 덜 일하겠다' 파업
파산 막으려 혈세지원 '부정적 학습효과' 더 이상 기대 말아야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 집회 장면.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 집회 장면.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

‘학습효과’는 인간에게 불필요한 시행착오의 반복을 피하도록 해주는 긍정적인 면이 많지만 간혹 ‘부정적 학습효과’라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 불이익이 없거나 사고를 쳐도 누군가가 대신 수습을 해준다면 계속해서 그런 일을 벌이는 식이다.

우리 노동계에는 유감스럽게도 이같은 ‘부정적 학습효과’가 팽배해 있다. 아무리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세워도 파업하며 버티면 결국엔 들어주고, 불법 행위로 회사에 피해를 입혀도 찍소리 못하거나 고소를 했다가도 이내 취하한다. 떼쓰고 우겨대면 들어주는데 아무 조건 없이 순순히 협조하는 게 오히려 바보같이 여겨질 정도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완성차 업체와 대형 조선업체 등 대규모 사업장의 고임금 귀족복지 구조가 만들어졌다. 자동차와 조선 업황이 악화된 상황에서 비용 대비 생산성이 현저히 낮은 이런 구조에서는 누구도 살아남기 힘들다.

더 비관적인 것은 회사가 생존 위기에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부정적 학습효과’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과거 위기에 빠진 고임금 사업장들을 국민 혈세를 쏟아 부어 살려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은 지난 10일 파업 찬반투표에서 66.2%의 찬성률로 파업을 가결시켰다. 앞서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해 ‘조정 중지’ 결정까지 받아놓은 상태다.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해 6월부터 올 6월까지 1년간 6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전면 파업을 벌였고, 지난 6월에야 ‘2018년도 임단협’을 타결했다.

당시 르노삼성 노조는 사측과 ‘상생 선언문’을 발표하고 ‘무분규 사업장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지만, 반 년도 안 돼 ‘더 받고 덜 일하겠다’며 이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올해 르노삼성 부산 공장의 생산량은 11월까지 누적 15만여 대로 전년 동기 대비 25% 가까이 줄었다. 닛산 로그 수탁생산계약 종결로 생산량이 더 줄어든다.

르노의 신형 SUV인 ‘XM3’모델이 유일한 희망이지만, 기껏해야 연간 2~3만대 수준의 내수 물량으로는 물량 공백을 채울 수 없다. 해외 판매물량 배정을 통한 수출 물량 확보를 위해 경영진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파업으로 멈춘다면 르노 본사가 한국에 물량을 배정할 이유는 없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노조가 파업에 나선다면 ‘거위의 배를 갈라서라도 황금알을 더 꺼내야겠다’는 심보와 다를 바 없다.

“그동안 큰 사업장이 위기에 빠지면 혈세를 투입해서라도 살려줬던 전례가 있었던 게 문제입니다. 어차피 문을 닫게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회사 생존에 일조하기보다는 하나라도 더 얻어내겠다는 의지가 더 강해지는거죠.”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의 한탄이다. 이른바 ‘부정적 학습효과’의 폐해를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방식의 학습효과를 본 이들도 있다는 것을 르노삼성 노조는 알아야 한다. 지난 수 년간 대우조선해양과 한국GM에 수조원, 수천억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것을 보며, 그리고 그곳의 근로자들이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고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분노했던 수많은 국민들이다.

회사의 위기 상황에서 파업을 단행한 르노삼성 노조원들의 일터를 지키기 위해 또 다시 혈세가 투입된다면 국민 여론이 결코 우호적일 수 없다. 정 안되면 나랏돈으로 살려주겠지? 꿈도 꿔선 안 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