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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에서 한국GM까지…김우중이 남긴 족적

  • [데일리안] 입력 2019.12.10 11:20
  • 수정 2019.12.10 11:23
  • 박영국 기자

두산인프라코어,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각 분야 리딩기업으로 남아

대우건설, 금호아시아나그룹 편입 이후 '수난사'도

두산인프라코어,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각 분야 리딩기업으로 남아
대우건설, 금호아시아나그룹 편입 이후 '수난사'도


옛 대우그룹에서 분리된 주요 기업들의 사업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우조선해양, 한국GM, 대우건설, 위니아대우. ⓒ각사, 데일리안DB옛 대우그룹에서 분리된 주요 기업들의 사업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우조선해양, 한국GM, 대우건설, 위니아대우. ⓒ각사, 데일리안DB

9일 별세한 김우중 전 회장이 이끌던 대우그룹은 해체된 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과거 대우그룹에 속해 있던 계열사들은 여전히 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일부 기업은 사명에서 ‘대우’를 없애고 지금 모기업의 색을 입혔지만 몇몇 기업은 김우중 전 회장 시절 일궈 놓은 브랜드파워를 활용하기 위해 사명의 일부에 ‘대우’를 포함시키고 있다.

2000년 4월 해체된 대우그룹의 색깔을 지금까지 강하게 지닌 대표적인 회사로 대우조선해양이 꼽힌다. 이 회사의 전신은 1978년 10월 설립된 대우조선공업이다. 대한조선공사의 옥포조선소를 인수해 설립된 대우조선은 이듬해 화학제품 운반선 건조를 시작으로 각종 상선과 군함 등으로 선종과 규모를 확대하다 1992년에는 세계 수주 1위 조선업체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1999년 8월 대우그룹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며 이듬해 10월 기업 분할을 통해 대우중공업은 존속회사로, 대우종합기계와 대우조선공업은 신설회사로 설립됐다.

신설회사 중 대우조선공업은 2001년 8월 워크아웃을 벗어났고, 이듬해 지금의 대우조선해양으로 사명을 바꿨다.

대우조선해양은 워크아웃 졸업 첫 해 LNG선 수주 세계 1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각종 고부가가치 선박과 대형선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발휘하며 2000년대 한국 조선업 전성기를 이끌었다. 지금까지 수주잔량 기준 세계 3위 조선업체로 군림하고 있다.

다만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현대중공업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어 인수 이후에는 ‘대우’라는 이름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전경.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전경. ⓒ대우조선해양

2000년 기업분할 당시 또 다른 신설회사로 설립된 대우조선공업은 2005년 두산중공업에 인수돼 국내 대표적인 건설기계 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로 성장했다.

1999년 정부 주도의 5대그룹 빅딜(사업교환)로 인해 대우조선공업에서 갈라져 나온 항공사업 부문은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등과 통합돼 지금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완성차 업체인 한국GM 역시 김우중 전 회장이 일궈 놓은 대우그룹의 유산이다. 1978년 대우그룹에 합류한 새한자동차가 한국GM의 전신이다.

1983년 대우자동차로 출범한 이 회사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고, 1992년에는 GM과의 합작관계를 청산하고 독자 모델을 개발하는 한편,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 기조에 따라 해외진출을 본격화했다.

대우자동차는 당시 우리나라와 교역이 활발하지 않았던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폴란드 등 공산권 국가에 현지공장을 설립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98년에는 쌍용자동차를 인수 합병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대우그룹의 몰락과 함께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이듬해 GM에 매각됐다. GM은 2011년까지 ‘GM대우’라는 사명으로 ‘대우’ 브랜드를 유지했으나 그해 3월 사명을 ‘한국GM’으로 바꾸며 GM의 다른 해외 법인들과 통일시켰다.

한국GM에서 생산, 판매되는 차종은 대우차 시절 개발된 경상용차 마티즈와 다마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GM의 주력 대중차 브랜드인 ‘쉐보레’를 달고 나온다.

자일대우버스, 타타대우상용차 등은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당시 승용차 부문만 인수하면서 떨어져 나온 옛 대우자동차의 상용차 사업부문이다.

한국GM 창원공장에서 경상용차 라보를 생산하고 있다. 라보는 대우자동차 시절 개발된 차량이다. ⓒ한국GM한국GM 창원공장에서 경상용차 라보를 생산하고 있다. 라보는 대우자동차 시절 개발된 차량이다. ⓒ한국GM

종합상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주)대우가 모태다. 1967년 대우실업을 시작으로 1982년에는 (주)대우로 출범해 그룹의 실질적인 중심이자 컨트롤타워로 자리했다.

(주)대우 시절 동구권과 동남아 등 당시에는 ‘불모지’로 여겨졌던 국가들에 구축해 놓은 탄탄한 네트워크는 지금까지도 국내 종합상사들 중 최고로 꼽힌다. 직원들 사이에서 ‘대우맨’이었다는 자부심도 옛 대우 계열사들 중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주)대우의 무역 부문이 인적분할돼 ‘대우인터내셔널’로 설립됐으며, 2010년 포스코 그룹에 편입된 후에도 한동안 사명을 유지하다 2016년 포스코대우로 사명이 바뀌었다. 올해 3월에는 아예 ‘대우’ 브랜드를 떼고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출범했다.

대우그룹의 또 다른 주력이었던 대우전자는 지금은 중견기업 규모의 ‘위니아대우’로 명맥을 이어갔지만 한때 삼성전자, LG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국내 3대 가전업체였다.

1974년 설립된 대우전자는 1983년 대한전선의 가전 부분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가전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1993년 가전제품의 복잡한 기능을 없애는 대신 튼튼한 제품을 만든다는 취지의 ‘탱크주의’를 기업 브랜드로 내세워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1999년 정부 주도의 5대그룹 빅딜 당시 삼성그룹과 자동차-전자 맞교환 논의 과정에서 삼성전자와의 합병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삼성그룹의 거부로 무산됐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2002년 대우모터공업이 대우전자의 가전사업과 영상사업(TV) 부문을 인수해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출범했으며 2004년 가전 브랜드 ‘클라쎄’를 선보이며 과거의 영광 재현에 나섰다.

2013년 동부그룹에 인수돼 동부대우전자로 사명이 바뀌었으나, 동부그룹 경영악화로 지난해 대유그룹에 인수돼 다시 ‘대우전자’라는 과거의 이름을 회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7월 대유그룹이 대유위니아그룹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대우전자도 ‘위니아대우’라는 지금의 이름을 달게 됐다.

대우전자(현 위니아대우) 광주공장 전경. ⓒ대유위니아그룹대우전자(현 위니아대우) 광주공장 전경. ⓒ대유위니아그룹

국내 5대 건설사 중 하나인 대우건설도 대우그룹의 몰락 이후 모진 풍파를 겪었다. 1973년 설립된 대우건설은 1980년 (주)대우의 건설부문으로 흡수됐으며, 1993년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 기조에 발맞춰 ‘지구촌건설’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적극적으로 해외 수주에 나섰다.

하지만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주)대우에서 분리됐으며,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인수돼 아파트 브랜드 ‘푸르지오’의 호조와 잇단 대규모 해외수주 성공으로 2003년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의 인수는 대우건설에게는 또 다른 수난이었다. 그룹의 무리한 인수합병 행보의 희생양으로 서울역 대우센터(현 서울스퀘어) 등 알짜 자산을 매각 당하고 대한통운 인수에 참여하느라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결국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이듬해 산업은행에 인수됐다.

대우건설 을지로 신사옥 전경.ⓒ데일리안 원나래기자대우건설 을지로 신사옥 전경.ⓒ데일리안 원나래기자

지금은 미래에셋그룹에 속해 있는 미래에셋대우 역시 대우그룹의 색깔이 짙게 배어 있는 회사다. 1973년 대우실업이 동양증권을 인수하며 대우그룹에 합류했으며, 1983년 대우증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0년대 유럽과 미국은 물론, 베트남, 인도,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 다양한 국가에 현지법인 혹은 합작사를 설립하며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에 동참했다.

하지만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산업은행 산하로 들어가며 주요 해외법인들을 매각하고 해외 사무소를 폐쇄하는 등 해외 영업망이 크게 위축됐다.

2009년에는 산은금융그룹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KDB대우증권으로 사명이 변경됐다. 2016년에는 다시 최대주주가 미래에셋증권으로 바뀌면서 그해 5월 지금의 미래에셋대우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지금은 여러 회사로 뿔뿔이 흩어진 옛 ‘대우맨’들은 여전히 ‘세계경영’을 앞세워 각 분야에서 활약하던 대우그룹의 일원이었다는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하다. 과거 대우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던 ‘대우맨’들은 그룹 해체 이후에도 매년 창립기념일인 3월 22일 모여 기념행사를 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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