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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도 북한 걱정만 하는가


입력 2019.10.07 09:00 수정 2019.10.07 08:30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北 대변인 자처했던 전직 대통령

북한 측은 끼어들지 말라는데…민심은 힘으로 제압되지 않는다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北 대변인 자처했던 전직 대통령
북한 측은 끼어들지 말라는데…민심은 힘으로 제압되지 않는다


ⓒ데일리안 ⓒ데일리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제100회 전국체전 개막식에서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을 역설했다. 이 분은 자나 깨나 ‘김정은’이고 ‘북한’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0월 4일 김정일과의 회담 때 했다던 말이 생각난다.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정치 민주화의 혜택을 대통령이 먼저 입고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정치적 레토릭이니까 죄가 될 것이 아니라고들 인식했을까? ▲대통령으로서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가진 발언이었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지레 단정한 것이었을까? ▲진보좌파가 워낙 드세어서 아예 문제 삼을 엄두조차 못 냈던 것일까?

北 대변인 자처했던 전직 대통령

어쨌든 노 전 대통령의 ‘대변인’ 역할은 북측의 폭정과 군사적 모험주의를 부추겨주긴 했으되 손톱만큼도 개선하는데 기여하지는 못했다. 그의 길을 문 대통령이 걷고 있다. 흡사하다. 다른 게 있다면 문 대통령이 훨씬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나는 나와 함께 이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이번 방문에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 얼마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지 절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습니다.”

작년 9월 1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15만 명의 북한주민들에게 했던 문 대통령의 연설 한 대목이다. ‘민족의 자존심’ 운운은 절창 중에도 절창이다!

그는 4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모인 바로 이 자리에서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이 열리는 날을 꿈꿉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동서화합의 시대’를 열고, 2018년 평창올림픽이 ‘평화의 한반도 시대’를 열었듯이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은 ‘공동번영의 한반도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 그는 희망과 현실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인상이다. 워낙 희망이 강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정도가 많이 심하다. 공동올림픽은 그야말로 그의 꿈속에나 있다. 그게 가능해지려면 해소돼야 할 난관, 충족돼야 할 조건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렇지만 그의 구애는 언제나 김정은에 의해 매몰차게 거부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전략을 바꿀 줄을 모른다.

순수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정에서 그가 보이는 리더십 유형으로 미루어 그는 ‘순수’와 거리가 멀다. ‘내편’에 대해서는 후덕하고 인자한 리더일 지 모른다. 그러나 ‘반대편’에 대해서는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통치자다. 광화문 일대에 모인 그 엄청난 군중이 한 목소리로 ‘조국 퇴진’을 요구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않는다.

북한 측은 끼어들지 말라는데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달 9일 담화를 통해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마주 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자 곧바로 한‧미정상회담을 추진, 2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

정상회담 후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뉴욕 쉐라톤 타임스퀘어 호텔 프레스 센터에서 “두 정상은 한·미 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전환해 70년 가까이 지속된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할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브리핑했다. 그리고 ‘전환’이라는 표현에 무게를 실으며 (향후의) 미‧북 비핵화 협상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 정상 간 북한과 관계의 전환(transformation)를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측 발표에는 그 표현 자체가 없었고, 또 ‘전환’은 미국에서 너무나 흔히 쓰는 말이라고 하는데도 청와대 정부 관계자라는 사람들은 그 말에 집착했다. 정상회담을 치레하는데 적절한 ‘단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미‧북 협상을 전망하지는 않고 문 대통령의 기대와 기분을 예상해서 내놓은 모범답안이었다. 아닌가?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 사이의 비핵화 실무협상은 결렬됐다. 문 대통령이 크게 실망하고 또 한편으로는 머쓱해 할 일이었다. 그래도 외교부는 “북측 신임 대표단과의 협상이 시작된 것을 평가하며 이를 계기로 대화의 모멘텀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의 양측 입장을 바탕으로 대화가 지속할 수 있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안타깝고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도 북한도 문 대통령과 한국정부의 역할을 반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어이 끼어들겠다고 한다. 왜? 문 대통령이 그것을 원하므로!

이처럼 북한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갖고 무한한 인내를 보이는 문 대통령이 내정의 정치파트너인 야당, 똑 같이 보듬어 안아야 할 ‘지지하지 않는 국민’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는 정부 여당의 태도를 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민심은 힘으로 제압되지 않는다

‘조국수호 검찰개혁’을 내세운 여덟 번째 촛불집회가 5일 서울서초동에서 열렸다. 주최 측 추산이라며 300만 명이 모였다고 했다. 3일 조국 퇴진을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에 모인 사람이 300만 명이었다고 하자 숫자싸움에 나선 것이다.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문 대통령이 건재하다. 조국 일가가 무슨 짓을 저질렀든 ‘우리 편’은 건드리지 말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그 바탕위에 문 대통령이 서 있다.

대통령도 지켜만 보고 있는 게 아니다. 묵시적으로는 물론 명시적으로도 윤석열의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정부 여당의 실세라는 사람들도 덩달아 나선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4일 광화문 집회와 관련, “수십 명이 폭력을 휘두르고 성추행과 문화재 훼손도 있었다”며 “엄정하게 조사해 법에 따라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4일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를 하면서 광화문 집회 주요 관계자들이 내란을 선동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국감장에서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건넸다. 민주당은 유사한 내용의 고발장을 이해찬 대표 명의로 검찰에 접수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자유우파 측이 주눅 들어 집회를 포기할까? 어쨌든 기를 꺾어놓기 위한 정권 차원의 압박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거리에서는 머릿수로, 법적으로는 제재로 압박하겠다는 양동작전이다.

이런 걸 악수(惡手)라고 한다. 9일 ‘문재인 하야 천만집회’에는 더 많은 군중이 모여들 것이다. 조 법무부 장관을 퇴진시키는 선에서 무마될 수 있었던 일이 이제는 ‘문재인 하야’ 요구에 맞서야 하게 됐다. 성난 군중을 위력으로 눌러버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사람들이다. 권력을 쥐자 판단력이 무디어지고 만 것인가.

아이들을 시켜 윤석열 조롱, 자유한국당 비난 내용으로 개사한 동요를 부르게 하는 좌파 매체, 조국 집 압수수색한 여 검사 신상 터는 친여 네티즌…. 정권이 경박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태들이다. 권력 수호대는 독재정권에서나 생겨난다. 우리의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는가.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반작용의 크기는 작용의 크기에 비례한다. “우리만은 다르다.” 그런 생각은 않는 게 좋다. “남에게 일어났던 일이라 해도 내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따위의 요행은 없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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