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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원금 손실 사태 비이자수익 강조 KPI가 불렀다


입력 2019.09.30 06:00 수정 2019.09.30 05:54        박유진 기자

은행원 능력 평가 KPI 90점 이상이 수익성

고객 수익률 넣겠다지만…근본 대안은 실종

은행원 능력 평가 KPI 90점 이상이 수익성
고객 수익률 넣겠다지만…근본 대안은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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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휴뭉텅이 영업 땐 1점, 방카슈랑스 2.5점, 퇴직연금 2점, 자산관리(WM) 수수료 3.5점'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S·DLF)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를 빚은 우리은행의 영업점 성과지표 상당수가 비이자이익에 쏠려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의 경우 전문가들도 예측하기 어려운 고위험 상품을 은행이 비이자이익 확대 차원에서 무리하게 팔았다는 지적이 있어 과당경쟁이 부른 참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30일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파생상품 원금 손실을 일으킨 우리은행의 올해 상반기 KPI에서 비이자수익이 차지한 비중은 27점으로 집계됐다. 이를 포함해 여·수신, 고객 유치 등 수익성으로 얻을 수 있는 배점만 91점을 기록했다. 총점은 100점 만점이다.

KPI는 은행원의 업무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다. 은행원으로선 KPI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기 때문에 이에 맞춰 성과가 높은 상품을 고객에게 권유하거나 판매하는 관행이 많았다.

이 지표는 과거 가계대출 등 이자를 낼 수 있는 상품 쪽에 힘이 실렸지만 저금리에 예금 유치가 어려워지고, 대출 확대도 어려워지자 비이자수익의 비중이 높아진 측면이 있다.

은행이 어려울 때일수록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문은 정기예금과 같은 고유계정이다. 과거에는 고유계정으로 성과를 내는 은행이 많았지만, 저금리가 심화돼 예금 유치가 어렵고 대출마저 어려워지면서 이익 확대 차원에서 수수료 수입이 많이 나는 투자 상품을 유도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여기에 은행이 종합금융 체제로 변화하다 보니 전사적 차원에서 비이자수익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졌다. 하나의 영업점 안에서 보험과 증권, 예금 등을 판매하는 복합점포가 나오는 등 자연스럽게 은행의 KPI도 비이자수익 위주로 꾸려지게 됐다.

문제는 비이자수익 상품 중에 금융 전문가들도 선뜻 수익률을 예측하기 어려운 초고위험 상품도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최근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에 따라 소비자 분쟁이 진행되고 있는 DLS나 DLF 상품이 대표적이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해외 주요국가 금리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상품을 팔았다가 분쟁에 휩싸였다. 독일 등의 금리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투자 손실을 본 소비자들이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은행 간 비이자수익 확대 경쟁이 심화 돼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는 입장이 팽팽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은행의 역할이 주택과 외환, 수출입, 기업 등으로 분담돼 있었지만 IMF 이후 외국자본이 들어오면서 은행이 민영화되고 무한경쟁 체제로 들어서게 됐다"며 "최근에는 대형 은행은 모두 지주사 체제로 바뀌고 증권사 등에서만 판매하던 전문 상품을 전국 영업망을 갖춘 은행에까지 판매 허용하게 되면서 이번 사태 등이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 금융권 안팎에서는 은행의 KPI가 단기실적 위주의 성과 평가로만 운영돼 불완전판매를 초래할 수 있어 고객만족도, 고객수익률 등 고객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했다. 금융노조 또한 KPI는 은행의 과당경쟁을 부추겨 소비자보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놨지만, 여전히 은행권의 KPI는 수익성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 최근 일부 시중은행은 관련 제도를 개편할 뜻을 밝혔다. 대규모 파생상품 손실 사태를 초래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을 비롯해 신한은행, IBK기업은행 등은 고객보호 강화 차원에서 내년까지 고객수익률을 중심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키로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수익성 위주의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향이다.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게 금융권 종사자들의 주장이다.

유주선 전국금융노동조합 사무총장은 "은행에서 파생상품 투자로 인해 분쟁이 일어난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고객의 수익률을 관리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는 바가 크다"며 "그러나 예전에도 은행들은 원금 보장이 되면서 투자수익이 많이 나는 상품을 팔은 바 있고, 저금리 여파에 따라 현재는 해당 상품을 설계하기 힘들어 DLS와 같은 상품을 취급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업 직원 입장에선 고객의 수익만 좇다간 은행의 이익을 놓치기 쉬운데, 리딩뱅크 경쟁에 나선 은행이 자신의 이익이 적은 상품을 팔리가 만무하다"며 "파생상품의 책임은 투자자에게도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고객에게 손실률 등을 명확히 안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성낙조 전국금융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고객에게 유리한 상품을 팔아야하는데 현행 KPI 제도 체계에서 이를 지키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단순히 성과 위주의 평가 방식보단 글로벌 기업처럼 KPI에 사회적책임지수를 반영하는 것이 고객 신뢰 제고 차원에서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유진 기자 (rorisang@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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