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30대기업 청와대 집합시켜 한다는 소리가 "견뎌라"


입력 2019.07.10 15:34 수정 2019.07.10 16:02        박영국 기자

단기 대책 "정부가 적극 지원"…기업들 앞장서라?

근본 대책 "국산화율 높이자"…그동안은 몰라서 안했나

단기 대책 "정부가 적극 지원"…기업들 앞장서라?
근본 대책 "국산화율 높이자"…그동안은 몰라서 안했나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계인사 초청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계인사 초청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역시 뾰족한 해법은 없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제한 조치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으니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업이 중심이 돼 잘 버텨내라.”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청와대를 찾아간 30대기업 총수들에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던진 메시지다.

‘견뎌라, 버텨라, 기다려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우리 국민들은 이 소리에 이골이 나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 뭐고 저녁이 있는 삶이 뭔지, 야근을 못해 월급이 줄고 일자리를 잃고 가게가 망해도 대통령과 정부는 “믿고 기다려 달라”는 소리만 거듭한다.

10일 청와대가 마련한 경제계인사 초청 간담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니 정부가 일본과 타협을 보건, 살살 달래건, 일본을 상종 못할 깡패 국가로 국제 사회에 인식시키건 뭔가 해법을 만들어 놓고 기업인들을 불렀어야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런저런 대책을 언급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업인들이 눈앞에 닥친 악재를 피할 해법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과거 사지에 몰린 자영업자들에게 그렇게 했듯이 이날도 기업인들에게 ‘미안하지만 기다려 달라’는 말부터 꺼냈다.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이지만,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신속하고 가장 근본적인 해법인 ‘외교적 노력’에 대한 기업인들의 기대가 물거품이 된 순간이다.

다음으로는 ‘단기적 대책’을 언급했다. 수입처 다변화와 국내 생산의 확대, 해외 원천기술의 도입 등을 거론한 뒤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지원하겠다’는 말은 ‘앞장서지 않겠다’는 뜻을 내포한다. 기업들이 알아서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열심히 노력하면 정부가 도와주겠다는 얘기다.

수입처 다변화와 국내생산의 확대 등을 해법으로 내놓은 것도 현실과 괴리된 얘기란 지적이 많다. 애초에 일본 외에 다른 곳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공급선을 바꿀 수 있었다면 일본이 그걸 무기로 꺼내들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단기적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도 심각한 현실 인식 오류를 방증해준다. 지난 수십 년간 노력해도 안 되던 것을 단기적으로 해결하는 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대만 등에서도 일부 소재를 수입하긴 하지만 고집적 반도체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높은 물성을 요구하는 제품의 경우 일본산을 사용해 왔다. 대만산 소재로 모든 제품 생산을 대체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설령 국산이나 대만산 소재가 물성을 충촉시킨다고 해도 일본산을 대체해 국내 수요를 충족시킬 만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물량을 확대하려면 증설을 해야되는데, 한일 관계가 회복되면 다시 거래가 원상회복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증설에 나선다는 건 소재업체 입장에서 큰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하는 일이다.

문 대통령이 이어서 언급한 ‘근본적 대책’도 그다지 믿음직하지 못하다. 그는 “이번 일이 어떻게 끝나든, 이번 일을 우리 주력산업의 핵심기술, 핵심부품, 소재, 장비의 국산화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얘기는 “배 고프니 밥 먹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품·소재 국산화율을 높이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국내 부품·소재 업체들이 충분한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갖췄다면 굳이 바다 건너 가져와야 하는 일본산을 썼을 이유가 없다.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국산화율 확대’를 독려하더라도 국내 부품·소재 업체들이 경쟁에서 밀린다면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은 다시 일본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국산 타령만 하다 같이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늘 우리의 만남이 걱정하시는 국민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어떤 대목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오히려 걱정이 더 커지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