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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매운동이 개탄스러운 이유


입력 2019.07.06 06:00 수정 2019.07.06 05:50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냉정한 대처법, 장기적 극일 길 무엇인지 제대로 논의해야

<하재근의 이슈분석> 냉정한 대처법, 장기적 극일 길 무엇인지 제대로 논의해야

ⓒ데일리안 ⓒ데일리안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하자는 말이 지금 나오는 것 자체가 개탄스럽다.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나라라면 현 시점에 불매운동하자는 말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각자 알아서 안 사고 있어서 새삼스럽게 추가할 불매 항목이 없었을 테니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일본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방식의 식민 지배를 당하고, 현재 2차 가해까지 당하고 있다. 서양에선 있을 수 없는 이웃나라에 대한 증오 발언이 수시로 터져 나오고, 혐한이 대표적인 마케팅 코드로 승승장구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거리낌 없이 한국을 능멸하고 공격한다. 최고 지도자까지 혐한 부추기기를 일삼는다.

이렇게 당하고 살면서 어떻게 그렇게 일본의 문제에 무신경했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일본 제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고, 젊은이들이 집결하는 핫플레이스는 일본 스타일 업소가 점령하고, 우리가 원래 먹었던 회를 굳이 일식이라 부른다. 특히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일본여행 광풍이었다. 작년에 일본여행을 간 한국인이 750만 명에 달한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황당하다.

일본에 달러를 퍼주면서 살았던 것이다. 달러는 귀한 자원이다. 우리나라가 힘들게 제품을 만들어 해외에 가져다주고 달러를 받아온다. 그 달러로 식료품과 원자재, 연료 등을 구해 돌아가는 나라다. 달러가 떨어지면 외환위기가 터진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일본은 우리 도움 요청을 거절했다. 이쯤 되면 한이 맺혀서라도 달러를 외부로 뿌리는 것을 한사코 경계하고 특히 일본으로 달러가 넘어가는 것을 막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그동안 일본에 달러를 퍼주면서 살았다.

우리 예능에서 툭하면 일본 관광지를 홍보해주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다. 연예인들이 일본 방방곡곡에 찾아가 ‘좋다!’, ‘맛있다!’를 연발하는 내용이 연이어 방송됐다. 국제적으로 인기가 높은 한류 콘텐츠를 활용해 일본 홍보를 거저 해준 것이다. 그렇게 얻어맞고 무시당하면서도 끊임없이 퍼주기만 하는 나라. 이렇게 속없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가 그동안의 우리 태도를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긍정적일 것이다. 국익을 생각하는 경제적 자세는 특별한 시점에 한 번 터뜨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언제나 당연하게 이어지는 일상이어야 한다. 다만 불매한다며 일부러 크게 떠들어서 일본 우익을 도와줄 이유는 없다. 양국에서 서로 적대적인 말들이 오가면서 증오가 고조되는 것이 일본 우익이 원하는 바다. 조용히 각자의 자리에서 알아서 실천하면 된다.

트와이스 멤버들처럼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연예인을 공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이러면 일본에서 한류에 대한 경계심이 생겨 한류시장이 위축되고 우리가 피해를 당하며, 일본 우익이 쾌재를 부르게 된다. 한류에서 우리는 판매자고 일본은 시장이다. 판매자 측에서 시장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

이번 사태를 통해 자국 기술, 자국 산업, 자국 기업의 육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면 그거야말로 전화위복일 것이다. 90년대에서부터 시작해 특히 2000년대 이후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뀌어서, 기업의 국적을 무시하게 됐다. 심지어 외국 기업보다 국내 기업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조롱하는 역차별까지 나타난다. 국내 제품을 소비해줘서 육성하는 것보다 좋은 외국 제품 쓰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업을 육성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어떤 처지가 되는지를 이번 사태가 보여준다. 이 부문에서만큼은 과거 방위산업, 중화학공업을 키웠던 국산품 육성의 사고방식, ‘올드패션’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평소엔 일본에 달러를 퍼주다가, 무슨 일 생겼을 때 반짝하고 극렬한 목소리를 터뜨리고 마는 식이었다. 달러 퍼주는 것도 자해고 극렬한 목소리로 일본 우익을 도와주는 것도 자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에 대한 냉정한 대처법, 장기적 극일의 길이 무엇인지 제대로 논의하고 조용한 실천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것도 전화위복일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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