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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의정서에 고민 깊어지는 제약·화장품기업


입력 2019.04.08 06:00 수정 2019.04.08 16:57        이은정 기자

시간적·금전적 부담↑…중국발 글로벌 특허 관련소송 우려도

국산 자원 활용이 최선책이지만 대량생산 어려워

시간적·금전적 부담↑…중국발 글로벌 특허 관련소송 우려도
국산 자원 활용이 최선책이지만 대량생산 어려워


ⓒ연합뉴스 ⓒ연합뉴스

#1990년 일본 화장품 기업인 시세이도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약용식물인 ‘자무’를 이용한 화장품 원료 등으로 51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2000년대 들어 인도네시아 민간 환경단체들은 시세이도의 특허 출원을 ‘생물해적행위’로 규정하고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시세이도는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해 2002년 특허를 자진 철회했다.

나고야의정서를 법제화한 유전자원법이 지난해 8월 시행됐다. 그로부터 8개월가량 지났지만 국내 제약·화장품 기업들도 시세이도와 비슷한 분쟁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나고야의정서에 따른 현지법이 나라마다 모두 달라 사전적 대응이 쉽지 않고, 이익공유에 따라 원가가 올라도 가격 반영이 쉽지 않아 제약·화장품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나고야의정서 111개국 가입…원료마다 현지법 달라

나고야의정서는 생물다양성 보전 및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해 유전자원 이용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공유(접근 및 이익공유·ABS)하도록 한 국제협약이다. 2010년 일본 나고야 총회에서 채택되고 2014년 10월 평창 총회에서 발효된 이래, 지난해 9월 기준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196곳 중 유럽연합(EU)을 포함한 111개국이 비준을 받았다.

해외에서 생물자원을 가져와 연구개발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및 판매는 가능하지만 생물자원 접근부터 연구개발, 제품화 등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유전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공국이 정한 절차에 따라 사전통고승인(PIC)을 받은 뒤 제공자와 로열티·기술이전·연구활동 지원 등 이익 공유와 관련한 상호합의조건(MAT)을 작성해야 한다. 제공국의 ABS 관련 법규 의무도 준수토록 했다.

◆국내 바이오기업, 해외 원료 中에 51.4% 의존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자원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은 국내 바이오기업의 해외 생물자원 원산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리적 접근의 용이성, 문화친밀도 등의 이유로 중국과의 유전자원 교류가 상당, 한의학을 중심으로 한 제약산업 분야에서 중국으로부터 다량의 자원 수입 및 다양한 분야의 전통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과 한국바이오협회가 136개 바이오기업을 대상으로 한 나고야의정서 인식도 조사를 살펴보면 주요 원산지로 중국을 이용하는 기업이 51.4%로 가장 많았다. 유럽 43.2%, 미국 31.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에 따르면 해외 생물자원을 이용하는 국내 기업이 원료 수입국에 지불해야 할 로열티는 1417억원으로 추산된다. 산업별로는 의약품이 1083억원으로 가장 많다. 화장품 214억원, 바이오화학 및 기타 72억원, 건강기능식품 48억원 등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원을 활용한 연구와 상업화가 확대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로열티 지급액이 수 조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과 의약품은 다양한 원료를 섞어서 사용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분류나 관리가 어렵다”면서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이 권리를 행사하거나 자원보유국의 이익을 주장하게 되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산 원료 이용한 연구개발이 최선책

일각에서는 나고야의정서에 대응하는 최선책은 국내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아모레퍼시픽의 한국적 자연주의 브랜드 한율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아모레퍼시픽은 전 세계적으로 쉽게 찾아보기 힘든 흰감국(토종국화)을 강원도에서 발견해 미백화장품으로 제품화했다.

해외에서 실패한 대량생산이 국내에서 성공한 사례도 있다. 100년 된 주목의 잎과 껍질에서 추출하는 항암물질 탁솔은 대량생산이 쉽지 않았는데, 국산 주목 종자의 씨눈에서 탁솔이 다량 발견되면서 상용화에 성공했다. 대화제약 등 국내 제약사는 이를 탁솔 주사제 등으로 개발했다.

국립생물자원관도 국산 원료의 상업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이 나고야의정서 대응 지원 차원에서 작성 중인 국가생물종목록을 보면 2017년 기준 등록 생물 종은 4만9027종에 달한다.

다만 국산 자원이 있어도 국토가 좁은 국내 여건상 대량 생산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통상 국내 기업들이 화장품이나 의약품을 개발할 때 국내 자생종을 이용해 개발하더라도 상용화를 위해선 중국 등에서 대체재를 찾아 수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분쟁 시 당국 협조 필요

협약 당사국 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당사국들 중에서도 법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국가가 많고, 민간 차원에서 비당사국 소속 기업들이 업종별 협회를 꾸려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대한변리사회와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 유전자원정보관리센터는 지난 3일 서울 한국지식재산센터에서 5개 부처와 공동으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ABS(Acess and Benefit-Sharing) 법률지원단’을 발족했다. 지원단은 나고야의정서 해석을 돕고 민간·기업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설립됐다.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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