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가 1회전에서 만난 러시아의 블라소프에 석연치 않은 판정 속에 졌지만 끝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 게티이미지
김현우(28)의 땀도 러시아 입김을 극복하지 못했다.
2012 런던올림픽 66kg급 금메달리스트 김현우는 체급을 올려 치른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레슬링 역사상 3번째 그랜드슬램 주인공이다.
김현우는 15일(한국시각) 브라질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2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 그레코로만형 75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보조 스타르체비치(크로아티아)를 6-4로 누르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체급을 올려 올림픽 두 체급 석권을 노렸지만 동메달로 위안을 삼았다. 런던올림픽 66kg급 금메달에 이어 올림픽 2회 연속 메달을 차지한 순간이다. 사실상의 결승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에 희생양이 된 후 마음을 추스르고 건져 올린 메달이라 더욱 값졌다.
승리를 확정지은 김현우는 매트 위에 태극기를 펼친 뒤 큰 절을 올리며 흐느꼈다. 그의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모두 알고 있는 국민들은 광복절 아침 김현우의 도전을 지켜보면서 “금메달만큼이나 값진 동메달이다. 기쁨의 눈물이길 바란다. 억울함은 잊어라”며 응원했고, 현장에 있는 브라질 관중들도 김현우의 ‘스토리’를 떠올리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16강전 판정 논란 여파로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답게 자신을 잘 다스렸다. 다시 돌려봐도 통탄할 판정이다. 김현우는 앞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2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16강전에서 ‘세계랭킹 1위’ 로만 블라소프(러시아)와의 1회전에서 5-7로 졌다.
런던올림픽 이후 체급을 올려 75kg로 올라온 김현우가 정상을 놓고 격돌해왔던 라이벌이다. 블라소프는 이 체급에서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김현우와의 상대전적은 1승1패. 사실상의 결승이었다. 그래서 이번 판정은 너무나도 안타깝다.
김현우가 동메달 획득 후 매트 위에 태극기를 펼쳐놓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 게티이미지
상황은 아래와 같다. 김현우는 종료 30초 전까지 3-6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패스브를 얻은 뒤 시원하게 가로들기에 성공했다. 7-6 극적인 역전승을 바라보게 한 4점짜리의 큰 기술이었다. 하지만 심판은 2점만 인정했다.
정확하게 기술이 성공했다고 판단한 안한봉 감독은 인형을 매트에 던지며 챌린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패널티 1점만 받았다. 심판진이 비디오 판독 결과 원심을 유지하며 상대 선수에게 오히려 1점을 줬다. 한국 입장에서는 챌린지 남발을 막기 위한 규정에 걸려든 것이다. 결국, 김현우는 7-6 역전승이 아닌 5-7로 패하고 말았다.
경기 후 코칭스태프는 격앙된 반응을 나타내며 제소의사를 밝혔다. 김현우 코칭스태프는 “손이 바닥에 닿았는지 여부는 관계가 없다. 모두가 4점을 말하는데 심판만 2점을 주장한다. 러시아가 레슬링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제소 서류 준비까지 마쳤지만 남은 선수들의 추가 피해를 우려, 김현우 측과 한국 선수단은 끝내 제소하지 않기로 했다. 제소해도 승패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심판에게 징계만 주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판정을 놓고 레슬링계 안팎에서는 러시아를 째려보고 있다. 세계레슬링연맹 회장은 세르비아인이지만, 실무를 담담하는 부회장이 러시아인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4점을 2점으로 판정한 주심과 비디오 판독까지 거친 후에도 러시아에 유리한 판정을 내린 것은 결국 힘의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전과'도 있다. 김현우에게 2013년 패했던 블라소프는 2014년 7월 루마니아 오픈에서 김현우의 불패 행진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거친 반칙을 가했고, 편파 판정 논란이 일었다. 김현우가 이긴 경기라는 평가도 많았다.
러시아 횡포 의혹 속에 3년 전 러시아에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도 떠오른다. 당시 소트니코바는 김연아에 미치지 못하는 ‘조국’ 러시아를 등에 업고 금메달을 차지했다는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김연아는 소치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해 기술점수(TES) 69.69점 예술점수(PCS) 74.50점을 합친 144.19점을 받았다. 쇼트프로그램 점수인 74.92점과 합산한 최종합계 219.11점을 기록하며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224.59점)에 5.48점 뒤졌다. 소트니코바는 점프에서 실수가 있었음에도 기술점수 75.54, 예술점수 74.41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심판이 김연아에겐 박한 점수를 주고 소트니코바에겐 후한 점수를 줬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경기 직후 러시아인 심판과 포옹하는 장면이 포착돼 논란이 증폭됐다. 카타리나 비트도 주먹으로 무릎을 치며 격분하며 “김연아가 챔피언”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조직적으로 개입된 금지약물 복용 파문으로 스포츠 정신을 훼손시키며 올림픽 금지 처분까지 당할 뻔했던 러시아라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날카롭다.
김현우를 꺾고 상위 라운드로 진출한 블라소프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러시아가 김현우-블라소프 판정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왜 모두들 러시아를 째려볼까. 블라소프의 땀까지 거짓으로 보이게 만드는 러시아는 최소한 국제 스포츠계에서는 정말 '문제적'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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