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달수의 무게감 "20년 지나서야 실감"

이한철 기자

입력 2016.04.07 09:21  수정 2016.04.11 13:04

은사가 붙여준 '배우' 호칭 "잊지 못할 감동"

'대배우'의 조건 믿음·연륜·철학 "함참 멀었죠"

오달수에게 '배우'라는 호칭이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진짜 배우 되기까지, 순수했던 20년

"배우라는 말을 듣는 자체가 굉장히 영광스럽죠. 유럽에선 배우라는 호칭을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아요."

오달수는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역대 한국 영화 13편 가운데 무려 7편에 출연했다. 그가 출연한 작품들의 관객수는 무려 1억 명을 넘어선지 오래다. 2002년 '해적, 디스코왕 되다'로 스크린에 진출한 뒤 불과 14년 만에 거둔 업적이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배우'라는 타이틀 앞에 한없이 겸손해졌다. 배우로서 비로소 인정받기까지 걸린 20년의 시간, 그 인내의 시간을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오달수는 2010년 은사인 이윤택 연출가로부터 '배우'라고 불린 뒤에서야 자신을 진정한 의미의 배우로 인정했다.

"제 은사님인 이윤택 선생께서 언젠가 본인의 희곡집을 한지로 묶어서 택배로 보내주셨어요. 제일 앞 장에 '배우 오달수에게'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이윤택 선생님은 아무에게나 배우라는 호칭을 쓰지 않아요. 그때 감동이 참 컸어요."

연기를 시작한지 무려 20년이 지난 후였다. 오달수는 "그제야 그 호칭의 무게감이 절로 실감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달수는 그 이후 배우로서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한국 영화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주연배우 캐스팅 목록이 빵빵해야 오달수 캐스팅을 기대할 수 있을 만큼,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급기야 이제는 그의 삶 자체를 통째로 스크린에 옮긴 듯한 영화 '대배우'가 제작됐다.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조연배우가 원톱 주연이라는 낯선 역할을 선뜻 맡은 것이다.

영화 '대배우' 속 장성필의 삶은 배우 오달수의 삶과 닮아 있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장성필, 나와 비슷해서 오히려 힘들었죠"

영화 '대배우'는 뒤늦게 도약을 꿈꾸며 '깐느 박'의 작품 오디션에 도전하고,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무모한 행동을 감행하는 장성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도전 과정은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장성필은 오달수의 연기 인생, 더 나아가 대학로 연극배우들의 삶을 닮아 있다. 너무 사실적이라 편할 법도 했지만 오달수는 "오히려 그 비슷한 면 때문에 성필이라는 캐릭터를 입을 때 힘든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기를 하는데 장성필이 아니라 오달수가 불쑥불쑥 튀어나와요. 극중에 성필이 연기에 대해서 얘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연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이 튀어나왔어요."

하지만 평소 절친한 석민우 감독과의 인연 탓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 대한 두 사람의 약속은 무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감독으로 활동 중이던 석민우 감독은 오달수에게 자신이 입봉하면 꼭 출연해달라고 부탁했고, 10년 만에 그 약속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 작품을 통해 첫 단독 주인공을 맡은 것도 오달수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하지만 오달수는 "다시는 못할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오달수는 "감독은 혼자 외롭게 모든 걸 챙겨야 하니 주연 배우에게 기대는 부분이 있다"면서 "나는 '대배우'에서 연기한 만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천만 요정' 오달수에게도 연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죠"

오달수는 연기 속에 어떤 철학을 담으려 하지 않는다. 철학은 담으려 해서 담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연기는 일상생활이고, 삶이다. 그저 연기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도 연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경제적인 궁핍함은 대다수 무명 연극배우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 12번도 더 했다는 그는 "지금은 버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그는 "힘들 때조차 배우 말고 다른 직업을 갖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는 천상 배우다.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덧붙였다. 인간이 배신하지 않는다면, 연극은 반드시 보답한다는 것. "연극을 올곧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받치면 연극이 반드시 보답을 해줘요. 배우가 연극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때려치우고 떠나는 거지 연극은 배신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오달수는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100% 장담했다.

"대학로에 20대 배우가 1,000명이라 생각하면 30대 배우는 700~800명으로 줄어들어요. 40대부터 더 줄어들고 60대 배우는 100명 정도가 될 거예요. 그 분들이야말로 대배우라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분들은 모두 영화나 드라마를 하고 있어요. 거짓말 같지만 진짜예요."

오달수는 아직 '대배우'라 불리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일단 믿음이 가는 배우여야 해요. 그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라면 사람들이 극장으로 막 달려가는 배우, 그런 배우들의 연기 속에 연륜과 철학이 있어요."

오달수는 "요즘 잘나가는 20~30대 배우들을 보고 잘생겼다, 연기 잘한다는 말은 하지만 대배우란 말을 쓰진 않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10년 후 20년 후에는 오달수 또한 '대배우' 반열에 올라 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영화 '대배우'는 미래의 '대배우'에 대한 헌사이자 성장 드라마인지도 모른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