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운전석 vs 뒷좌석 비교해 보니
제네시스 EQ900이 17일 기자단 시승행사에서 서울 춘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현대자동차
사장님차, 노땅차, 법인차의 대명사로 불리던 에쿠스가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플레그십 세단 ‘EQ900’으로 재탄생했다. 현대차는 여전히 뒷좌석에 앉는 사장님들의 수요는 포기할 생각이 없지만, 거기에 좋은 차를 사서 직접 몰고 다니길 원하는 이들까지, 특히 수입차를 선호하던 이들까지 제네시스 EQ900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EQ900가 이런 두 가지 수요, 즉 쇼퍼드리븐 카(전담 기사가 주로 운전하는 차)와 오너드리븐 카(직접 운전하는 차)의 요구를 각각 어느 정도 충족시켰는지 지난 17일 시승을 통해 경험해 봤다.
시승 모델은 3.3 터보 GDi 최상위 트림인 프레스티지였고, 시승 코스는 서울 광장동 W서울워커힐호텔에서 강원도 춘천 로드힐스까지 왕복 약 140km 구간이었다.
◇뒷좌석, 외부 세계와의 철저한 단절
2인 1조로 이뤄진 시승에서 반환점인 로드힐스까지 약 70km 구간은 뒷좌석에 앉았다. 고급 세단 뒷좌석에 앉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처음엔 어색했지만, 편안한 시트에 파묻히니 이내 온몸이 노곤해졌다.
차 값으로 1억1100만원을 지불하고도 300만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누릴 수 있는 VIP 시트는 현대차에서 ‘항공기 퍼스트클래스 시트와 동급’임을 강조하고 있는 옵션이다. 실제 시트 개발 담당 연구원들이 항공기 퍼스트클래스 시트를 연구하기 위해 항공사 격납고에서 밤을 지새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VIP 시트가 장착된 제네시스 EQ900 뒷좌석.ⓒ현대자동차
센터콘솔에 마련된 스위치를 이용해 시트를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만들어봤다. 등받이를 최대한 젖히면 시트 하단부가 앞으로 밀리며 레그룸이 좁아지지만, 앞자리 조수석을 앞으로 밀면 극단적으로 나태한 자세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조수석 위치는 뒷좌석에서 조정할 수 있다.
어깨부 경사도 조절이 가능하고 머리를 받치는 헤드레스트 전후로 움직인다. 몸은 퍼져 있어도 머리는 세우고 무엇인가를 들여다봐야 할 때 유용한 기능이다.
총 14개 방향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이게 복잡하고 번거롭다면 버튼 하나로 미리 입력된 착좌 모드 중 하나를 택해도 되고, 한번 설정된 시트 포지션을 저장해놨다가 다시 활용할 수도 있다.
굳이 항공기 퍼스트클래스와의 차이를 찾자면 시트를 완전히 펼쳐 눕는 게 안 된다는 걸로 시비를 걸어야 할 정도다.
승차감은 탑승자에게 노면 상태에 대한 정보를 단절시킬 정도다. 시내에서 누덕누덕 기운 아스팔트나 맨홀을 지날 때는 물론,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과속방지턱을 넘어도 큰 불편은 느껴지지 않는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운전자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앞차를 추월하느라 수 차례의 거친 움직임이 있었지만 불안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소음 차단도 완벽에 가깝다. 바람이 많은 날 고속으로 달려도 차안은 잠잠하다. 혹시나 해서 창문을 살짝 내렸더니 거센 바람소리가 귀청을 울려댄다.
문틈은 삼중으로 틀어막아 외부의 소리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았고, 차체 바닥과 트렁크 등 곳곳에 흡차음재를 대거 사용했다고 한다. 옆유리도 중간에 차음제를 넣은 3중 구조다.
노면 소음 저감의 경우 국산차 최초로 적용한 ‘중공 공명음 알로이 휠’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휠의 바깥쪽 테두리 내부를 빈 공간으로 만든 것으로, 이 공간이 타이어와 도로의 마찰로 인한 공명음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타이어 공명음을 최대 5데시벨까지 개선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손길이 닿는 곳과 시선이 가는 곳은 온갖 고급 소재로 치장했다. 사실 내부 인테리어는 돈을 들인 만큼 효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내장 가죽은 자동차에 사용할 수 있는 최상의 제품인 세미 에닐린 가죽을 이탈리아 최고급 가죽 가공 브랜드인 이탈리아 파수비오(Pasubio) 사와 협업해 개발했다. 파수비오는 페라리, 벤틀리, 포르쉐, 재규어, 랜드로버 등 최고급 브랜드의 가죽 시트를 만드는 브랜드다.
가죽 시트의 고급스런 스티치는 오스트리아 복스마크(Boxmark)와 공동 개발했다. 이 회사의 고객은 부가티, 람보르기니, 벤틀리, 마이바흐, 맥라렌 등이다. 우드트림 또한 통나무를 깎아 만든 리얼 우드를 적용했다.
최상급 원재료는 물론, 파수비오나 복스마크와 같은 가공업체들까지 동원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현대차가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플래그십 세단의 ‘럭셔리’를 부각시키기 위해 들인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편의사양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 듀얼 모니터나 전동식 유리 커튼,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 등 자동차 분야에 상용화된 대부분의 기술이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제네시스 EQ900이 17일 기자단 시승행사에서 서울 춘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현대자동차
◇운전석, 노땅 에쿠스는 잊어라
푹신하고, 편안하고, 조용한 뒷좌석은 과거 에쿠스보다 조금 더 나아졌을지언정 획기적으로 무엇인가가 바뀐 것은 아니다. 진정한 오너드리븐 카를 지향한다면 스티어링 휠을 잡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반환점에서 자리를 바꿔 이번엔 운전석에 앉았다. 이제 배기량 3300cc짜리 6기통 엔진에 트윈터보까지 단 녀석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됐다.
제네시스 EQ900의 세 가지 엔진 라인업(3.8 V6, 람다 3.3 V6 터보, 5.0 V8) 중에서도 3.3 V6 터보는 오너드리븐 수요에 초점을 맞춘 차다. 회사측에서 운전 재미를 최대한 제공해줄 수 있는 라인업을 시승 모델로 정한 것이다.
시동버튼을 누르고 처음 차를 움직일 때의 느낌은 그냥 점잖은 세단이다. 오너드리븐 타깃이라지만 아무래도 뒷좌석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서인지 엔진음 자체가 고출력 차량 특유의 흥분을 자아내는 맛이 전혀 없다.
하지만 고속도로로 진입하면 트윈터보엔진의 진가가 곧바로 발휘된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니 생각보다 차체가 빠르게 튀어나가 당황스러울 정도다.
사실 터보엔진의 진가는 출력보다 토크에서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최고출력으로 비교하자면 3.3 V6 터보는 370마력으로 3.8 V6(315마력)보다는 높지만 5.0 V8(425마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최대토크는 3.3터보가 52.0kg·m로 5.0 V8(53.0kg·m)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 3.8 V6(40.5kg·m)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크다.
더구나 52.0kg·m에 달하는 최대토크가 1300rpm에 불과한 엔진회전수에서부터 시작된다. 운전자의 의도가 차량의 움직임으로 전달되는 시간이 그만큼 짧다는 얘기다.
3.3터보엔진을 장착한 EQ900는 앞서가던 차들을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추월해 나간다. 마치 짧은 다리를 재빨리 움직이며 달려가던 동물을 긴 다리를 서너 번 움직여 성큼성큼 따라잡는 맹수와도 같은 모습이다.
제네시스 EQ900 서스펜션에 적용된 내장형 밸브 개념도.ⓒ현대자동차
뒷좌석에 있을 때는 말랑말랑하게만 느껴졌던 서스펜션이 운전석에서 코너를 돌 때는 단단하게 차체를 조여 주는 느낌이다.
제네시스 EQ900 개발진은 서스펜션 세팅과 관련해 양립하기 힘든 ‘승차감’과 ‘퍼포먼스(조종 안정성)’라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시킨 비결로 ‘내장형 밸브’를 꼽았다.
쇽업소버 내부에서 유압을 제어하는 밸브는 기존 외장형의 경우 감쇠력을 높게 세팅할 경우 승차감은 좋지만 조종 안정성은 떨어지는 반면, 감쇠력을 낮게 세팅할 경우 조종 안정성은 좋아지더라도 승차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EQ900의 경우 내장형 밸브를 채택, 주행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감쇠력 제어가 가능하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특히 전륜과 후륜의 감쇠력을 서로 다르게 제어해 언더스티어(회전 구간에서 차가 운전자의 의도보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현상)나 오버스티어(회전 구간에서 차가 운전자의 의도보다 안쪽으로 휘어지는 현상)를 최소화하고 선회 안전성과 민첩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HDA, 자율주행의 초기 단계를 경험하다
한동안 속도를 즐긴 뒤 이 차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을 테스트해봤다. ‘주행지원’이라는 소극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자율주행자동차의 초기 단계다.
고속도로상에서 HDA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속도를 지정한 뒤 차간거리 조절 버튼을 누르니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는 물론, 스티어링 휠까지 자동차가 알아서 통제한다.
속도를 100km로 맞춰 놓으면 앞에 차량이 없을 때는 그 속도로 달리지만 앞차가 그보다 느린 속도로 가고 있으면 속도를 낮춰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달린다. 앞차와의 간격도 4단계로 설정할 수 있다. 중간에 옆차선에서 다른 차가 끼어들 때도 속도를 조절해 그 차를 기준으로 차간 간격을 유지한다.
속도를 제한속도보다 높게 설정해 놓으면 과속단속 카메라가 있을 때 알아서 속도를 제한속도에 맞춰준다. HDA 시스템이 내비게이션과 연동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달리는 코스는 항상 양쪽 차선의 정가운데다. 회전 구간에서는 차선에 맞춰 스티어링 휠이 알아서 돌아가며 방향을 조정한다.
한마디로 HDA 시스템을 작동시키면 그 뒤부터는 운전자가 개입할 일이 없다. 핸들을 놓고 있어도 차가 알아서 운전까지 해주지만, 핸들에서 손을 떼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경고음이 울리며 기능이 해제된다. 아직 자율주행 관련 법규나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 이 기능을 과신하고 운전을 차에 맡길 경우 사고에 따른 책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HDA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도 차량의 흐름이 일정한 고속도로로 한정된다. 톨게이트를 들어서면서부터 시스템 작동이 가능하고, 다시 톨게이트를 나서면 안내와 함께 기능이 자동 해제된다. 내비게이션과 연동돼 있기 때문에 고속도로가 아닌 곳에서는 운전자가 강제적으로 작동시킬 수도 없다.
아직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차량 자체의 기술적으로는 자율주행의 초기 단계가 제네시스 EQ900을 통해 상용화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평가를 내리자면, 제네시스 EQ900은 확실히 기존 현대차의 어떤 모델보다 성능이나 안전성, 품격 측면에서 한 단계 진보한 모델이다. 이는 현대차 전체의 수준이 한 단계 진보할 여지가 마련됐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 업체들이 별도의 고급 브랜드에서의 선도적인 고성능화, 고급화를 통해 같은 계열의 대중 브랜드까지 성능과 브랜드파워 모두를 끌어올린 것과 같이 제네시스 EQ900과 향후 출시될 제네시스의 다른 모델들도 현대차에게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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