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모비스와 원주 동부의 '2014-15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승제) 3차전이 열린 지난 2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전광판 관리하던 기록원이 자리를 떠 체육관 밖으로 이탈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
사건의 발단은 3쿼터. 유재학 모비스 감독이 타임아웃을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심판이 이를 취소시킨 데서 비롯됐다. 이후 모비스가 49-42로 앞서던 3쿼터 종료 3분 04초 전 유 감독이 선수 교체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기록원에게 거세게 항의했고, 이에 기분이 상한 기록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체육관 밖으로 퇴장하기에 이르렀다.
황당한 상황으로 인해 경기는 문제의 기록원이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와 제자리를 찾아 앉기까지 5분가량 중단됐다.
양팀 선수단과 심판진, 경기장에 운집한 농구팬들, TV와 인터넷으로 경기 실황을 중계하던 중계진, 그리고 수많은 시청자들 모두 이 황당한 상황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팬들 입장에서 보면 분명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올 시즌 프로농구라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는 다소 냉소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올 시즌 프로농구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판정시비와 각종 해프닝으로 프로농구의 인기를 스스로 깎아먹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포스트시즌 기간에도 정규리그 6위 인천 전자랜드의 놀라운 연승행진과 창원 LG의 불꽃 투혼이 화제가 되면서 정규리그와는 다른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사상 초유의 기록원 퇴장 해프닝 등으로 인해 가장 뜨거워야 할 챔피언결정전 무대가 식어버렸다.
지난달 18일 한국농구연맹(KBL)은 ‘빠르고 재미있게 달라진 프로농구, 팬들도 움직였다’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통해 시청률 조시기관 AGB닐슨에 의뢰해 조사한 올 시즌 프로농구 버즈량(미디어 및 소비자가 생성하는 정보의 양인 CGM 포함한 키워드 언급량)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소비자 생성미디어(CGM / Consumer Generated Media)로서 버즈량 분석과 집계에 포함되는 미디어는 네이버, 다음 등 포털뉴스와 11개 일간지, 인터넷언론, 방송사 등이며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블로그와 게시판,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전문 사이트, 클럽, 동영상 카테고리 등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프로농구에 대해 얼마나 많은 말들이 오고 갔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버즈량 측정은 단순한 TV 시청률보다 프로농구의 인기를 조금 더 세세하게 들여볼 수 있는 자료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이번 시즌 프로농구의 버즈량 총합은 886,967건으로 702,787건을 기록한 지난 시즌에 비해 26.2% 증가했다.
KBL은 이에 대해 이번 시즌 프로농구가 전체적으로 득점이 늘고, 파울이 줄어든 점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팀당 평균 득점은 74.6점으로 지난 시즌 73.4점에 비해 1.2점(경기당 2.4점) 늘어난 반면, 파울은 평균 18.8개로 지난 시즌보다 0.4개(경기당 0.8개) 줄었는데 이는 2002-03시즌의 평균 18.5개 이후 최저 기록이라는 것.
또 속공이 늘고 경기시간이 단축된 점도 팬들의 관심이 증가한 원인으로 분석됐다.
올 시즌 팀 당 속공은 평균 3.5개(지난 시즌 3.0개)로 최근 7시즌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반면 경기시간은 지난 시즌 1시간 50분에서 이번 시즌 1시간 49분으로 1분 감소했는데 하프타임이 지난 시즌에 비해 3분(12분에서 15분으로 변경) 늘어난 것을 감안했을 때, 실제 경기시간은 총 4분 단축된 셈이라는 설명이다.
KBL 설명처럼 올 시즌 프로농구가 좋은 경기력과 빠르고 재미있는 경기 진행으로 농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증가했고, ‘네이버’와 ‘아프리카 TV’ 등 뉴미디어를 통해 농구를 관람한 시청자수가 대폭 늘어나면서 버즈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챔피언결정전 기록원 퇴장 해프닝에서도 드러나듯, 올 시즌 프로농구의 버즈량 증가가 과연 KBL에서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지표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올 시즌 프로농구가 사상 유례가 없는 오심 논란과 편파판정 논란으로 인해 비디오 판독을 확대 실시했지만 이마저도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시즌 초반에는 프로농구의 TV중계가 원활치 않으면서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포스트시즌에도 이번 기록원 퇴장 해프닝 이전에도 지난달 12일 고양 오리온스와 창원 LG의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전광판이 멈춰 15분가량 경기가 지연되는 상황이 벌어져 ‘프로농구경기가 맞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뉴미디어가 늘어난 만큼 팬들의 관심 역시 늘어났고, KBL이 자랑하는 것처럼 버즈량도 크게 늘어났지만 그 늘어난 버즈량이 긍정적인 내용 못지 않게 부정적인 내용도 상당한 수준일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볼 수 있다.
올 시즌 프로농구에 대한 버즈량이 증가한 것이 결코 긍정적인 성격의 것이 아님을 짐작하게 하는 실제적인 수치가 있다. 바로 이번 시즌 직접 경기장을 찾은 관중 수다.
2014-15시즌 프로농구 정규리그 총 관중수는 104만3505명(경기당 평균 3865명)으로 지난 시즌(118만450명, 경기당 평균 4372명)에 비해 무려 11.6%나 감소했으며, 올스타전 관중수를 포함하면 10.8% 감소했다. 경기당 평균 관중수가 4000명을 밑돈 것은 2010-11시즌(경기당 평균 3천815명)이후 4시즌 만이다.
프로농구에 대한 버즈량이 크게 늘어났고, 팬들이 프로농구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면 왜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수가 지난 시즌에 비해 10% 이상 크게 감소했는지 KBL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남자농구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모두가 힘들 것이라던 '난적' 이란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감격을 누렸다. 여세를 몰아 프로농구도 흥행 면에서 이전에 비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프로야구가 오늘날 국민 스포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의 호성적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프로농구도 충분히 기대를 품을 만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시즌 종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되돌아 보면 올 시즌 프로농구는 턴오버를 남발한 끝에 자멸한 게임으로 요약된다. ‘할 만큼 했다’는 자위보다는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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