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 박민영 "기자는 무섭다는 선입견 깼다"(인터뷰)

부수정 기자

입력 2015.02.23 10:30  수정 2015.03.02 08:08

기자 채영신 역 맡아 감정 연기 소화 호평

"도전정신 생겨, 다양한 캐릭터 하고파"

지난 10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힐러'에서 채영신으로 분한 배우 박민영. ⓒ 문화창고

"연기를 시작한 이래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최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힐러'에서 인터넷 신문사 기자 채영신으로 분한 박민영은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종영 소회를 밝혔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다소 야윈 모습이었다. 주변에선 귀여운 볼살이 실종됐다고 서운했단다.

캐릭터 때문에 살을 뺐다는 그는 "남들은 매력이라고 하지만 볼살은 콤플렉스"라며 툴툴거렸다. 짧게 자른 머리는 반응이 꽤 괜찮았다. 웨이브 단발은 머리를 감고 말리기만 하면 완성된다. 박민영은 그렇게, 오롯이 채영신이 됐다.

많은 걸 내려놓은 드라마 '힐러'
'힐러'는 정치나 사회 정의 같은 건 재수 없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살던 청춘들이 부모 세대가 남겨놓은 세상과 부딪치는 통쾌하고 발칙한 액션 로맨스다. '모래시계'(1995) 송지나 작가가 쓰는 기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박민영은 극 중 '똘끼충만' 기자 채영신을 연기했다. 현실은 이류지만 유명하고 섹시한 기자가 되기를 꿈꾼다. 어릴 적 상처를 지닌 그는 정후(지창욱)과 엮이면서 감춰진 과거, 그리고 거대한 현실의 벽과 마주한다. 기자를 상대하는 입장이었다가 기자가 된 것이 흥미롭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인터뷰 자리도 불편했을 거예요. 벌서는 느낌도 들고,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에 항상 조심스러웠거든요. '내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기사가 나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했고요. 이제는 할 말도 편하게 하는 수다쟁이가 됐어요. 연예부 기자는 무섭다는 선입견을 깼죠."(웃음)

박민영은 지창욱과 함께 극을 이끌어갔다. 주변에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런 우려를 보란 듯이 털어냈고,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특히 박민영은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다양한 감정 연기를 자유자재로 펼쳤다. 겉으론 해맑지만 속엔 곪아 터진 상처가 있는 캐릭터는 쉽지 않았을 터. 부담될 법도 한데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작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른들이 판을 만들어줄 테니 너와 창욱이는 마음껏 뛰놀아'라고요. 제작진과 선배들이 기초를 닦아주셔서 마음 편하게, 재밌게 찍었어요.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뿐더러 드라마를 통해 기분 좋은 에너지를 듬뿍 받았죠."

지난 10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힐러'에서 채영신으로 분한 배우 박민영. ⓒ 문화창고

'할 수 있다'는 용기·도전정신 생겨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으로 데뷔한 박민영은 이후 '성균관 스캔들'(2010), '시티헌터'(2011), '영광의 재인'(2011), '닥터진'(2012) 등을 통해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왔다. 성적도 '중박' 이상이다. 그러다 2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모든 에너지가 고갈됐을 때였다.

"당시 소속사와의 계약도 끝났을 때라 반년 이상을 홀로 지냈어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쉬자고 생각했고, 연기에 대한 열정이 생겼을 즈음에 지금 소속사를 만났어요. 그러다 '개과천선'(2014)을 했죠. 오래 쉬었던 터라 선배들의 연기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김명민, 김상중, 오정세 선배들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습니다."

김명민은 박민영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연기적인 갈증이 날 때는 작품을 해서 풀어야 한다"고. 선배의 말을 곱씹으며 만난 작품이 '힐러'였다. 여행 중 기차 안에서 3시간 만에 결정했다. 하고 싶었지만 겁이 났다. "그간 제가 할 수 있는 연기, 잘할 수 있는 연기만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영신이는 좀 더 발전된 캐릭터였어요. 뭔가 내려놓아야 했죠."

과할 정도로 털털하지만 묘하게 사랑스러운 영신은 '여자들이 사랑하는 박민영'을 만들고 말겠다는 송 작가의 의지가 반영됐다. 박민영은 "그래, 이거야"라며 용기를 냈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메이크업이 망가지면 뭐 어때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오히려 연기에 대한 몰입도와 집중력이 생겼습니다. '영신이가 사랑스럽다'라는 얘기만으로 큰 힘이 됐죠. 감히 손대지 못했던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어요. '힐러'는 '너 할 수 있어!'라는 용기를 북돋아 준 작품입니다."

삶에 무관심했던 청춘이 서서히 변하게 되는 이야기는 '젊은 세대'인 박민영도 공감했다. "뉴스를 볼 때 정치, 사회 분야보단 쉽게 읽을 수 있는 연예 기사를 주로 봤어요. 복잡한 게 싫어서 도망쳐 있다가 나와 가까운 사람이 피해를 봤거나, 연관돼 있을 때만 관심을 가졌고요. 정후와 영신의 모습과 비슷해요. 제 또래 세대와 비슷한 마음, 부모 세대의 고민과 투쟁 등을 작품을 통해 알게 됐죠."

'힐러'에선 정후와 영신의 로맨스가 화제가 됐다. 상처받은 두 사람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치유해주는 사랑. 소위 말하는 '밀당'도 없다. 심지가 굳은 두 사람의 사랑은 그야말로 판타지였다.

박민영은 "총 여섯 번의 키스신이 나왔다"며 "이렇게 애정신을 많이 소화한 작품은 '힐러'가 처음이었다'고 웃었다. 눈꽃 키스신과 정후와 영신이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영신이 아픈 정후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나 지금 가면 너 평생 울 거야'라고요. 여주인공이 먼저 마음을 표현하는 게 신선했죠. 적극적인 영신이가 마음에 들었어요. 상처받은 두 영혼이 사랑하며 치유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습니다."

지난 10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힐러'에서 채영신으로 분한 배우 박민영. ⓒ 문화창고

"혼자 끙끙 앓는 성격, 내편 만들고파"
극 중 영신은 해맑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커다란 상처를 갖고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또 버려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가슴을 짓눌렀던 것. 박민영은 이런 영신에게 공감했다고 털어놨다. 마냥 밝아 보였던 그에게서 진지하고 고민스러운 말이 나왔다.

"연예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건 아닐까?'라고 걱정한 적이 있어요. 혼자 생각하다 보니 큰 고민이나 문제가 생기면 지인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해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하고 속 끓이곤 하죠."

"그러면 자기 자신이 너무 힘들지 않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민영은 "단순한 성격"이라며 "'잊고 살자'고 되뇐다"고 고백했다. 속마음을 담담히 말하는 그가 조금은 안쓰러웠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내편' 한 사람만 있으면 견딜 수 있는 삶이다. 혼자 앓기보단 누군가와 고민을 공유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했더니 아직은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단다.

"'내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혼해야겠죠?"라며 웃은 그는 공백기를 다시 떠올렸다. "당시 혼자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았어요. 세상에 혼자 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참 힘들었죠. 다 필요 없고 '완전한 내편'만 곁에 있으면 든든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힘든 시기를 겪은 그는 더 단단해졌다. 평소에 툭하면 흘렸던 눈물도 이젠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의사, 변호사, 기자 등 전문직 역할을 맡아왔다. 배우면서 연기했다는 박민영은 다음 작품에서는 마음껏 풀어진 백수 캐릭터를 맡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이제 막 서른을 맞은 그에게 올해 계획을 물었다. "최대 관심사는 오로지 연기예요. 9년 동안 여러 작품을 찍었는데 제게 오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걸 느꼈어요. 서른은 좋은 배우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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