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기업도 모자라 혐(嫌)기업 부추기는 정치권

데일리안= 조진래 편집인

입력 2015.02.17 14:49  수정 2015.02.17 14:55

<칼럼>여론 눈치에 총수 가석방 나 몰라라…탈법적 입법으로 되레 목죄

‘증세’ 총구 기업에 정조준…대기업 ‘정서적 면죄부’ 언제나 가능할까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 전경.ⓒ연합뉴스

최태원 회장 등 기업인 가석방 다시 미뤄져

혹시나 하던 기대가 무너졌다. 법무부가 지난 16일 올린 3.1절 특별가석방 심사대상자 명단에 총수 기업인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로써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LIG넥스원의 구본상 전 부회장은 또다시 기약없는 영어(囹圄)의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땅콩회항 사건 등으로 한껏 고조된 재벌 일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반영된 탓이다.

지난 연말 가석방에 기대를 걸었던 재계는 “이번에는...” 하며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으나 희망대로 되진 못했다. 너나 없이 경제 살리기를 외쳤던 상황이라 실망과 아쉬움이 더욱 컸다. 재계에서는 지금 정부나 정치권 분위기라면 8월15일 광복절까지는 사면이나 가석방 얘기를 다시 꺼내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가석방 결정은 전적으로 법무부 장관 소관이다. 대체로 형기의 절반을 채우면 요건을 갖춘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최태원 회장은 2013년 1월 횡령 혐의로 기소된 후 지난해 2월 징역 4년형이 확정돼 지난달 말로 수감 생활 2년을 넘겼다.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도 징역 3년 6월이 확정돼 2년 넘게 복역 중이다. 2012년 사기성 CP(기업어음) 발행 혐의로 구속된 구본상 전 부회장은 징역 4년형에 이미 2년 3개월 가까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가석방을 위한 최소한의 형기를 마쳤다. 경우에 따라선 특별사면도 가능한 수준이다. 특히 최태원 회장의 경우 경제를 살리는 ‘사회적기업’에 관한 책도 내며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건강을 이유로 보석 신청하는 꼼수도 없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해당 그룹들은 내부 유보금으로 투자를 더 늘리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경제살리기가 시급한 지금, 기업인 가석방에 대한 보다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일사부재리 원칙 무시한 초법적 의원입법 안돼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공개한 ‘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발의안’을 보면, 그냥 ‘삼성’이라는 특정기업을 겨냥한 ‘초법적 의원입법’ 그 자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법의 기본 정신이 너무도 가볍게 무시됐다. 자칫 근거없이 배임이니 황령이니 악의적 소송이 남발되고 시도 때도 없이 기업인들이 법정으로 불려갈 게 불 보듯 뻔하다.

이 법안은 소급입법 금지와 일사부재리 원칙이라는 자유민주주의 법의 근간을 무너트렸다. 형법 상 삼성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에 관한 처벌이 다 끝난 삼성을 다시 옭아 매고자, 느닷없이 민법을 들고 나와 20년 전 것까지 소급적용하겠다는 심산이다. 더욱이 부당이득의 개연성이 의심되면 누구든 재산 환수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법 정신을 망각한 ‘악법’이다.

특히 삼성SDS 건은 이미 지난 2009년 관련 피고인들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져 처벌이 종료된 사건이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손해액 227억원과 이자액 130억원을 배상했다. 증여세로 440억원을 국세청에 납부했고 이 회장 일가는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며 80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기도 했다. 세금도 내고 손해배상도 모두 한 마당에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를 부추겨 법에도 없는 소급 입법과 이중처벌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내 조율이 있겠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미 이 법안의 위헌 소지를 지적한다. 재계에서도 작은 회사가 20여년 동안 꾸준히 성장한 부분은 간과하고 막대한 상장 차익에만 집중해 이를 강제 환수하려는 것은 ‘기업 생태계’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대기업의 노력도 배가되어야겠지만, 툭하면 삼성 등 대기업을 몰아세우는 대기업 혐오의 정서가 이대로 지속되면 큰 일이다. 기업들이 언제야 ‘정서적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지 궁금하다.

법인세로 몰아 기업 혐오 키우는 정치권 각성해야

최근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대기업에 대해 거의 혐오 수준이다. 반(反)기업을 넘어 거의 혐(嫌)기업 수준이다. 곳간에 돈 쌓아놓고 세금도 제대로 안내는, 배임과 횡령을 밥먹듯이 하는 집단으로 호도되고 있다. 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 상황에서 3대 경제 주체인 정부와 기업 가계 가운데 그나마 도약의 반전을 이끌 주체는 기업 뿐이다. 말로는 기업친화적 규제완화를 외치면서 지금처럼 기업과 기업인에게 족쇄를 채운다면 경제 살리기는 요원하다.

지난해 법인세가 2조원이 늘 때 소득세는 11조원이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재벌은 뒤로 돈을 감추고 유리알 지갑의 직장인들만 다 털렸다”며 아우성이다. 글로벌 경기 악화 등으로 이익을 못내는 대기업이 속출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그러면서 증세의 총구를 기업 쪽으로 정조준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 조차 그 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법인세 인상을 증세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분위기다.

야당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 깎아준 3%포인트의 법인세율을 원위치시켜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다. 25%가 적용되는 법인세율 최고세율 구간(과표 500억원 이상)을 신설하는 방안 등도 논의되고 있다. 많이 버는 기업들이 많은 세금을 내 그 돈으로 없는 사람, 못사는 사람들을 돕자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정작 큰 돈 벌면서 제대로 세금 내지 않는 고소득 전문직군에 대한 실효성있는 대책이 병행되지 않는 한, 기업 목만 죄는 반쪽 정책에 그칠 뿐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 입장에서는 소득세보다는 법인세 증세가 만만하게 보일 것이다. 기업은 늘 정치권에게 ‘봉’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정치권에서 어떤 형태든 법인세를 손대거나 준조세를 포함한 기업 과세를 강화하는 쪽이 유력해 보인다. 증세론자들은 이 외에도 고소득자 소득, 주식양도차익, 임대소득 등에 까지 과세 범위를 넓힐 심산이다.

재정(財政)과 세정(稅政)의 구조조정, 선별적 복지가 전제되지 않고 급한 김에 무조건 있는 사람 돈 더 빼앗아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안된다. 그런 점에서 경기를 살려 증세와 복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 방향은 옳다. 그에 부합하는 실효성있는 정책 대안을 찾고, 당정 간 한 목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게 지상과제다. 정치권도 부자들 뿐 아니라 중산충도 함께 무너트릴 소지가 큰 증세 방향은 재검토해야 한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조진래 기자 (jjr201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