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향료연구팀 전병배 연구원
전병배(사진 오른쪽) 아모레퍼시픽 향료연구팀 연구원이 향료 테스트를 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서울 수표동 아모레퍼시픽 프래그런스 랩에서 만난 향료연구팀 전병배 연구원에게 핸드메이드한 향수를 직접 뿌려주며 어떤 향기가 들어갔는지 물었을 때 나온 답이다.
조향사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예민할 것 같고 날카로울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전 연구원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서글서글했다. 대신 후각만은 남달리 발달했다.
"학사와 석사를 모두 화학을 전공했는데,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 입사하려고 하는데 후각테스트를 하더라구요. 이전에 향수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시험 점수가 좋게 나와서 입사를 하게 됐습니다. 벌써 21년째 향료연구팀에 몸담고 있네요."
일반적으로 조향사라고 하면 향수를 만드는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일상생활에 흔히 쓰이는 비누향, 샴푸향도 모두 조향사가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식품향료까지 조향사의 손을 거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향료 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규모에서 비교가 안 된다. 향료를 연구하는 팀이 있는 곳도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몇몇 대기업에 국한돼 있다.
그 이면에는 스킨케어로 발달한 한국의 화장품 산업과 향수와 바디 중심으로 커왔던 서양의 화장품 산업의 차이에서도 읽을 수 있다. 향기에 대해 거부감이 컸던 한국의 국민성과도 연관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향수는 패션의 일부분이 됐고 개성을 표출하는 수단이 됐다.
따라서 향수는 과학이기에 앞서 감정이나 감성일수 있고 영감일 수 있다.
그래서 전 연구원은 향기를 개발할 때 제품의 콘셉트와 기호도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향을 만들 때 제품의 콘셉트와 잘 어울리는지 또 향에 대한 고객들의 선호도와 기호도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전 연구원이 그동안 만들었던 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설화수를 개발할 때였다고 한다.
"설화수를 개발하는 '설화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당시 매일 경동시장에 가서 한약재와 인삼을 사서 다릴 때 나는 냄새를 포집해 연구했었죠. 그때 고생해서 만든 향이 지금 아모레퍼시픽의 베스트셀링 모델이 돼 있는 거죠."
코가 유난히 민감해 겪는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서 나는 땀 냄새, 마을버스에 아무렇게 놓여있는 대걸레를 보면 정말 고통스럽다고 한다.
또 정작 향 전문가인 전 연구원은 향수를 쓰지 않는다. 항상 향기 테스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향수를 사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선호하는 향은 있다. 전 연구원은 나무 향을 특히 선호하고 우디와 가죽느낌의 향도 좋아한다고 한다.
전 연구원의 나무향 선호는 지난 5월 출시한 아모레퍼시픽의 최고가 남성 라인 '아모레퍼시픽 맨 에센셜 플루이드'를 개발에서도 나타났다. 이 제품에 쓰이는 향은 제주도에서 자라는 자생종인 구상나무에서 포집했다.
피톤치드 향이라 화장품을 바르면서 피부 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도 꾀할 수 있다고 한다. 구상나무에서 향을 포집하게 된 배경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추천도 있었다.
"서성환 선대회장 때부터 아모레퍼시픽은 향료 연구에 대한 인식이 깨어 있었습니다. 맨 에센셜 플루이드를 개발할 때 서경배 회장께서 제주도에서 자라는 구상나무라는 게 있으니 맡아보라고 하셨어요.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나무라 한국적 이미지도 있고 직접 맡았을 때 아로마테라피 효과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향이었죠."
그는 조향사라는 직업은 향을 개발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고객들이 좋아하는 향을 만들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 기술연구원 이외에 서울 본사에 프래그런스 랩을 만든 것도 그러한 이유다. 그는 이곳에서 사내패널 및 사외패널들을 데려다 제품 출시 이전에 기호도를 평가하기도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어서면 향이 나쁜 냄새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 됩니다. 최근 붐처럼 출시되고 있는 룸 미스트, 캔들, 디퓨져 등도 모두 그런 배경들이죠. 앞으로 향기 시장은 계속 커나갈 것이고 그에 대한 수요도 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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