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태극전사들은 17일 오전 7시(한국시간) 쿠이아바 판타나우 아레나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 H조 조별리그 러시아와 첫 경기를 치른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열린 두 차례 평가전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든 대표팀이다. 출정식이었던 튀니지전에서는 공격의 활로를 뚫지 못해 0-1로 패했고, 마지막 평가전인 가나와의 경기에서는 수비 라인이 무너지며 네 골 차 완패를 당한 바 있다.
하지만 평가전은 말 그대로 전력을 평가하고 전술을 가다듬기 위한 실험무대일 뿐이다. 홍명보 감독도 평가전 부진에 대해 “미흡한 부분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 패배의 악몽은 전지훈련지에 놓고 왔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무엇보다 이번 월드컵은 골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 대회로 주목받고 있다. 다득점을 올리는 팀들의 대부분은 치밀한 준비를 바탕으로 전술의 완성도를 이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전 약속된 플레이로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득점한 반면, 전략 전술 없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1명에게만 의존한 포르투갈이 독일에 0-4 대패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대표팀이 가장 마지막 조에 배치된 건 행운일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압박과 탈압박이 승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러시아는 압박 축구를 근간으로 한 조직력을 최우선으로 삼는 팀이다. 이를 파괴하기 위해 홍명보 감독이 내놓을 전술에도 관심이 쏠린다.
먼저 러시아를 압박하고, 반대로 상대의 압박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할 요소가 있다. 바로 ‘체력’이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15일 코트디부아르와의 1차전에서 전반 내내 우위를 점했지만, 후반 들어 급격한 체력저하와 함께 조직력이 무너졌고 결국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이는 홍명보호가 반드시 참고해야할 부분이다.
러시아는 이번 최종 엔트리에 해외파를 배제하는 대신 국내파로만 선수 구성을 이뤘다.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팀을 하나로 뭉쳐 조직력으로 맞서겠다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복안이다.
이를 간파한 홍명보 감독은 그동안 치른 훈련에서 체력적인 부분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해외에서 활약한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이 시즌 막판 소속팀에서 출전하지 않아 경기 감각 및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홍명보 감독의 말은 곧 몸 상태가 100%에 이르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리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가나전 대패는 오히려 보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상치 못한 완패로 국내 여론은 비난으로 들끓고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 기대치가 낮아진 상황이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휘어잡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선수들을 ‘원 팀’으로 뭉쳐 사지에서 끌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는 히딩크 감독의 노련한 전략과 주장 홍명보의 리더십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번 대표팀은 역대 월드컵에 출전한 엔트리 중 평균 연령이 가장 낮다. 젊은 선수들이 대부분이고 처녀 출전인 선수들이 상당하지만 단점이 될 수는 없을 전망이다. 이미 이들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함께 손발을 맞춘 익숙한 관계다. 그리고 결과는 올림픽 첫 동메달로 이어졌다.
홍명보호에 마지막으로 필요한 부분은 바로 ‘한국식 투지’다. 과거 월드컵에 출전한 태극전사들은 열세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투혼을 불살라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0-2로 뒤지고 있던 한국은 후반 추가 시간에만 2골을 넣어 끝내 동점을 이뤘고, 최종전에서는 우승후보 독일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와의 경기에서는 땀 대신 피가 흐르는 이임생에 자극받아 결국 유상철의 동점골이 나오기도 했다.
2002년 미국전에서 황선홍의 붕대 투혼,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이 좌절되자 땅을 치며 눈물을 쏟은 이천수. 그리고 2010년 남아공 대회 16강에서 우루과이에 패하자 비와 눈물로 얼굴이 뒤범벅된 차두리의 모습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지난 몇 차례 평가전에서 젊은 태극전사들에게 이 같은 투혼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국민들은 원한다. 결연한 의지를 갖췄을 때 비로소 진정한 태극전사가 된다는 것을 선수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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