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얀 등 스타급 외국인 선수들의 K리그 이탈은 최근 1년 사이 가속화 되고 있다. ⓒ 연합뉴스
FC 서울서 활약하던 외국인 선수 데얀이 최근 중국 슈퍼리그 장쑤 세인티로의 이적이 확정됨에 따라 K리그 팬들이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데얀은 K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힌다. K리그에서만 무려 7시즌 활약하며 3년 연속 득점왕과 MVP, 두 차례의 정규리그 우승 등 어느덧 용병을 넘어 리그 역사에 남을 '레전드'로 자리매김했다.
데얀과의 결별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데얀은 이미 수년 전부터 중국을 비롯한 유수의 해외 클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아왔다. 2012년 초에도 중국 클럽인 광저우 부리에서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러브콜을 했지만 FC서울의 거부로 무산됐다. 2년 전에는 데얀을 잡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적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K리그에서 이룰 것은 다 이룬 데다 내년이면 어느덧 33세로 노장이 되는 데얀으로서는 선수생활 막바지에 몸값을 끌어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FC서울로도 이적료를 두둑하게 챙길 수 있는 때다.
하지만 데얀의 이적은 K리그에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명실상부 K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던 데얀이 친정 유럽도 아닌 중국행을 선택한 것은 결국 돈으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는 K리그가 자금력의 열세로 능력 있는 선수들을 아시아 경쟁리그에 계속 빼앗기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스타급 외국인 선수의 이탈은 최근 1년 사이 가속화 되고 있다. 대한민국 귀화를 통해 대표팀 승선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에닝요(전북)가 지난 7월 중국 창춘 야타이로 이적한 것을 시작으로 '마케도니아 특급' 스테보(전 수원)는 J리그로 떠났다. 호주 출신 수비수 에디 보스나(전 수원)도 광저우 부리(중국) 유니폼을 입었다.
그동안 K리그는 아시아 최고의 리그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 축구시장의 판도를 감안했을 따, 이대로라면 더 이상 K리그의 위상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한국의 주요 외국인 선수 수급 시장은 브라질이나 동유럽 쪽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시아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외국인 선수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한국보다 더 많은 몸값을 제시하는 중동이나 중국에 머니 파워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 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중국의 약진이다.
중국클럽 사상 최초로 ACL 우승을 차지한 광저우의 돌풍에는 무리퀴(이적료 350만달러·약 37억원)와 엘케손(이적료 750만달러·약 79억원), 다리오 콘카(이적료 1000만달러·약 106억원)로 이어지는 특급 외국인선수 3인방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이들 3인방의 몸값만 합쳐 200억원을 훌쩍 넘는다. K리그 구단들로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금액이다.
반면 K리그는 최근 몇 년간 새로운 외국인 스타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데얀과 몰리나, 라돈치치, 에닝요 같은 선수들이 4~5년 이상 장수할 수 있던 것은 이들을 위협할만한 새로운 경쟁자가 없던 것도 한몫을 했다. 그나마 꾸준히 오랫동안 활약하던 터줏대감들마저 중국이나 일본으로 떠나고 있다. K리그에서 실력을 검증받고 아시아무대에서 적응이 끝난 선수들이 몸값이 높아지면 중국이나 일본에 빼앗기는 구조가 되고 있다.
K리그 구단들은 현재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했다. 최근 프로축구연맹에서 전격적으로 단행한 연봉 공개 정책의 파장도 무시할 수 없다. 몸값 거품을 빼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K리그 선수 시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업 구단들은 외부 시선을 의식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그나마 빅클럽으로 꼽히던 수원이나 서울도 선수영입에 많은 돈을 쓰기보다는 오히려 선수단 규모를 줄여야하는 상황이다. K리그 최다우승에 빛나는 성남은 최근 시민구단으로 전환했다.
올해 포항 스틸러스가 K리그가 우승을 차지한 장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특이한 점은 포항이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도 정규리그와 FA컵 2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는 점이다. 이는 확실한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토종 선수들의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한국판 어슬레틱 빌바오'라는 호평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고육책이기도 했다.
분명한 사실은 포항구단이나 황선홍 감독은 처음부터 외국인 선수 없이 팀을 꾸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점이다. K리그에서는 명가로 꼽히는 포항조차 수준급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한 자금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쇄국축구'였다. K리그를 호령했지만 정작 국제무대인 ACL에서는 해결사 부재와 얇은 선수층의 약점을 드러내며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전력의 차이를 투지와 전술로 메꾸는데도 한계가 있다. 올 시즌 포항의 성공을 성급히 K리그 전체에 대입해 일반화시키기는 어려운 이유다.
결국, 돈으로 중국이나 중동과 경쟁할 수 없는 K리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결국 '육성'이다. 포항의 사례를 국내 선수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도록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급적 유망주들을 젊은 나이에 영입해 K리그에서 육성하는 방식이 되어야한다. 유럽에서도 네덜란드나 벨기에 같은 작은 리그들은 유망주나 외국인 선수를 싼값에 영입해 수준급 선수로 성장시킨 뒤 빅리그나 빅클럽에 몇 배의 높은 이적료를 받고 파는 식으로 생존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K리그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외국인선수들 중 한국에 오기 전부터 이미 톱클래스 수준의 경력과 인지도가 있던 선수는 많지 않다. 데얀만 하더라도 K리그에 입단한 이후에 아시아 정상급의 외국인 선수로 성장했고 몬테네그로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K리그에서 통하는 선수라면 아시아 어디에 내놔도 충분히 제몫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해외리그에서도 퍼져있다. 반드시 동유럽이나 브라질 출신들에만 선수수급을 매달릴 것이 아니라, 아시아쿼터제의 확대를 통한 호주나 일본, 동남아 등 역발상을 통한 새로운 시장의 개척 또한 검토할 때다. 제2의 데얀과 몰리나 같은 선수를 돈으로 살 수 없다면 직접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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