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유행하는 이유

김헌식 문화평론가 (codessss@hanmail.net)

입력 2013.06.14 09:18  수정 2013.06.14 09:22

<김헌식의 문화 꼬기>추종과 순종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의 대상

신화학자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은 세계의 신화를 평생 연구한 끝에 ‘영웅의 여행(Hero's journey)’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에 대해 정립했다. 이 영웅의 여행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스승이었다. 영웅은 스승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미션이 가진 의미와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지혜, 능력을 전수받는다.

이러한 점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에 영향을 준 이래로 할리우드 영화 창작의 기본 공식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대체적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스승의 말씀을 잘 듣는 제자들의 구도에 안에 있다.

우리의 기억에서 스승과 제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는 아무래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이 영화에서 키팅 선생(Mr. John Keating)은 아이들에게 깊은 일깨움을 준다. 그는 성적과 경쟁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삶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인생의 나침반을 제시하는 선장이었다.

이 영화에서 키팅 선생을 맡았던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는 영화 ‘굿 윌 헌팅’에서도 이상적인 스승 심리학과 교수 숀 맥과이어로 열연했다. 그는 폭행죄로 입건된 윌에게 자신의 열정과 꿈을 찾게 한다. 이 두 영화에서 그 제자들은 선생님과 적대적이지도 않고 뛰어넘지도 않는다. 그 말씀을 잘 따를 뿐이다.

한국 영화 ‘선생 김봉두’ 나 영화 ‘울학교 이티’ 에서는 자기 생존 속에 처한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교육현실을 말한 바 있다. 영화에서 말하는 것은 결국 인간적인 스승이었다. 영화‘여선생과 여제자’는 자아가 급성장하는 여학생들과 이에 대응하는 여선생님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바 있는데, 스승은 학생과 치열하게 머리 싸움을 하는 존재였다.

영화의 내용은 교권을 위협하는 학생과 이를 방어하는 교사의 분투기였지만 결론은 휴머니즘적인 화해였다. 스승과 제자의 갈등은 극단화될 수도 있다. 영화 ‘스승과 제자’에서는 스승이 행한 사소한 행동과 말이 학생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지 공포감을 주며 형상화하기도 했다. 영화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클래식’과 같은 영화에서 스승은 거의 거세되고 억압자와 폭력자에 불과하다.

입시교육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매우 현실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드라마 ‘공부의 신’에서는 교육 현실을 입시교육에 더 초점을 맞추면서 논란을 일으켰는데, 스승의 역할이란 바로 좋은 대학에 가도록 시험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이였다. 스승과 제자의 틀보다는 노하우를 습득시키는 트레이너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반항을 하던 학생들이 스승의 말에 따라 상위 학교에 들어간다. 물론, 스승과 제자란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관계도 성적 올리기 테크닉을 가르치거나 인생의 깨달음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다른 관계성을 갖고 있었다. 영화 ‘완벽한 파트너’는 스승과 제자가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버린 사례들을 스승과 제자의 성적인 관계성에 나아갔다.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서' 한장면. 동영상 화면 캡처.

영화 ‘파파로티’에서는 좌절된 스승과 조폭 제자가 등장한다. 스승에게 반항하던 제자는 스승의 인도에 따르고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조폭제자는 훌륭한 성악가로 거듭난다. 최근 드라마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대해 주목한다. 드라마 ‘마의’에서는 두 명의 스승이 등장한다. 고주만(이순재)와 사암도인(주진모)이 그들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마의 백관현(조승우)은 인의가 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명환(손창민)의 음모를 깨뜨리지 못했을 것이다. 독특하게도 고주만은 자신보다 뛰어난 사암도인을 제자에게 추천한다. 그러나 결국 백광현은 뛰어난 어의가 되지만 스승과 대결을 버리거나 반발하지 않는다. 그 말씀을 충실히 따라 더 뛰어난 의학 지식과 기술을 갖게 될 뿐이다.

그러나 최근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제자가 스승과 대결을 벌이고 이기는 대목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드라마‘구가의 서’에서는 스승을 제자가 이겨버린다. 천년악귀 구월령을 없애기 위해 최강치(이승기 분)가 담평준(조성하 분)과 목숨을 걸고 훈련을 하며 스승을 꺾는다. 스승은 추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밟고 넘어서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드러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말하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은 푸른색은 쪽(藍)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푸르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만약 쪽이 짓이겨지지 않는다면 푸른색이 나올 수 없다. 담평준은 “제자의 깨달음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스승으로서 최선의 죽음이다”이라고 말한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북한특수부대 교관 김태원 대좌(손현주)는 특수요원 원류환(김수현)의 스승이다. 원류환은 스승 손현주의 말을 어긴다. 예전에 한 마디 한 마디 따랐던 스승의 마지막 말을 전면 거부한다. 그리고 스승과 대결을 벌인다.

어느새 더 높은 깨달음을 얻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특수요원 리해진에게 원류환은 경외하는 스승이다. 그 때문에 생존이 위험한 훈련 과정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와 대결을 벌였고, 스승을 뛰어넘는 생각을 갖는다. 결국 스승 원류환이 하지 못하는 결단을 내린다.

드라마‘구암 허준’에서 스승 유의태(백윤식)는 허준(김주혁)에게 틀린 처방을 내린다. 이 틀린 처방을 받아든 허준은 고민을 한다. 스승의 말을 따를 것인가, 자신의 생각으로 치료를 할 것인가를 두고 갈등한다. 결국 그는 자기의 생각대로 시행한다. 허준이 자신의 말을 어기고 자신의 방식대로 치료를 하자, 유의태는 매우 기뻐한다.

유의태가 바란 것은 스승의 말만 잘 따르는 제자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방식으로 홀로 서는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이때문에 거짓 치료법을 명령하고 허준이 그것을 어기기를 바랐던 것이다. 틀린 처방을 일부러 내렸던 유의태는 허준에게 실력에서 밀린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다. 유의태는 자신을 죽여 제자의 명성을 더 높게 만들었다.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서 담임교사 마여진(고현정)은 규칙과 현실론 내세우며 초등학생들을 몰아붙인다. 마여진은 성적에 따른 차별이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아이들에게 처벌을 내린다. 뒷조사는 물론 그에 따라 인신모독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마여진이 혹독하게 구는 이유는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국에는 스승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는데 모아진다. 학교 교육이 이상적인 것만 가르치고 감정적인 측면에 치우칠 때 결국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온다는 점을 강조하는 가운데 불합리한 것에 대항할 수 있는 대응력을 키우게 한다. 약간의 바이러스는 그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키운다. 물론 이러한 방향이 전면적인지는 지켜보아야 할 화두이다.

스승은 추종의 대상이 아니라 뛰어넘어야할 존재이다. 창조라는 것도 이에 부응한다. 기존의 말씀이나 사례, 경험, 노하우를 따르기만 하는 시공간에서는 창조가 있을 수 없다. 이스라엘의 수평적인 토론문화가 시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암시한다. 추종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에서는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고 음모와 협잡이 창조의 장애가 된다.

스승이 스스로 자신을 낮춰 제자가 높아지는 가운데 새로운 창조가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점은 시대적 트렌드이다.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역동적인 변화의 폭이 클수록 스승과 제자는 추종과 순종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의 대상이 된다. 이는 사회발전의 메커니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창조 산업이나 경제도 창조적 파괴가 기반이며 한국에는 어느 때보다 그것이 필요하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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