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탓?' 고꾸라진 무라카미·뚝따미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입력 2013.04.06 08:57  수정

신 채점 제도 부작용 선수생명 위협

선수 안전위해 ISU 발상 전환 필요

뚝따미 쉐바(오른쪽)-무라카미 카나코

만성 고관절 통증을 호소한 김연아(23)와 거식증으로 사경을 헤맸던 스즈키 아키코(27), 둘의 공통점은 21세기 피겨 스케이터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현대 여자 피겨는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스포츠로 치닫고 있다. 원인은 분명하다. 국제빙상연맹(ISU)이 도입한 신 채점 제도의 ‘부작용’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ISU가 가냘픈 소녀들에게 끊임없이 서커스와 같은 고난도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신 채점의 특징은 ‘강화된 룰’이다. 각 점프별로 정확한 발목 기울기 도약을 주문한다. 깊은 아웃에지를 쓰는 트리플 러츠의 경우, 선수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관객마저 조마조마하다. 의학 전문가는 “기울인 발목에 체중이 실리면 자칫 골절을 부를 수 있다. 또 발목을 자주 꺾으면 인대 염좌가 진행된다. 한 번 손상된 인대는 완치가 어렵고 재발도 잦다”고 전했다.

설상가상으로 ISU가 점프 기본점수를 높이는 바람에 선수들이 고난도 기술에 목매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아사다 마오가 대표적이다. 실전 성공률 제로에 가까운 트리플 악셀(8.5점) 짝사랑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문제는 질 좋은 점프를 구사하기 위해선 몸이 가벼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자 선수는 지나치게 수척하다. 스즈키 아키코의 경우, 무리한 체중감량이 거식증을 불러 생사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지금은 건강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저체중이다.

한편, 뚝따미 쉐바(17·러시아)처럼 가파른 성장을 겪은 유망주는 일찍 빛을 잃곤 한다. 뚝따미는 성인 데뷔 후 모든 점프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풍만해진 가슴’에 있다. 가슴 중심으로 급소를 보호하는 지방이 증가, 신체 저울추가 달라졌다. 때문에 최근 들어 착지불안이 잦다. 2013 세계선수권에서 뚝따미의 성장통 현실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 스핀에서 처참하게 고꾸라졌다. 문제는 현대 피겨 부작용 희생자가 뚝따미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 차세대 간판 무라카미 카나코(19)도 지금 갈림길에 섰다.

무라카미는 2013 세계선수권에서 안정된 연기력으로 4위에 올랐지만, 전문가들은 격려 대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가파른 성장 속도 때문이다. 일본 주간지 '플래시'는 무라카미에게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또 하나의 적과 싸워야 한다. 그것은 발육억제와 체중감량, 여자 피겨 선수의 육체가 탐스러워지면 현역 생명은 끝장”이라고 충고했다.

신 채점 제도 ‘강화된 룰’은 투명하고 객관적인 판정을 위해 도입했지만, ‘빛과 그림자’가 명확하다. 구 채점 제도의 특징은 왕성한 발육을 극대화한 선수들과 예술적 감성이었다. 추상적 판정 논란도 있었지만, 고난도 기술보다 여성미를 우선시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면, 신 채점 도입 이후엔 기계적으로 변했다. 기술위주 연기가 주를 이뤄 삭막한 편이다.

신·구 채점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토털패키지 김연아’가 건재하지만, 김연아가 은퇴하면 21세기 여자 피겨는 침체기로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선수 안전과 흥행을 위해선 ISU의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20세기 구 채점과 21세기 신 채점을 아우르는 ‘신구조화 판정’ 도입이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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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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