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격투기는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 정도로 멋진 궁합도 없다.
역사적으로도 격투 스포츠가 벌어지는 경기장에는 미녀들이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라운드걸’이다. 프로복싱이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던 1970-80년대. 복서들이 라운드 사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다음 라운드를 표시하는 숫자가 쓰인 큼지막한 원형판을 들고 링 구석구석을 누비던 라운드걸은 ‘링 위의 꽃’이라 불렸다.
라운드걸의 주된 역할은 복서들이 열전을 펼치는 중간에 나서 과열된 경기 분위기와 이로 비롯된 관중들의 긴장감을 잠시 식혀주는 것이었다. 경기를 펼치는 복서나 복서를 돕는 트레이너, 그리고 관중들까지 남자들로 가득 차다시피 한 경기장에서 존재감을 지닌 사실상 유일한 존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상이나 동작에 변화를 주며 관중들에게 이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 존재감은 단순한 경기보조 요원 정도로 인식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국내 프로복싱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격투기 스포츠팬들의 시선은 1990년대 WWF(WWE 전신)나 WCW 등의 단체들의 프로레슬링을 거쳐 2000년대 중반 이후 K-1과 프라이드 같은 격투 스포츠 종목으로 이어졌다.
프로레슬링의 본고장 미국의 프로레슬링은 스포츠엔터테인먼트를 표방, 스포츠 경기와 쇼 이벤트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과정에서 미모의 여성들이 ‘디바’라는 이름으로 프로레슬링 흥행에서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이들은 프로복싱에서의 라운드걸 역할이 아닌 한층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직접 여성 레슬러로 링에서 격렬한 경기를 펼치는가 하면 섹시한 여성 매니저, 링 아나운서 등 다양한 캐릭터의 여성으로 링 주변에서 프로레슬링의 스토리 전개와 흥행 주역의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일본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은 데 이어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K-1이나 프라이드 같은 격투 스포츠 이벤트에서 비키니나 노출이 많은 옷차림으로 라운드를 알리는 역할과 승리한 선수에게 트로피와 꽃다발을 전하고 함께 사진 촬영을 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여성들은 프로복싱의 라운드걸과 비슷한 형태의 존재였다.
이들의 모습이나 역할은 프로복싱에서 라운드걸의 그것보다 좀 더 적극적인 것이었지만 역시 대회의 보조요원이나 마스코트 역할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해 현재는 세계 최대의 종합 격투기 단체로 성장한 UFC 경기에서 라운드걸에 해당하는 ‘옥타곤걸’은 단순한 경기보조요원이나 대회의 마스코트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UFC 흥행과 마케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UFC 주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지위에 있다.
UFC팬이 아닌 사람에게도 아리아니 셀레스티라는 UFC 간판 옥타곤걸의 이름은 낯선 이름이 아니며 스포츠팬들 가운데 한 두 차례쯤 아리아니의 화보를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아리아니는 시나브로 UFC를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UFC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아리아니는 UFC 경기를 빼놓지 않고 시청하고 UFC 무대의 격투 스타들에게 열광하는 팬들에게 ‘여신’과도 같은 존재다.
미국과 유럽을 주무대로 삼던 UFC가 신흥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 지역에서 빠르게 인기를 확산할 수 있었던 데는 아리아니의 역할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기여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UFC는 프로복싱이나 K-1, 프라이드에서 경기보조요원 내지 마스코트 정도의 역할에 머물던 라운드걸의 존재를 대회의 흥행과 마케팅에 직접적인 기여를 해내는 옥타곤걸로 재탄생시켰고, 이 같은 마케팅 전략은 UFC 고속 성장에서 하나의 중요한 비결이 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UFC가 강예빈과 이수정 등 한국인 여성 두 명을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개최한 두 개 대회에 연속으로 옥타곤걸에 선정한 것은 향후 한국이 UFC 아시아 지역 마케팅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 1일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 스포츠 섹션에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이날 하루 가장 많이 조회된 스포츠기사 1위부터 10위까지를 UFC 일본대회(3일 오전, 사이타마 슈퍼아레나) 공식 옥타곤걸로 선정된 한국인 모델 겸 방송인 이수정의 화보와 관련 기사들이 차지한 것.
김동현을 바라보고 있는 강예빈.
이번 UFC 일본대회에는 김동현, 강경호, 임현규 등 한국 선수가 무려 3명이 동반 출전하는 것에 더해 지난해 11월 UFC 마카오 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UFC 공식 옥타곤걸로 선정된 방송인 겸 배우 강예빈에 이어 이수정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UFC 대회 옥타곤걸로 선정되면서 팬들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UFC 마카오 대회 당시 강예빈의 활약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지상파와 케이블을 오가며 전방위적 활동을 펼치면서 섹시한 이미지로 많은 남성팬들을 거느리고 있던 강예빈은 자신이 출연하는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UFC를 홍보했고, UFC 국내 중계방송을 담당한 방송사의 각종 UFC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대회 마케팅에 큰 기여를 했다.
덕분에 마카오 대회를 앞두고 각종 포털 사이트 스포츠 섹션은 옥타곤걸 강예빈의 화보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마카오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인 선수들에 대한 국내 홍보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리는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대회 전체 흥행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UFC 입장에서는 이런 정도의 부작용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UFC 대회 당일 TV 중계방송을 통해 경기를 지켜본 많은 국내 UFC팬들은 당당히 UFC 옥타곤에 올라선 강예빈에게 열광했다. UFC 옥타곤걸 선정은 결과적으로 강예빈과 UFC 모두에게 ‘원윈 게임’이 됐다. 그 동안 섹시한 이미지를 앞세워 이런저런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미는 고만고만한 정체불명의 연예인들 가운데 한 명으로 인식됐던 강예빈은 UFC 옥타곤걸 데뷔 이후 놀라운 이미지 상승효과를 얻으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와 인기 드라마의 중요 배역을 따내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UFC도 강예빈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큰 UFC 대회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이수정이 UFC 일본 대회에 옥타곤걸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도 강예빈을 내세워 높은 시청률을 얻었던 방송사의 적극적인 추천과 물밑작업 덕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수정 역시 옥타곤걸 선정 이후 방송과 프로모션 현장을 종횡무진하며 인터넷 공간을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
멀지 않은 장래에 국내에서 UFC 대회가 열리게 된다면 강예빈과 이수정이 나란히 옥타곤에 등장하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 물론 한국 대회에서 치러질 경기들의 면면도 중요하겠지만 이미 옥타곤걸의 존재감 만으로도 대회 자체 흥행은 물론 중계방송 시청률도 ‘대박’을 예상할 수 있는 조합이다. 마케팅 귀재로 알려진 UFC 데이나 화이트 회장 머릿속에는 이미 그려져 있는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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