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가운데)과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왼쪽),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8월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각 정당별 상임위원회 구성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재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반기업 정서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고용·노동정책 현안을 컨트롤하는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와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재계 '방어막' 역할을 해줄 여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노동계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특정 사안과 얽힌 그룹 총수들의 국회 청문회 줄소환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9일 제19대 국회 상임위원회 명단발표한 것과 관련 큰 우려를 표명했다.
경총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특히 일자리와 기업의 인력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고용ㆍ노동정책을 다루는 환경노동위원회의 주도권이 야권으로 넘어간 것에 대해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총의 이같은 우려는 노동정책에서의 대기업 옥죄기는 물론 대기업 오너 소환 등 요구가 다시 일면서 경영환경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이번 환노위의 정당별 배정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각 7명으로 동수였다. 하지만 이날 통합진보당 심상정 의원이 환노위에 배정되면서 여·야 위원 수가 7대 8로 야권이 다수가 됐다. 더구나 환노위 위원장도 민주통합당 소속의 신계륜 의원이다.
이에대해 경총은 "여당인 새누리당이 합리적 노동정책을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당의 고유 권한인 원 구성에 있어 경제단체가 성명서까지 내면서 직접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비판 대상은 여당인 새누리당이다.
이에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경총이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총 측은 비록 의원 한 명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환노위에서의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향후 고용·노동정책 현안에 있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와 같은 노조법 재개정, 비정규직법 등 현안과 관련, 환노위가 노동계 구미에 맞는 법안들만 양산하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황인철 경총 기획홍보본부장은 "기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법안이 나올 경우 과거의 한나라당은 막을 방법이 있었지만, 지금의 새누리당은 두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당이 당론에 의해 상임위원회 내에서 법안 상정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위원장이 의결을 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측 의원들이 불참해 정족수 미달로 상정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구성된 환노위는 위원장도 야당 측이고, 새누리당 의원이 전원 불참한다 해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만 뜻을 모으면 과반수로 정족수를 채울 수 있으니 법안 상정이 가능해졌다.
상임위인 환노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사위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법사위에서도 역시 재계를 위한 필터링 기능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법사위도 야당이 위원장(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을 맡고 있다. 또한 여야 의원 수는 8대 8로 동수지만, 통상 법사위는 자구분석 등을 위주로 검토할 뿐 내용 자체를 문제삼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의 위치도 확고하지는 않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의 의석수는 150석으로 전체의 딱 절반이다.
법사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재계의 입장을 고려한 당론을 밀어붙인다 해도 소수의 이탈표 만으로도 어긋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계는 노동계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특정 사안과 얽힌 기업의 총수들이 줄줄이 국회로 소환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황 본부장은 "지난해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수 차례 국회로 불려갔다가 결국 노동계에 무릎을 꿇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미 야권에서 사내 하도급 문제와 관련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국회에 소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고,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나 쌍용차 구조조정 문제로 청문회를 열겠다는 말도 있었다"며, "야당 쪽에서 재계 총수들의 소환을 강력히 요구할 경우 새누리당은 막을 수 없고,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새누리당 역시 이같은 상황을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 환노위에 7명의 의원을 배정한 의도를 모르겠다며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황 본부장은 "새누리당이 전체 의석의 절반인 150석이나 확보하고 있으니 환노위에도 절반은 배정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편, 새누리당의 이번 환노위 의원 배정에 대해 다른 경제단체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안종현 전경련 고용복지팀 팀장은 "자율기구인 국회 결정을 존중해야겠지만, 노사관련 정책이 균형 있게 논의돼야 하는데, 환노위가 여소야대로 구성되면 힘의 균형을 잃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사정책은 힘의 균형 문제가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국회에도 노동계 출신 의원들이 많아 노동계에 치우친 법안 위주로 흐를 수도 있고, 그동안 노사 선진화를 위해 노력한 부분들이 폄하되거나 퇴보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데일리안 = 박영국 기자/이광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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