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사? 먹튀?’ 여왕벌 부상 오해와 진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12.02.21 18:42  수정

'4년 36억원 투자' 영입 후 바로 부상

혹사보다는 나이에 따른 노쇠화 가능성

롯데는 거액을 들인 마무리 정대현의 부상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롯데는 지난해 12월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정대현과 4년간 36억원(계약금 10억원+연봉 5억원+옵션 6억원)에 FA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지난 2004년 LG와 4년간 30억원에 계약한 진필중의 역대 FA 불펜 최고액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롯데는 최근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한 번도 상위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 여러 요인 중 첫 번째 이유는 역시나 허약한 불펜 탓이다. 그만큼 롯데는 특급 마무리 투수에 갈증이 상당했다.

그런 면에서 통산 99세이브 평균자책점 1.93을 기록한 11년차 베테랑 마무리는 롯데 뒷문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수년째 골치를 썩이던 마무리 부재 고민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 도중 정대현의 몸에 적신호가 켜졌다.

사이판서 열린 1차 전지훈련 도중 무릎에 물이 차는 증상으로 통증을 호소한 정대현은 조기 귀국해 치료를 받았다. 이후 일본 가고시마 캠프에 다시 합류했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오사카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진한 결과 좌측 슬관절 반월상 연골판 부분손상으로 판명돼 수술이 결정됐다. 롯데는 재활기간이 3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연히 롯데 선수단은 비상이 걸렸다. 일찌감치 마무리 투수로 점찍어 놓은 선수의 부상이기 때문이다. 김사율의 마무리 복귀안이 거론되는 가운데 김성배, 이재곤 등이 정대현 공백을 메울 카드로 점쳐지고 있다. 이에 팬들 사이에서는 정대현이 혹사에 의한 부상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으며 36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인 선수이기 때문에 ‘먹튀논란’까지 불거지는 상황이다.

사실 정대현은 전 소속팀 SK에서도 매년 부상을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큰 부상이 아니면 엔트리에서 빠지는 일이 드물었다. 특히, SK는 지난해 8월까지 ‘투수 혹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김성근 감독(현 고양 원더스)이 부임하고 있었다.

김성근 감독에겐 ‘떠난 자리엔 풀도 안 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늘 ‘혹사’라는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실제로 김 감독이 2002년 LG 감독에서 물러난 뒤 신윤호, 이동현 등의 주축 투수들은 이듬해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시달렸다. 의혹은 사실로 입증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김성근 감독의 투수운용 스타일에는 확실한 철칙이 있다.

그동안 김 감독 지휘 아래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투수들은 한계투구수를 넘지 않았고, 많은 공을 던진 뒤에는 확실한 휴식을 보장받았다. 팀 성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스타일이긴 이것을 부상까지 참고 뛰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정대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정대현은 김 감독으로부터 철저한 관리와 보호를 받은 케이스다. SK 특유의 지옥훈련도 정대현은 예외였고, 김 감독이 따로 작성하는 훈련 스케줄만을 소화했다. 2009년 무릎 수술을 받은 뒤에는 관리가 더욱 엄격해졌다. 몸에 이상이 있었지만 무리가 가지 않는 한에서 투구수를 조절 받았다.

정대현은 지난 2005년 부상으로 20경기 출전에 그친 이후 이듬해부터 6년간 326경기-365.2이닝(연평균 54.3경기-60.9이닝)을 소화했다. 불펜투수로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정 수준인 셈이다. 물론 성적도 꾸준히 특급 기록을 찍어냈다. 하지만 지난해 이닝당 볼넷과 탈삼진 부문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이전 시즌과 비교했을 때 정대현의 이닝당 볼넷은 1.4개에서 4.1개로 증가했고, 9이닝당 탈삼진 역시 9.4개에서 6.4로 뚝 떨어졌다. 이는 구위가 떨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대현은 한국 나이로 벌써 35살에 이르는 고참급 투수다. 롯데 투수들 가운데서도 정대현보다 나이 많은 투수는 이용훈 단 한 명뿐이다. 따라서 부상의 이유가 혹사라기보다는 나이에 따른 노쇠화일 가능성이 크다.

정대현 2007시즌 이후 성적.

‘먹튀논란’에 대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동안 FA 계약 후 ‘먹튀’가 된 상당수의 선수들은 자기관리 실패로 어려움을 겪었다. 정신적인 해이함에서 비롯된 훈련부족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정대현은 다르다. 정대현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책임감이 강한 선수로 소문이 나있다. 묵묵하지만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고, 베이징올림픽 대표팀에서는 같은 옆구리 투수인 고창성과 아예 한 방을 쓰기도 했다. 그는 거액을 만지기 위해 부상을 숨길 소인배가 아니다.

정대현의 부상에 대해 전 스승인 김성근 감독은 ‘과한 의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감독은 “곁에서 제어해주지 않으면 늘 부상에 노출돼 있는 선수”라며 “새 팀에 입단하고 난 뒤 의욕이 과했던 것 같다. 훈련과정에서 오버 페이스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대현은 롯데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다 몸에 무리가 오고 말았다.

부상도 결국 자기 관리의 실패에서 비롯된 부분이지만 아직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지도 않은 정대현에게 무분별한 비난은 선수에게도, 롯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48개월이라는 계약기간은 상당히 긴 시간이다. 롯데에 입단한 지 고작 2~3개월 지난 정대현에게 벌써부터 ‘먹튀’의 굴레를 씌우기에는 시기상조란 목소리가 높다.[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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